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풍년, <풍년식탐>(르네상스, 2013).
르네상스
<풍년식탐>은 맛기행이다. 하지만 저자는 식당을 찾지 않는다. 대신 책에는 27가지의 음식과 함께 26명의 '아짐', 1명의 '아재'가 등장한다. "여럿의 혀끝을 얼러대고 비위를 맞춰야만 하는 대중식당에서 봄·여름·가을·겨울, 저마다 맞춤하게 식욕을 채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 저자는 "전라도 곳곳 이 마을 저 마을을 기웃거리며 엄니들의 소박한 밥상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전라도 어매들이 차린 풍성하고 개미(맛에 있어서 보통 음식맛과는 다른 특별한 맛으로 남도 음식에만 사용되는 순 우리말)진 밥상'이 저자가 탐하는 대상이다.
완도의 벗들에게 전화로 김국을 수소문했는데,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위대한(완도 신흥사 템플스테이 담당)씨가 선선하게 어머니의 밥상으로 초대를 한다는 기별이 왔다. 그리하여 완도군 군외면 불목리 영흥마을 황성순 아짐의 집으로 달려갔다. …… "아들이 해주란디 해 줘야제"라며 기다리던 아짐은 행여 밥 때를 놓칠세라 된장물을 끓이며 요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풍년식탐>, 28쪽미디어에 등장한 가공된 맛집, 그리고 식당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TV 출연' 알림판이 우리의 눈과 코와 혀를 얼마나 흐리고 있나. 반대로 "돈 받고 팔 일도 없고, 누구한테 치사 받으려는 뜻도 없는" <풍년식탐> 아짐들의 음식엔 과장이 없다. 서로 '내가 잘났네' 떠드는 음식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음마? 이름은 뭐더게(무엇하게) 물어봐싸? 넘덜한테 내 놀 만한 음석(음식)이 아니여"라며 한사코 '맛자랑'을 거부하는 아짐들, 이 책이 지닌 힘이다.
책은 계절 별로 6, 7개의 음식을 소개한다. 저자인 황 편집장이 사시사철 아짐이 사는 마을을 직접 찾아가 그곳을 대표하는 음식을 먹은 결과다. 그는 봄에 나물향을 맡았고, 가을에 전어를 맛봤다. 홍어를 먹으러 흑산도 가는 배에 올랐고 서대를 먹으러 여수를 찾았다. 저자는 관용구처럼 사용되는 '봄나물', '가을전어', '흑산 홍어', '여수 서대'와 같이 관념 속에서 노니는 음식의 형상을 직접 몸 앞에 가져다 둔다. 그리고 기온, 땅, 재료, 요리 과정, 상차림, 맛보기까지 직접 체화해 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