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의 영구집권 의도가 만든 기탁금 제도

[헌법 이야기] 경제적으로 곤궁한 국민의 공무담임권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록 2013.11.15 15:51수정 2013.11.1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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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3억 원
국회의원 선거 1500만 원
시·도지사 선거 5천만 원
시·도의회 의원 선거 300만 원
자치구·시·군의회 의원 선거 200만 원
자치구·시·군의장 선거 1천만 원

위의 금액은 선거 기탁금액수이다.

기탁금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공직선거에서 진지하지 못한 불성실한 후보자들이 난립할 경우 불법선거운동의 감시와 투개표와 같은 선거관리에 지장이 초래된다. 또 후보자들에게 불법선거에 대한 과태료나 불법시설물 등에 대한 대집행비용이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기탁금을 예납하게 할 필요성도 있다. 한편 지나친 후보자난립으로 인하여 표가 분산되어 당선자의 민주적 정당성이 약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후보자난립을 방지하기 위한 기탁금 제도는 이러한 목적에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탁금제도의 연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탁금제도가 도입된 이유는 따로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를 시행하기 전에 장기집권방책의 일환으로, 1958년 선거법상 기탁금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그 후 4·19 혁명으로 출범한 장면 정권에서는 민주화 추진의 일환으로 기탁금제도를 폐지하였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유신헌법체제에서 기탁금제도를 다시 부활시켰다. 이처럼 기탁금제도는 집권자의 영구집권욕이 발현된 시점에 도입되었거나 다시 부활 또는 강화되었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선거 후보자등록 요건으로서 5억원의 기탁금 납부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규정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2007헌마1024)했다.

사례를 보면, 홍길동은 2007년 8월 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17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자로 등록하고 같은 날 '대통령선거 출마 기자회견문'을 발표하였으며, 2007년 12월 19일 실시되는 제17대 대통령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고자 한다고 주장하였다. 홍길동은 대통령선거 후보자로 등록할 때 5억 원의 기탁금을 납부하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이 평등권과 공무담임권 등을 침해한다며 2007년 9월 12일 그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는 이유는, "기탁금제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탁금 액수가 지나치게 고액이라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위 기탁금 액수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진지하고 성실한 후보자라면 적법한 범위 내에서 충분히 조달할 수 있는 금액으로 조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젠 기탁금 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공직선거의 후보자 등록요건으로서 기탁금의 납부를 요구하고 선거결과 유효투표의 일정 비율 이상을 득표하지 못할 경우에 기탁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몰수하도록 하는 것은 선거제도의 민주주의 실현 기능을 억제한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국민의 공무담임권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기탁금제도는 후보자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선거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구현하는 수단이라는 측면에서는 공직선거에서 후보자가 가급적 많이 등록하도록 유도함이 마땅하다. 또한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제재수단을 위법행위가 있기도 전에 기탁금을 예납하게 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미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국가는 기탁금 규정이 없다. 영국, 호주, 캐나다는 입후보에 따른 소액의 수수료 수준이어서 기탁금제도의 존재의미를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기탁금제도가 과거 영구집권을 꾀하는 과정에서 도입되었다는 역사적 배경도 기탁금제도의 유지여부 판단에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탁금제도도 그 금액을 외국 수준으로 줄이거나 폐지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여경수 기자는 헌법 연구가입니다. 지은 책으로 생활 헌법(좋은땅, 2012)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선거 #기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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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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