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 빨갱이' 박정희, 수영에게 공포를 안기다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64] <여수(旅愁)>

등록 2013.11.20 14:59수정 2013.11.2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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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로 만든 뜰에
겨울이 와 있었다
아무 소리 없이 떠난
여행에서
전보도 안 치고
돌아오기를 잘했지

이 뜰에서
나는 내가 없는 동안의
아내의 비밀을 탐지하고

내가 없는 그날의
그의 비밀을
탐지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나
지쳤는지도 모른다)
여행이 나를
놀래일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나는 집에 와서도
그동안의 부재에도
놀라서는 안 된다

상식에 취한 놈
상식에 취한
상식
상…… 하면서
나는 무엇인가에
여전히 바쁘기만 하다
아직도
소록도의 하얀 바다에
두고
버리고
던지고 온 취기가
가시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1961. 11. 10)

1961년, 수영은 전남 고흥에 있는 소록도 한센병 환자촌을 다녀왔다. 한센병 환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알리는 르포를 써 주기로 하고 이루어진 여행길이었다. 소록도행은 당시 국립소록도 병원의 조창원 원장이 주선한 듯하다.

전체 여행 일정은 명확하지 않다. 조 원장이 병원장으로 취임한 것은 1961년 8월 24일이었다. 같은 해에 쓰인 수영의 산문 <소록도 사죄기>를 보면, 조 원장이 언급되어 있고, 르포를 두어 달 동안이나 쓰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면 수영의 소록도행은 늦어도 초가을 무렵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한다.

애초 수영이 쓰기로 한 르포는 한센병 환자의 자활 명목으로 추진된 간척 사업을 위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간척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소록도 사죄기>에 잘 나와 있다. 폭이 십 리 정도 되는 바다를 막고 방축을 쌓아 한센병 환자들의 정착지를 만드는 사업이었다. <소록도 사죄기>에는 이밖에도 여행의 전후시말과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두루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르포 대신 쓴 글이라 해도 하겠다.


<여수>는 그 소록도 여행의 감회를 시로 그린 것이다. 산문 <소록도 사죄기>와 이 시를 상호 자매편으로 보는 이유다. 아마도 그 여행은 "아무 소리 없이 떠난"(1연 3행) 것이었나 보다. 그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일상이 낯설게 보이는 법이다. 그간 벌어진 이런저런 일들에도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영은 그 모든 것에 심드렁하다. "나는 집에 와서도 / 그동안의 부재에도 놀라서는 안"(3연 7~9행)되는 둔감함 속에 있다.

수영이 르포를 쉽게 쓰지 못하는 이유


왜 이렇게 되었을까. 수영은 <소록도 사죄기>에서 르포를 쉽게 쓰지 못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소록도를 르포 하나로 간단히 취급하고 마는 것이 싫다는 것이었다. 나병으로도 불리는 한센병은 무서운 병이다. 오죽하면 천형이라는 말이 따라붙을까.

오늘날 한센병은 의학적으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인식은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한센병 환자들이 서울에 오면 여관방을 얻을 수 없었다. <소록도 사죄기>에는 수영이 소록도에서 찍어 온 사진을 내밀자, "이 사진 소독했소?"라고 묻는 친구 이야기도 나와 있다.

수영은 이들 얘기를 전하면서 "현대소설을 쓰는 사람이면 나균이 태양빛 아래에서는 부지를 못한다는 것쯤 알고 있어야 할 것"이라며 일갈한다. 수영은 봄이 되면 그 친구를 데리고 소록도를 다시 찾아갈 작정까지 하고 있다. 소록도 문제를 얼마나 크고 중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이유는 '무력'이다. 이 시를 보면 '무력'이 좀 더 큰 이유 같다. 그 무력은 '상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는 '상식'에 취한 자신을 나무란다. "상식에 취한 놈 / 상식에 취한 / 상식 / 상……"(4연 1~4행) 하고 취한 듯 읊어대면서, "무엇인가에 / 여전히 바쁘기만"(4연 5, 6행) 한 자신을 꾸짖는다. '상식'에 취해 바쁜 일상을 보내는 핑계를 대며 너무나도 중요한 소록도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으니, 그가 무력감에 빠지는 건 당연하다.

수영은 왜 그토록 '상식'에 취한 자신을 나무라고 있을까. 그를 그토록 바쁘게 살아가게 만든 그 '상식'은 무엇일까. 도대체 그는 무슨 이유 때문에 '상식'에 취해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혹시 그는 '상식'을 벗어나면 부닥치게 될 어떤 공포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빨갱이 콤플렉스'와 같은 것 말이다.

분명 그런 면이 있었을 것 같다.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반공을 국시의 최우선 순위로 두었다. 쿠데타 세력은 4월 혁명기에 풀어진 극우 반공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명분을 노골적으로 강조했다. 그들은 쿠데타 직후 열흘도 채 안 된 시간 동안 용공분자 2천여 명을 검거했다. 3·15 부정선거의 원흉들을 쿠데타 이후 2~3년 안에 석방한 것과는 달리, 진보적인 민족주의 세력과 혁신계, 청년·학생들을 가혹하게 핍박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을 '빨갱이'로 몰아 처형한 사건은 대표적인 본보기였다.

1961년 7월 4일에 제정·공포한 반공법도 수영의 '빨갱이 콤플렉스'를 자극하지 않았을까. 그 이전 장면 정부도 추진하려다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됐던 반공법은 이미 만들어진 국가보안법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반공법의 독소 조항들은 국가보안법보다 학문·사상·양심의 자유를 더 크게 제약했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쿠데타 직후 김종필이 출범시킨 중앙정보부는, 그렇지 않아도 '빨갱이 콤플렉스'에 빠진  수영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족쇄가 되었을 것이다.

박정희가 반공 정책의 전도사가 된 것은 자신의 과거를 '세탁'하려는 의도가 강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을 향한 미국의 의심을 해소하려고 했다. 좌익과 '빨갱이'에 물들어 있던 박정희의 가족사와 개인사 때문이었다.

박정희의 형이자 김종필의 장인이었던 박상희는 민족적 의기를 지닌 좌파 지식인이었다. 그는 좌익이 주도한 1946년 대구 10·1 사건의 주동자 중 한 사람이었다. 박정희가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를 마치고 처음으로 배치된 춘천 8연대는 '좌익 소굴'로 불릴 정도로 좌익 군인이 많았다. 조선경비사관학교 근무 시절에도 박정희 주변에는 좌익 군인들이 더 많았다. 그는 결국 남로당 군 장교 프락치가 되었다가 체포되어 사형까지 선고받는 '골수 빨갱이'가 되었다.

그런 박정희를 보며 수영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봉건 시대에 농민을 더 핍박하고 괴롭힌 이들은 지주가 아니라 같은 농민 출신인 마름이었다. '빨갱이'를 더 악랄하게 매도한 사람들은 '정통' 보수 우파가 아니라 한때 '빨갱이'였다가 전향한 '짝퉁' 우익들이었다. 우리는 한때 '좌파'였다가 전향한 이들이 내보이는 '빨갱이 콤플렉스'와, 그들의 '빨갱이 혐오증'을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관찰한다.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며 '빨갱이'를 잡아 족치는, 한때 '빨갱이'였던 박정희를 수영은 숨죽인 채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그는 '상식'만이 살길이라며 조용히 입을 다물고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때 그에게는 시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기도 했던 1년 전의 일들이 까마득한 꿈결의 일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여수(객지에서 느끼는 쓸쓸함이나 시름)'가 보여주는 진정한 '쓸쓸함'과 '시름'도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수(旅愁)> #김수영 #박정희 #반공법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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