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 홀랑 벗고 환호성... 무슨 일이냐고요?

덕유산 산행 나섰다 비 쫄딱 맞고 애들과 '개고생' 했네요

등록 2013.11.17 11:47수정 2013.11.1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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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추위 향적봉 오르니 바람이 찹니다. 살을 에는 추위는 아니지만 기온이 많이 내려갔습니다. 오래 버티기 힘듭니다.

추위 향적봉 오르니 바람이 찹니다. 살을 에는 추위는 아니지만 기온이 많이 내려갔습니다. 오래 버티기 힘듭니다. ⓒ 황주찬


덕유산 향적봉에 비가 내립니다. 구름이 빠르게 산을 넘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갑작스런 비에 아이들 몸이 흠뻑 젖었습니다. 온 가족이 물에 빠진 생쥐꼴입니다. 추운 날씨 덕분에 애들 손이 얼음장입니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오롯이 맛봅니다. 두 아들 모습 보고 등산객이 목에 수건 둘러줍니다.


온기가 조금 붙습니다. 덕유산이 겨울을 준비합니다. 사실, 비 예보는 집 떠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살피니, 오후 6시에 비 내린다고 알려주더군요. 때문에 일찍 집을 나서면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나 집에 돌아올 때 쯤 겨울비 만나리라 생각했습니다. 허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게으름 피운 덕분입니다. 생각보다 3시간 빨리 비가 쏟아졌습니다. 집에서 일찍 출발했더라면 산에서 내려올 때쯤 비를 만났겠지요. 덕유산에 오르던 날, 가족 모두 옷을 가볍게 입었습니다. 물론, 비옷은 챙기지 않았고 우산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차가운 비를 속수무책으로 맞았습니다.

a 덕유산 ‘한국의 100대 명산’을 가족이 밟기로 정했습니다.

덕유산 ‘한국의 100대 명산’을 가족이 밟기로 정했습니다. ⓒ 황주찬


a 계곡 맑은 물이 흐릅니다. 단풍은 모두 지고 흐르는 물 따라 낙엽이 내려갑니다.

계곡 맑은 물이 흐릅니다. 단풍은 모두 지고 흐르는 물 따라 낙엽이 내려갑니다. ⓒ 황주찬


a 점심 신나게 걸었습니다. 점심시간입니다. 맛있는 김밥을 먹습니다.

점심 신나게 걸었습니다. 점심시간입니다. 맛있는 김밥을 먹습니다. ⓒ 황주찬


자고, 또 자고... 일어나니 8시

지난 9일 오전 4시, 덕유산 가려고 가족을 깨웠습니다. 아내가 부스스 눈을 뜨더니 다시 쓰러집니다. 세 아들도 일어날 기미를 전혀 안 보입니다. 너무 이른 시간일까요? 저도 다시 이불 속으로 침투합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갑자기 스마트폰이 몸부림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떴습니다. 오전 5시, 아내를 흔들어 깨웁니다. 실눈 뜬 아내가 너무 이른 시간이라며 제 머리를 누릅니다. 더 자랍니다. 달콤한 유혹에 제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곧바로 무너집니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오전 8시입니다. 덕유산 갈 일이 까마득합니다.


여수에서 덕유산까지 3시간이나 걸립니다. 집을 나서니 오전 9시입니다. 덕유산에 도착하면 점심을 먹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을 떠나기 전 일기예보를 들여다봤더니 오후 6시부터 비 온다고 적혀 있습니다. 일단 산을 재빨리 오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 만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늘어지게 잔 덕분일까요? 세 아들, 덕유산에 닿을 때까지 차 안에서 시끌벅적 난리를 피웁니다. 은행나무에 매달인 노란 은행잎이 눈부시건만 세 아들은 관심 없습니다. 그저 셋이서 장난하느라 정신없습니다. 달리는 차 안이 단풍철에 만나는 관광버스보다 더 심하게 요동칩니다.


비포장 길도 아닌데 차가 들썩거립니다. 세 아들이 차 부서져라 떠들지만 단풍 구경 나온 길이라 큰소리칠 수도 없습니다. 시끄러워도 참아야지요. 다행히 창밖은 볼만합니다. 고개 돌려 지나가는 가을을 만끽했습니다. 물론, 귀는 닫았지요. 그렇게 흔들리는 차를 한참 몰다보니 어느새 덕유산입니다.

a 낙엽 나무에 매달린 단풍 개수 세며 길을 걷습니다.

낙엽 나무에 매달린 단풍 개수 세며 길을 걷습니다. ⓒ 황주찬


a 놀이 막내가 낙엽을 모아 허공에 흩날립니다. 영화에서 많이 본 장면입니다.

놀이 막내가 낙엽을 모아 허공에 흩날립니다. 영화에서 많이 본 장면입니다. ⓒ 황주찬


나뭇가지에 단풍 몇 잎, 아내와 제 옷차림은 울긋불긋

차에서 내렸습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몸이 약간 긴장된 상태에서 숲길을 걷습니다. 아쉽게도 덕유산 단풍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길바닥에 낙엽만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나마 나뭇가지에 매달린 단풍 몇 잎이 늦가을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반면, 아내와 제 옷차림은 울긋불긋 야단입니다.

꽃단장을 했습니다. 가을 단풍 구경에 잘 어울리는 옷을 빼입고 왔습니다. 단풍은 모두 사라졌는데 등산복이 단풍을 대신합니다. 나무에 매달린 단풍 개수 세며 길을 걷습니다. 길게 뻗은 길을 걷는데 막내가 낙엽을 모아 허공에 흩날립니다. 영화에서 많이 본 장면입니다. 두 아들도 따라합니다.

단풍은 없지만 그나마 아이들이 재미난 놀이를 찾아 다행입니다. 낙엽 주워 던지며 한참 걸으니 백련사가 나옵니다. 입구에 적힌 팻말을 보니, 향적봉까지 90분 걸린답니다. 비가 올까 걱정돼 하늘 보니 구름이 낮게 깔렸습니다. 고민이 깊어집니다. 내쳐 산을 오를지 아니면 발길 돌려야 할지 난감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분명한 목표가 떠오릅니다. '한국의 100대 명산'을 가족이 밟기로 정했으니 정상에 가야지요. 산 오르다 보면 비도 맞고 눈길도 걸어야 합니다. 비 온다고 포기하면 안 되죠. 하여, 다리에 힘 한번 주고 아이들 다독거려 산을 오릅니다. 덕유산 중턱쯤 오를 때까지 별일 없었습니다.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죠. 스산한 느낌을 안고 정상을 향하는데 날씨가 수상합니다. 후두둑, 낙엽 위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막내가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인지 내려가자고 조릅니다. 큰애와 둘째 그리고 아내는 이미 다람쥐처럼 산을 올라 제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a 겨울비 앞서가던 등산객들이 비옷을 꺼내 입습니다. 막내는 준비한 비옷이 없습니다. 맨몸으로 버텨야지요.

겨울비 앞서가던 등산객들이 비옷을 꺼내 입습니다. 막내는 준비한 비옷이 없습니다. 맨몸으로 버텨야지요. ⓒ 황주찬


a 향적봉 향적봉, 1.5킬로미터 남았습니다. 산에 배낭 메고 걸어본 사람은 압니다. 산길 1백 미터, 참 까마득합니다.

향적봉 향적봉, 1.5킬로미터 남았습니다. 산에 배낭 메고 걸어본 사람은 압니다. 산길 1백 미터, 참 까마득합니다. ⓒ 황주찬


향적봉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산 내려왔습니다

제 눈앞에 남은 건 하얀 안개뿐입니다. 그야말로 '전설의 고향'이 따로 없습니다. 이제 별 도리가 없습니다. 소리쳐 아이들 발걸음 돌이킬 방법이 없습니다. 조금씩 비가 더 거세집니다. 하지만 막내와 노래를 한가락씩 나눠 부르며 애써 태연한 척 산을 오릅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팻말이 나옵니다.

향적봉까지 1.5km 남았습니다. 배낭 메고 산을 올라본 사람은 압니다. 산길 100m, 참 까마득합니다. 가뜩이나 가파른 길에 비까지 내려 미끄럽습니다. 어느새 몸은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앞서가던 등산객들이 비옷을 꺼내 입습니다. 저와 막내는 준비한 비옷이 없습니다. 맨몸으로 버텨야지요.

점점 강해지는 빗방울 뚫고 전쟁터 고지 점령하듯 산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향적봉에 오르니 바람이 차갑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는 아니지만 기온이 많이 내려갔습니다. 오래 버티기 힘듭니다. 온 가족이 모여 사진 한 장 찍고 곧바로 산을 내려왔습니다. 향적봉 내려오는 길, 큰애 손을 만지니 퉁퉁 부었네요.

추운 날씨에 오래도록 비 맞고 산을 내려왔으니 그럴만 합니다. 하지만 고생길이 더 남았습니다. 백련사에서 또 한 시간 넘게 걸어야 주차장에 닿습니다. 참 난감합니다. 생각 없는 부모 때문에 애들이 개고생입니다. 처량한 몰골로 백련사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잠시 몸이라도 녹이려고요.

헌데, 그곳에서 구원의 손길을 만났습니다. 고맙게도 국립공원 직원들이 꽁꽁 언 아이들을 보자 트럭에 타랍니다. 고마운 마음 덕분에 주차장까지 편하게 왔습니다. 공원 직원과 헤어져 차에 오른 뒤 히터를 빵빵하게 틀었습니다. 차가워진 아이들의 몸을 녹여야지요.

a 게으름 게으름 피운 덕분입니다. 생각보다 세 시간 빨리 비가 쏟아졌습니다. 집에서 일찍 출발했더라면 산 내려올 때쯤 비를 만났겠지요.

게으름 게으름 피운 덕분입니다. 생각보다 세 시간 빨리 비가 쏟아졌습니다. 집에서 일찍 출발했더라면 산 내려올 때쯤 비를 만났겠지요. ⓒ 황주찬


a 가족 정상에서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거센 바람을 피합니다. 가족의 따듯함이 오래 남습니다.

가족 정상에서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거센 바람을 피합니다. 가족의 따듯함이 오래 남습니다. ⓒ 황주찬


가족의 따듯함, 어려운 일 닥칠 때 어김없이 발휘되겠죠

그리고 세 아들에게 옷을 모두 벗으라고 말했습니다. 그 소리 듣고 아이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릅니다. 차안에서 홀딱 벗은 채로 떠들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차 안에서 신나게 떠듭니다. 지나는 차가 이상한 듯 바라봅니다. 상관없습니다. 아이들 몸이 우선입니다.

그날 저는 아이들의 소란을 귀로 들으며 차를 몰았습니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눈 깜짝할 새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집으로 오는 길에 젖은 옷은 모두 말렸고요. 아파트 문 열며 다짐했습니다. 산에 오를 땐 꼭 일기예보 믿어야겠습니다. 덕유산, 게으름 피우며 오르다 온 가족이 확실히 망가졌습니다.

그 추운 산꼭대기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정상에서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거센 바람 피하는데 그때 느꼈던 따뜻함이 오래 남습니다. 가족의 따뜻함, 어려운 일 닥칠 때 어김없이 발휘되겠죠. 어수선한 산행 중에 소중한 느낌 하나 건졌습니다. 그나저나 아이들은 옷만 벗으며 왜 그리 좋아할까요?
#덕유산 #향적봉 #백련산 #단풍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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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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