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이 스님을 보라

[서평] 마가 스님이 들려주는 <알고 보면 괜찮은>

등록 2013.11.20 13:43수정 2013.11.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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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괜찮은>┃지은이 마가┃펴낸곳 불광출판사┃2013.11.1┃1만 3000원 ⓒ 불광출판사

꽤 오래 전, 어느 스님을 만났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노후에 어디서 살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노후에는 스님께서도 고향 근처로 가셔서 수행 생활을 하시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여쭸습니다. 주변 지리도 익숙하고, 친구들도 있고, 아는 사람들도 많을 거니 덜 적적해서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의외로 고향엔 절대 가지 않겠노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마음을 먹게 된 일화를 들려주셨습니다.


출가 후 몇몇 과정을 거쳐 스님이 되었고, 또다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스님께서는 아는 분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이 들려와 고향 상가엘 갔었답니다. 물론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빌어줄 시다림도 진지하게 준비했었답니다.

스님이 고향을 찾지 않는 이유

하지만 막상 찾아간 고향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삭발을 하고 승복을 입고 있었지만 고향 사람들은 그냥 남다른 옷을 입고 오랜만에 나타난 고향 사람 정도로만 취급을 하더랍니다.

'얘!', '쟤!' 하는 건 보통이고, 모처럼 만난 선배는 "스님이 되었다"고 하니 박박 깎은 머리를 툭툭 치며 '네가 무슨 스님이냐'며 비아냥거리기조차 하더랍니다. 누구네 집 몇째 아들, 누구 동생, 누구누구 친구였다는 과거, 고향에서는 출가 전의 관계를 벗어날 수가 없더랍니다. 하지만 옆 동네 절에 계시는 스님이 오시니 다들 깍듯하게 모시고, 시다림을 하는 동안에는 아주 진지하게 함께 기도하는 모습도 보이더랍니다.

다른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에는 깊이 감명을 받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스님께서는 어떤 말을 해도 소위 '말발'이 서지 않더랍니다. 수행 중인 절에서는 물론 다른 상가엘 갔을 때는 이토록 무시(?) 당하진 않았는데 고향 마을에서는 말발이 서기는커녕 수행자라는 자체가 무시당하는 것 같아 다시는 고향엘 찾지 않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성사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일일지라도 스스로 해결하기는 좀 곤란할 일들을 말할 때를 이르기도 하는 말입니다. 외과의사가 자신의 상처를 수술하지 못하고, 선생님이 당신이 가르치는 과목을 공부하는 자식을 학원 등에서 과외시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스님의 일화 또한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경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도 틀린 말이 되었습니다. 제 머리를 멋지고 버젓하게 깎은 스님이 있습니다. '자비명상' 지도자로 널리 알려진 마가 스님입니다. 

중이 제 머리를 깍은 이야기 <알고 보면 괜찮은>

<알고 보면 괜찮은>(지은이 마가, 펴낸곳 불광출판사)은 사단법인 자비명상 대표 마가 스님이 들려주는 '사는 이야기'며, '선 수행 방법'이며, 마음을 밝혀가며 나를 찾아가는 '자비명상법' 가이드북입니다.

마가 스님은 유복자 아닌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마가 스님의 아버지는 마가 스님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옆집 아주머니와 도회지로 나가 다른 살림을 차립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마가 스님은 목사를 꿈꾸지만 이런저런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강원도 오대산으로 들어가 음독 자살을 결행합니다. 마가 스님이 살아 온 인생 한 토막은 막장 드라마에나 등장할 것 같은 우여곡절입니다.

유복자 아닌 유복자로 태어난 마가 스님이 자라는 과정은 자기부정이며 갈등이며 아픔입니다. 죽기로 한 마가 스님이 월정사 노스님에게 구출돼 출가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 보는 건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반전이며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마가 스님은 스님이 된 후, 처자식을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를 다시금 가족들 품으로 되돌리며 치유해 나갑니다. 마가 스님이 아버지를 다시 가족 품으로 안기는 실천이야말로 중이 제 머리를 깎는 기행이며 묘법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오래지 않아 저는 식구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돌렸습니다. 고흥 고향집에 계시는 어머니, 서울에 사시는 형님과 누님, 광주에 사는 누님 등 가족 모두에게 절로 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가족 치유 법회를 열기 위해서였습니다. 마곡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지도하면서 자비 명상으로 여러 가족의 상흔을 치유하면서 저는 내심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말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제 가족의 상흔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괜찮은…> 40쪽-

스님이 풀어 놓는 이야기는 잔잔합니다. '아! 아팠겠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정말 그랬을까?'하는 반문도 듭니다.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와 당신께서 경험한 사례 속에 자비 명상을 슬금슬금 녹였습니다. 배부른 줄 모르고 하나 둘 집어 먹는 맛난 간식처럼 한 꼭지 한 꼭지의 글을 읽어가다 보면 화를 풀어주는 법도 익히고, 자비심도 길러집니다.

'읽고 나면 참 괜찮은' 책이라는 걸 공감

걷기 명상도 익히고, 불안감을 다스리는 명상도 익히다 보면 어느새 부처님의 가르침도 몇십 가지는 익혔다는 걸 알게 됩니다. 시나브로 젖어드는 가랑비처럼 티나지 않게 젖어듭니다. 동떨어지지 않는 이야기라 공감되고, 공감되는 이야기들이라서 종교나 신앙과는 관계없이 읽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갈대 다발 속 갈대들처럼 서로 엮여 있습니다. 갈대밭을 떠올려보십시오. 바람이 불면 갈대밭은 일시에 우수수 넘어집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일어섭니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넘어지게 하는 것도 옆의 갈대이지만, 일어서게 하는 것도 옆의 갈대입니다.

인간관계도 갈대 무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상처를 준 것도 타인이지만,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도 타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 누군가도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상처를 받았던 것입니다. -<알고 보면 괜찮은…> 253쪽

마가 스님이 <알고 보면 괜찮은>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진언은 행복해지는 방법입니다.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더불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징검다리입니다. 때로는 회상하고, 때로는 빙빙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결국 모두가 가고자하는 종점은 행복한 인생, 행복한 삶입니다.

마가 스님이 책에 풀어 놓은 이야기들은 돌다리를 이루고 있는 돌들처럼 하나하나이면서도 연결돼 있습니다. 돌다리를 내딛듯 덤벙덤벙, 한 꼭지 한 꼭지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가슴은 따뜻해지고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알고 보면 괜찮은>을 읽다보면 따뜻해진 가슴과 편안해진 마음에 자비심까지 드리우니 '읽고 나면 참 괜찮은' 책이라는 걸 저절로 공감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알고 보면 괜찮은>┃지은이 마가┃펴낸곳 불광출판사┃2013.11.1┃1만 3000원

알고 보면 괜찮은

마가 지음,
불광출판사, 2013


#알고 보면 괜찮은 #마가 #불광출판사 #자비명상 #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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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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