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소녀는 왜 남매를 납치했을까?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등록 2013.11.18 14:30수정 2013.11.18 14:30
0
원고료로 응원
a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열세 살 소녀 눈에 비친 가정 폭력과 소녀의 선택은?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열세 살 소녀 눈에 비친 가정 폭력과 소녀의 선택은? ⓒ 양철북

최근 울산에서 계모의 폭행을 당한 여덟 살 소녀가 갈비뼈가 16개나 부러져 사망했지요. 가정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위협 때문에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계모의 학대를 받아오다 끝내 죽음에 이른 소녀도 그랬습니다. 맞아서 뼈가 부러져도 넘어졌다고 하고 때려서 든 멍도 자신의 실수라며 숨기고 말이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가정폭력에 대해 이웃들은 "남의 가정 일"이라며, 혹은 귀찮은 일에 끼어들기 싫어 방관하거나 침묵합니다.


만일 당신이 열세 살 어린 소녀였다면 또 동생 같은 아홉 살, 일곱 살 남매가 죽음의 위험에 마주할 만큼 심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더군다나 아무리 주위의 어른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도 믿으려하지 않거나 침묵한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꼬끼리는 보이지 않아>는 바렌부르크라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가정폭력과 그 폭력을 보다 못한 열세 살 소녀 마샤가 남매를 보리밭 한가운데 농기구를 넣어두는 농가로 데려간 이야기입니다.

"아빠한테 꼭 할 말이 있어서."
"내가 창문으로 봤는데 막스 아빠가 그 애를 벽에다 쳐박다시피 밀치더라고. 그 애가 나가떨어지면서 벽에 제대로 모리를 부딪쳤고 말이야."
"으음... 그걸 진짜로 봤다는 거야?"
"응."
"마샤, 그랬다 하더라도 오히려 넌 빠지는 게 나아. 그런 문제는 아동복지국이 신경 쓸 일이니까. 그런 문제는 너 혼자 힘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하지만 아동복지국에서 어떻게 알고 그 일에 신경을 쓰겠어?"
"누군가 이미 복지국 사람들에게 말을 했을 거야. 예를 들어 이웃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학교 선생님들도 알겠지. 소아과 의사들도 있고, 언젠간 누구의 입에서든 무슨 말이 나올 거야."
"언젠가라니? 아빠, 그러면 율리아와 막스는 죽어."
"마샤, 말도 안 돼. 사람들은 그렇게 빨리 죽지 않아."
"하지만 누군가 나서서 뭐라도 해야 해."
"그래, 하지만 너는 아니야. 그러기엔 너는 너무 어려. 그 문제는 네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평소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왔다는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샤의 아빠조차 아동 학대와 폭력에 대해 저렇게 무책임한 답을 해 줍니다. 방학에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간 마샤는 우연히 동네 놀이터에서 아홉 살 율리아와 일곱 살 막스가 아빠의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샤는 그 사실을 자신의 아빠와  할머니와 할아버지,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지만 어른들은 한결같이 '그 애의 아빠는 자동차 대리점을 하는 점잖은 사람이고  우리 동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라'는 충고를 합니다.

율리아와 막스는 아빠의 폭력으로 팔이 부러지고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고 온몸에 멍이 들도록 맞고 살지만 그 사실을 알리면 엄마가 죽을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고아원으로 보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그 모든 사실을 숨기며 삽니다. 그 남매는 아빠의 학대를 피해 몇 번의 가출을 하기도 하지만 반나절 만에 혹은 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맙니다.

마샤는 어른들에게 남매를 폭력으로부터 구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어른들은 누구도 마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무관심과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서구나 동양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열세 살 소녀는 자기가 아는 비밀 아지트인 보리밭 한가운데 푸른 집으로 율리아와 막스 남매를 데려가 밖으로 자물쇠를 걸어두고 집에서 음식물과 물, 읽을거리와 옷 등을 가져다 줍니다.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지요. 경찰에 납치 신고가 들어가고 경찰은 제일 마지막에 그 남매를 만난 마샤가 남매의 행방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추궁하지만 별다른 답을 얻어내지 못하지요. 경찰견까지 동원해  농가에  갇힌 남매를 발견합니다. 이후 마샤는 납치범으로 신문에 크게 나게 됩니다. 할머니는 손녀딸 마샤보다 사교 모임에서 왕따 당 할 자신을 더 걱정하지만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마샤를 이해합니다. 경찰과 의사도 남매의 온 몸에 있는 상처는 오래 전부터 당한 폭행 흔적이며 율리아의 골절된 팔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엉망으로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아이들이 상습적인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늘 매맞던 율리아와 막스의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번역 출간 될 즈음 발생한  계모에게 맞아 죽은 여덟 살 소녀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책의 내용과 닮아 있습니다. 이웃과 학교 선생님조차 그 소녀가 계모의 상습적인 폭행과 학대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하니까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죽은 소녀의 이웃들이 계모에게 중형을 구형해 달라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아직도 음지에서 폭행에 시달리고 있을 수많은 아동들을 생각한다면 작은 경종이 될 수 있을 테지요.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도 사회의 소유물도 아닙니다. 누구나 어른과 똑 같은 인권을 지닌 75억 빛나눈 별 중 유일한 존재인 소중한 생명인 것입니다. 그 소중하고 유일한 생명을 단지 부모라는 이름으로,  힘 이 더 센  어른이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할 자격은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진작 그걸 알았더라면...... 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쩔 수 없이 약간씩은 잘못딘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스와 율리아의 경우엔 너무 늦었어요. 그 아이들은 이제 아무도 도울 수가 없어요. 정말이지 저는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 봤어요.제 말을 믿어도 되요. 그리고 그 의사 선생님 말이예요. 그 분은 ...... 뭘 보셨대요?"

"온몸에 퍼렇게 든 멍, 오래 된 상처들. 어쩌다 찢어진 상처까지, 한 녀석은 골절된 뼈가 엉망으로 붙었다고도 하더라. 보지 않아도 끔찍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어."

"마샤야, 그 아이들은 말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태어나서 단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을 고다. 모든 걸 참아 온 거지. 네 덕분에 이제 우리가 그걸 지켜볼 필요가 없게 되어 기뻤단다."

울산 소녀의  비참한 죽음으로 눈치를 채고도 쉬쉬했던 끔찍한 가정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폭력은 아이들의 신체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갈기갈기 찢어 놓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혹시 당신도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 싫어서 혹은 겉으로 보이는 사실만을 믿으며  이웃의 가정 폭력에 침묵하진 않았는지요.

한 아이를 위해 마을 전체가, 아니 나라 전체가 울타리가 되어 줘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 책과 울산 어린이 사망 사건이 반면교사가 되어 아이들에 대한 가정 폭력에 모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수잔 크렐러 지음. 함미라 옮김/ 양철북 출판사/ 9,500원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수잔 크렐러 지음, 함미라 옮김,
양철북, 2013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2. 2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3. 3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4. 4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5. 5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