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유교 역사를 그린 소설 <유림> 출간 후의 모습.
오마이뉴스 남소연
채 서른이 되지 않은 젊은 작가 최인호는 떨고 있었다. 1973년. <조선일보>는 파격적인 결정을 한다. 스물여덟의 신예 최인호에게 신문 연재소설을 맡긴 것. 이전까지 '신문 연재소설'은 독자들과 평론가들의 평가를 두루 거치고, 다양한 작품을 통해 문학적 측면에서도 검증이 완료된 중년 혹은, 노년의 유명 작가들이 쓰는 게 관례처럼 돼 있었다.
하지만, 최인호는 '아직 어린 소설가가 얼마나 재밌고 대단한 작품을 쓰겠어'라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의 소설 <별들의 고향>은 연재 초반부터 구독자들의 관심을 단숨에 집중시켰고, 사무실로 신문이 배달되는 아침이면 <별들의 고향>을 먼저 읽기 위한 '신문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던 것. 심지어 병원 간호사들과 환자들 사이에서도 '연재소설 먼저 읽기'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출판시장을 주도하던 발 빠른 출판사 몇몇이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한 출판사가 당시로선 거액인 200만원을 계약금으로 제시하며 최인호를 불렀다. 고등학교 친구인 이장호(영화감독)와 함께 출판사에 나타난 최인호는 1천원 권 20뭉치를 보고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촌뜨기가 아닌 세상물정을 알만큼 아는 서울 출신의 명민하고 세련된 작가였지만, 28세의 그에게는 처음 보는 큰돈이었던 것이다.
최인호와 이장호는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거액(?)의 계약금을 조심스레 싸들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제지하며 표정 관리를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 출판사의 '모험적 투자'는 요즘 말로 '대박'이 났다. 책으로 만들어진 <별들의 고향>이 자그마치 100만 권이나 팔린 것.
<별들의 고향>이 인정받은 건 출판시장에서만이 아니었다. 친구 이장호에 의해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도 당시로선 엄청난 관객이라 할 수 있는 50여만 명이 관람했다.
1970년대 최고의 인기배우였던 신성일과 윤일봉은 다시 한 번 그들의 인기를 증명했고, 여주인공 경아 역을 맡은 안인숙은 단숨에 주목받는 여배우로 떠올랐다. "경아 오랜만에 함께 누워보는군" "술 한 잔 하실래요. 제 입술은 조그만 술잔이에요" 등 조금은 간지러운 대사가 불쑥불쑥 등장하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국도극장 앞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소년 시절부터 문학적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최인호 기실 이러한 최인호의 '대중적 성공'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1945년 해방둥이로 서울에서 태어난 최인호. 형제 많은 집안에서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자랐으나, 문학소년이었던 그는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다. 중고교 시절에는 친구들 앞에서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 너희들은 나를 알았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게 될 거야"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