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3공 시절로 회귀하려는 것인가

[팟캐스트 윤여준 ④] 진보당 존속, 사법 의존하기 전에 토론해야

등록 2013.11.08 14:12수정 2013.11.14 14:40
10
원고료로 응원
주 1회 방송하는 <팟캐스트 윤여준> 중 '윤여준 칼럼' 전문을 <오마이뉴스>에 지상 중계합니다. [편집자말]
a

이정희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는 제2의 긴급조치"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당 관계자들이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대해 '제2의 긴급조치, 반 민주적 진보당 해산기도 중단'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정부는 지난 5일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정부가 진보당의 해산을 추진하는 이유는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우리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 소송 대표자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말이다. 정부는 또 진보당이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북한과 연계해온 사실이 확인되어 이 당을 존치할 경우 우리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상당히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럽 순방을 떠나기 전에 이런 정부의 방침을 보고받았다고 하고 이 안건이 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후 런던에서 전자결재로 재가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심판기간으로 정해져 있는 180일, 그러니까 6개월 이내에 심판해야 하지만 심리가 더 필요한 경우에는 시일을 초과한 선례가 많기때문에 실제로 얼마가 걸릴지는 지금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진보당은 당연히 해산되어야...

전 세계에서 위헌정당해산청구 제도를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는 독일, 터키, 러시아 세 나라이고 실제로 정당을 해산한 경험이 있는 나라는 독일과 터키 두 나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정부는 독일의 경우를 집중 검토했다고 하는데, 나치당의 경험과 냉전시기였다는 독특한 배경에서 이뤄진 것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진보당은 당연히 해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과연 정부의 이런 주장에 대해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한편 살펴보자.

진보당 사태에 대한 정치권과 사회의 반응에는 제법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정당 반응을 보면 진보당은 물론 "2013년판 유신 독재를 공식 선포하며 긴급조치 제 10호를 발동했다"고 아주 격렬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유일호 대변인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질서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며 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비교적 온건한 환영 논평을 내놓았다.

민주당의 경우에는 김관영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서 "헌정사상 초유의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 데에 대해서 매우 유감"이라면서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국체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유지되고 모든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그 범주에서 보호되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수석 대변인의 이 논평을 보면 민주당은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한다는 정부의 판단을 일단 수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작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종북 프레임에 갇혀서 운신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주당의 곤혹스러운 처지가 배어있는 논평으로 보인다.

한편,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일부 사회 인사들의 견해는 큰 차이가 나고 서로 부딪히는 내용까지 있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먼저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의 고영주 위원장 말을 들어보면 이렇다.


"진보당은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 연방제 통일, 국가보안법 폐지 등 내부 강령에 따라 이적 행위를 해왔다, 정당이 아니었으면 이적 단체로 처벌했어야 하는데 정당의 외피를 쓰고 있어서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법학자인 연세대 법학전문대학교 이종수 교수의 의견은 크게 다르다. 이 교수의 의견은 이렇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은 합법적 수단으로 헌법에도 반대할 수 있는 조직이다. 따라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대했다는 것은 정당 해산의 요건이 아니며 기본질서의 폐지를 구체적으로 시도해야만 해산요건이 된다."

1958년 이승만 정권에 의한 조봉암의 진보당 강제해산 떠올려

이밖에도 정부 조치에 대한 매우 다양한 반대 의견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우선 연세가 든 분들 중에는 이번 정부의 조치를 보면서 지난 1958년 이승만 정권에 의한 조봉암의 진보당 강제해산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 죽산 조봉암은 그 이듬해에 사형됐는데 지난 2011년 대법원은 당시 진보당의 강령에 대해 합헌 판결을 한 바 있다.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의 서복경 연구위원은 "진보당 강령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주장을 정당 해산의 요건으로 제시한 것은 비상식"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 동국대학교의 김준석 교수는 "권력분립은 견제와 균형을 위한 것이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편의 생존을 좌우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면서 "박근혜 정부의 이번 해산 청구는 정당의 생존을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가 위협하는 심각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보수 성향 신문들의 논조도 사뭇 다르다. <조선일보> 6일자 사설은 "진보당은 북한을 추종하며 대한민국을 무력폭동으로 쓰러트리고 북한식 체제를 만들려 하고 있다"면서 "진보당은 진보정당임을 내세워 왔지만, 사실은 북한 노동당의 대남 적화 전략의 하수인 노릇을 해온 위장정당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같은 날짜 <중앙일보> 사설은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을 놓고 여러 논란이 있다면서 그 논란의 내용들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한 다음 "이번 해산 심판은 한국 사회의 이념과 헌법에 관련된 중요 시험인 만큼 정치권과 사회는 공방을 자제하고 헌재결정을 차분하게 기다려야한다"고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이런 의견의 차이는 앞으로 이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는 점과 그런 만큼 이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민주적이고 신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가 이석기 의원 사건에 관한 법원 판결이 나기도 전에 또 박근혜 대통령이 외국 순방하는 기간 중에 진보당의 해산과 소속의원 6명의 의원직 상실 등에 관한 심판을 헌재에 청구할 만큼 서둘러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진보당 존속 여부 사법 의존하기 전에 사회 공론장에서 충분한 토론해야

정부는 진보당의 존속 여부를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기 전에 사회 공론장에서 충분한 토론이 먼저 이뤄지도록 했어야 했다. 정당은 이념과 정책의 집단인 만큼 국민들이 활발한 논쟁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의견들을 들은 뒤 선거를 통해서 심판하도록 하는 것이 자유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방식이 아닌가. 만일 다수 국민이 정부의 판단에 동의한다면 국민은 투표로 통해 진보당을 해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이번에 3개의 보수 성향 언론사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했다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일부 언론으로부터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 공안검사 출신 대통령 참모들이 벌이는 '공안몰이'라는 비판을 듣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안검사 출신 고위공직자들에게 <중앙일보> 6일자에 실린 칼럼 중의 일부를 전해주고자 한다. 칼럼의 요지는 이렇다.

"그들을 해산시키더라도 그들의 생각까지 해산시킬 수는 없다. 그들의 생각은 정부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평가되고 걸러져야한다".


a

윤여준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 ⓒ 유성호

제발 이 말을 명심해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진보당을 또 하나의 순교자로 만드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길 바란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국정 운영에서 보여준 국가주의, 성장주의, 반공주의 성향이 전형적인 산업화 패러다임이라는 점에서 3공 시절로 회귀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번 진보당 사태를 보면서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그토록 강조했던 국민 대통합이 한국 사회를 단일 이데올로기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은 심정이다.
덧붙이는 글 윤여준 기자는 전 환경부 장관이며,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입니다.
#통진당 #자유민주적 #범주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모임서 눈총 받던 우리 부부, 요즘엔 '인싸' 됐습니다
  2. 2 서양에선 없어서 못 먹는 한국 간식, 바로 이것
  3. 3 카페 문 닫는 이상순, 언론도 외면한 제주도 '연세'의 실체
  4. 4 생생하게 부활한 노무현의 진면모...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5. 5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