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티스 문학? 조정래와 달랐을 뿐이다

[2013 전국투어-수도권⑩] '서울 출신' 최인호의 문학세계

등록 2013.11.21 09:17수정 2013.11.2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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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입니다. 11월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간 지역은 수도권입니다. [편집자말]
 2500년 유교 역사를 그린 소설 <유림> 출간 후의 모습.
2500년 유교 역사를 그린 소설 <유림> 출간 후의 모습. 오마이뉴스 남소연
채 서른이 되지 않은 젊은 작가 최인호는 떨고 있었다. 1973년. <조선일보>는 파격적인 결정을 한다. 스물여덟의 신예 최인호에게 신문 연재소설을 맡긴 것. 이전까지 '신문 연재소설'은 독자들과 평론가들의 평가를 두루 거치고, 다양한 작품을 통해 문학적 측면에서도 검증이 완료된 중년 혹은, 노년의 유명 작가들이 쓰는 게 관례처럼 돼 있었다.

하지만, 최인호는 '아직 어린 소설가가 얼마나 재밌고 대단한 작품을 쓰겠어'라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의 소설 <별들의 고향>은 연재 초반부터 구독자들의 관심을 단숨에 집중시켰고, 사무실로 신문이 배달되는 아침이면 <별들의 고향>을 먼저 읽기 위한 '신문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던 것. 심지어 병원 간호사들과 환자들 사이에서도 '연재소설 먼저 읽기'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출판시장을 주도하던 발 빠른 출판사 몇몇이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한 출판사가 당시로선 거액인 200만원을 계약금으로 제시하며 최인호를 불렀다. 고등학교 친구인 이장호(영화감독)와 함께 출판사에 나타난 최인호는 1천원 권 20뭉치를 보고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촌뜨기가 아닌 세상물정을 알만큼 아는 서울 출신의 명민하고 세련된 작가였지만, 28세의 그에게는 처음 보는 큰돈이었던 것이다.

최인호와 이장호는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거액(?)의 계약금을 조심스레 싸들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제지하며 표정 관리를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 출판사의 '모험적 투자'는 요즘 말로 '대박'이 났다. 책으로 만들어진 <별들의 고향>이 자그마치 100만 권이나 팔린 것.

<별들의 고향>이 인정받은 건 출판시장에서만이 아니었다. 친구 이장호에 의해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도 당시로선 엄청난 관객이라 할 수 있는 50여만 명이 관람했다.

1970년대 최고의 인기배우였던 신성일과 윤일봉은 다시 한 번 그들의 인기를 증명했고, 여주인공 경아 역을 맡은 안인숙은 단숨에 주목받는 여배우로 떠올랐다. "경아 오랜만에 함께 누워보는군" "술 한 잔 하실래요. 제 입술은 조그만 술잔이에요" 등 조금은 간지러운 대사가 불쑥불쑥 등장하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국도극장 앞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소년 시절부터 문학적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최인호


기실 이러한 최인호의 '대중적 성공'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1945년 해방둥이로 서울에서 태어난 최인호. 형제 많은 집안에서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자랐으나, 문학소년이었던 그는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다. 중고교 시절에는 친구들 앞에서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 너희들은 나를 알았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게 될 거야"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최인호의 작품들
최인호의 작품들

그 호언을 증명하듯 서울고등학교 2학년 재학 시절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대중 앞에 선보인 첫 소설 <벽구멍으로>가 가작에 뽑히는 기염을 토한다. 그때 최인호의 나이 겨우 열여덟. 영특한 '소년 문사'의 탄생이었다.


이후 연세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해서도 문학을 향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1967년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다시 한 번 당선되면서 최인호는 본격적인 '문학적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후 타계 직전까지 이어질 '최인호 문학 50년'의 시작이었다. 

최인호가 작품을 쏟아내던 1970년대는 박정희 정권이 주도한 급격한 산업화가 빛과 그늘을 동시에 드러내던 시절. 황석영이 자신만의 특장인 견고한 '리얼리즘'으로 정면에서 산업화의 그늘을 비판했다면, 최인호는 다소 우회적인 방식과 도회적인 감수성으로 그의 문학 속에 1970년대의 그늘을 그려 넣었다.

1970년대 '산업화의 그늘', 그만의 방식으로 담다

이전 세대 작가들에게서는 보기 드물었던 최인호 고유의 문체와 특유의 사회의식은 <타인의 방> <무서운 복수> <이상한 사람들> 연작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논의되는 최인호의 작품들은 앞서 언급한 것보다 '보다 대중친화적인' 것들이다. 서두에서 이야기된 <별들의 고향>을 비롯, 문학에 영화적 감수성과 이미지가 더해진 <바보들의 행진> <도시의 사냥꾼> <고래사냥> <적도의 꽃> 등이 바로 그것. 이들 작품들은 대부분 영화로 만들어져 문학계와과 영화계 양쪽 모두에서 최인호의 이름을 높여주었다.

1980년대 이후에도 최인호는 '누구보다 열심히 쓰는' 작가였다. 소설가 조정래는 최인호가 세상을 떠난 지난 9월 "(최인호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문학적 열정을 불태운 작가"라고 평가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컴퓨터 키보드가 아닌 원고지에 펜으로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것. 최인호는 생전 컴퓨터로 글을 쓰는 건 "기계로 찍어내는 공산품 같다"며 끝까지 원고지와 펜을 고집했다.     

바로 그의 펜 끝에서 나온 작품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독자들의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았다. <물 위의 사막> <잃어버린 왕국> <불새> <왕도의 비밀> <길 없는 길> 등이 바로 그 증거물이다. '작가의 존재 이유는 작품을 쓰는 것에 있다'는 당연한 명제를 실천했던 최인호는 <상도>를 통해 이른바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고, 이는 20세기에 등단한 작가의 역사적 문제의식과 문학적 역량이 21세기에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인호 작품으로 만들어진 영화들.
최인호 작품으로 만들어진 영화들.

최인호는 '기록'을 많이 남긴 작가이기도 하다. 열여덟에 '최연소 신춘문예 입선'이란 타이틀을 얻었고, 스물여덟엔 '최연소 신문 연재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어떤 작가보다 많은 작품이 영화화된 기록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그가 쓴 <깊고 푸른 밤>의 시나리오는 안성기와 장미희의 열연과 배창호의 감각적인 연출이 더해져 많은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아시아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일찌감치 장르를 넘나든 '멀티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문학과 영화라는 장르의 경계를 선도적으로 거침없이 넘나든 것이다.

또 하나 깨지기 힘든 기록은 그가 잡지 <샘터>에 <가족>이란 연재소설을 34년 6개월 동안 이어갔다는 것이다. 이 연재는 그의 몸을 쇠약하게 만든 침샘암이 발병한 이후에도 얼마간 지속되다 2010년 2월 중단됐다. 생사의 기로를 위태롭게 오가던 2011년까지도 최인호의 문학적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 열정의 결과물이 바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다.

'소비지향적 통속작가'라는 평가도 있지만...

올해 9월 최인호는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학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감수성과 남다른 세련미는 그가 '서울 출생'의 작가라는 태생적 환경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서울은 무너지는 대가족 농경사회와 재편되는 핵가족 산업화사회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최전선의 현장이었다. 최인호의 작가적 촉수는 바로 이 지점을 문학적으로 감지해냈고, 감지된 공간(서울)과 시간(1960~1970년대)을 소설 속에 어떤 방식으로든 녹여냈던 것이다.

사실 최인호를 향한 비판적 시각도 세상엔 존재한다. 몇몇의 평론가와 독자들은 그와 그의 문학을 '호스티스 문학을 통해 이름을 알린 통속적인 작가' 혹은, '소비지향적 도시문화에 매몰된 작품'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별들의 고향>과 관련된 일화나 그의 문학적 연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최인호의 '인간적 순수성'과 '문학적 열정'만은 누구도 쉽사리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그는 '도시(서울)'에서 태어나 '새로운 도시적 감수성'으로 많은 사람들을 '한국문학 곁으로' 끌어들인 매력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최인호 #서울 출생 #별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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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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