"우리 아이들,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도와 달라"

[동행취재] 태안 사설해병대캠프 참사 100일째... "끝나지 않은 전쟁 눈물만"

등록 2013.10.25 17:55수정 2013.10.2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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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병학 학생의 아버지와 어머니 ⓒ 김종술


회오리 바람에 먼지가 일면서 나뭇가지를 흔들어 놓는다. 가을이 휘날린다. 이제 그만 가슴에 묻어도 될 것만 같은데 오늘도 그들은 어김없이 눈물이 터진다.

지난 7월 18일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이 태안 사설해병대캠프에 참사를 당한 지 25일로 100일 째를 맞았다. 오전 9시 고 이병학 학생의 천도재(죽은 사람의 넋이 극락으로 가도록 기원하는 의식) 소식을 듣고 찾아간 충남 공주시 마곡사 대광보전에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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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병학 학생의 천도재가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에서 열리고 있다. ⓒ 김종술


오전 11시쯤 고 이병학 학생의 할아버지가 손자를 잃은 슬픔에 눈물을 흐리며 조용히 법당을 나선다. 그러더니 "다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하는데 법당에 있으니 자꾸만 눈물이 나서 참기가 힘들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대웅전 대광보전 앞에 모여든 관광객을 보면서 "사람들이 참 많이도 왔다, 우리 손자도 저렇게 다닐 수 있는데…"라며 못내 고개를 떨군다.

낮 12시가 다 되어서야 천도재가 끝나고 서둘러 아이들이 묻혀있는 천안공원묘지로 향했다. 공원에는 고 김동환, 고 이준형, 고 장태인, 고 진우석 군의 유가족들이 다녀갔는지 꽃바구니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병학이 어머니는 묘지 한쪽에서 바람에 날린 편지를 집어 들더니 "동현이 아버지가 편지를 써놓았는데 없어졌다고 하더니 여기 있네!"라며 먼지를 닦아 제자리에 놓는다.

고 이병학 학생의 누나는 "말 잘 듣고, 착하고, 배려도 많았던 동생이었다, 지금까지 동생과 다퉈 본 적도 없는 동생이었다"며 "나는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일상이 빨리 돌아가는데 엄마 아빠는 이 일에만 매달리면서 떨어져 있어서 늘 죄송스럽다"고 눈물을 흘린다.

어머니는 "전에는 가끔 (딸과) 통화해도 바쁘다고 끊으라고 하더니 요즘은 애가 더 애달파 가지고 영상통화로 엄마·아빠가 같이 있는지 늘 확인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죽지 못해 사는데 딸이 있어서 그 순간이 넘어가기도 하지만 너무 힘든 순간이다, 병학이가 공부도 잘했지만, 장손이라 어른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고 온 집안에서 기대하고 키웠는데…. 집안 식구들의 상실감이란 말로 다 하지 못한다"며 말을 잊지 못한다.

"누워있는 유가족을 다 들어서 밖으로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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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병학 학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따르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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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경 천안공원묘지에 모인 故이병학 학생의 유가족들 ⓒ 김종술


고 이병학 학생의 아버지 이후식씨는 "어제(24일) 대전교육청 국감장에서는 유가족이 피켓을 들고 서 있도록 해줬는데 오후 1시 대전검찰청에서는 피켓만 들고 있겠다고 사정을 해도 경찰이 둘러싸더니 나가라고만 했다, 우리의 억울한 부분을 호소하고 사정을 하니 '상부에 보고해서 승인을 해주겠다'더니만 누워있는 유가족을 다 들어서 밖으로 내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큰 사건까지 묻어 버리고 흐지부지 끝내려고 하는데 교육부와 사법당국은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한다"며 "대한민국 검찰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기 보다는 국민의 입을 막기에만 급급한 것 같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이후식씨는 "9월 5일 우리가 서산지청장을 만나서 억울한 사실을 대검에 올려 조치를 받고 서면으로 유가족에게 답변을 달라,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드니 초동수사 기록을 오픈해라, 사고 당사자들 얼굴도 모르는데 한 번이라도 사과를 시키라고 3가지를 요구했었다"며 "그동안 수차례 만나려고 했어도 자리를 안 만들어 주더니 어제 국감을 하면서 무슨 얘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주 월요일 서산지청장과 공판검사, 수사검사와 유족이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후식씨는 검찰의 초동수사에 문제점이 많았다고 되짚었다. "청소년 수련법상 하청에 재하청을 주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도 공사장 법에 입각하여 업체대표를 참고인 조사만으로 '협의 없음'으로 판정 내렸다"며 "등재이사도 아닌 영업이사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여 덤터기를 씌웠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유가족의 권리도 묵살 당했다며 "현장 검증을 통해서 정확한 사인을 밝혀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으로 임하면서 의혹만 낳아 이번 사건에 검은 손길이 작용하고 있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며 "서산지청을 신뢰할 수 없어 대검찰청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국민신문고를 통해 대통령께 올린 호소문마저 휴지가 되어 돌아왔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이후식씨는 교육부에도 유족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처음 사고가 나고나서 무엇이라도 다해줄 듯 감언이설로 장례를 치르도록 권유를 하더니 이제 와선 법법 운운하며 칼자루를 쥔 자의 만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점점 더해만 가는 고통과 자살의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어 앞으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항해 "학교장과 교사들은 피의자로서 징계와 관련해 최후 변론도 가능한데 유족들은 철저히 배척되고 있다, 유가족도 반론할 수 있도록 배려와 가해자들의 죄명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교육부 감사에서 교장이 배임 수뢰혐의로 수사 의뢰를 했다는 언론 보도만 보았을 뿐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며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하나뿐인 아들을 앞세워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위태로이 서 있는 유가족들이 아픔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단호한 조치와 재발방지 그리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편안히 영면에 들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한순간에 아이들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은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젠 우리 사회가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약속한 이사회의 부조리를 척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공주사대부고 #천도재 #100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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