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시간표, 조선을 바꾸다

[서평] 우리를 디자인한 근대의 장치들, 오창섭의 <근대의 역습>

등록 2013.12.03 14:06수정 2013.12.0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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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탄생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무엇으로부터 형성된 주체들인가. 유래 없는 전통의 단절을 경험한 이 땅에서, 그 전통의 단절로 인해 방향을 잃은 삶의 표정들을 다시 잡아 이어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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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섭의 <근대의 역습> 우리를 디자인한 근대의 장치들 ⓒ 홍시


다양한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디자인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오창섭. 그가 자명해 보이는 것들을 의심하려면 과거를 새롭게 마주할 수밖에 없다며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한 책 <근대의 역습>을 펴내었다.


우리의 현재는 근대를 거쳐온 결과이기도 하고, 근대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아직도 진행형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필 저자가 근대의 '역습'을 말하는 이유는 뭘까. 이미 틀 지워진 어떤 형태의 삶의 양식 속에서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 소시민의 삶을 저자는 주목한다.

그래서 저자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무표정한 샐러리맨 남성과 아들 반 학부모 모임에 나가서 자녀교육 열풍과 명품에 주눅 든 한 여성을 등장시켜 현대인들의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현대를 의심하는 반성적 질문을 던진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은 미래를 두려움으로 인식하거나 환영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두려움은 타인의 욕망을 따라하게 만드는 강력한 추진체이며, 삶에 대한 성찰을 가로막는 방어막이다. 다른 한 편으로 매혹적인 환영을 투사하여 행복은 거기에 있다고, 권력이 배치해놓은 길을 따라가면 다가갈 수 있는 행복한 미래의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미래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현재를 살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산다. 결국 현재는 미래에 이르는 수단이 되고, 현대인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며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 미래의 신자들인 셈이다.

"그들은 미래에도 미래를 위해 살고 있을 것이다."(머리말 12쪽)


그래서 다시 질문한다. "세계와 관계하는 현재의 방식이 유일한 것인지, 만일 아니라면 무엇이 지금 우리의 감각과 감수성을 만들어내었는지, 언제부터 그것들이 작동하여 우리의 욕망과 삶의 풍경을 만들어내었는지."

과거는 묻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이 말은 과거가 켕기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관용구에 지나지 않는다. 벤야민은 말했다. 과거는 화석화되거나 죽은 존재가 아니라, 도리어 '환상과 최면에 취한 현재의 시선을 깨우는 다이너마이트'라고.

저자가 찾는 '다이너마이트', 과거 대면은 주로 일제 강점기, 자주적인 근대화를 놓치고, 조선 민중들이 맞이했던 20세기 초반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를 규정지은 '근대'가 그 때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시기는 단순히 일제의 강압뿐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근대가 이식되고 작동했던 시기임을 명확히 하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오늘의 삶의 방식과 감수성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그 시기에 오늘의 우리를 디자인한 장치들은 무엇일까. 저자는 7개의 장치를 제시한다. 시계, 투시법, 미인대회, 우량아 선발대회, 문화주택, 백화점, 기차가 그것이다. 이 근대의 장치들은 당시의 일간지들과 잡지에서 추출한 많은 사진 자료들과 광고 디자인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 중 관심을 끄는 것은 시계와 투시법이다.

시계는 우리에게 어떤 근대를 안겨 주었는가. 눈치를 챘겠지만 시계는 거대한 시간의 제국을 만들어내었다. 사람이 시계를 만들었지만, 역으로 시계가 사람과 삶을 규정지었다. 전통의 시간을 근대의 시간으로 탈바꿈하는 데는 '시간 기계' 즉 시계가 있었다. 또한 기차의 등장은 시간 제국을 앞당기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저자는 조선을 바꾼 변화의 출발점을 기차로 보고 있다. 기차는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므로, 기차역에 자리한 시간표는 시간을 표시하는 게시물이라기보다 '근대의 등장을 알리는 포고문'이라고 저자는 규정했다. 20세기 문턱의 조선 민중은 일제의 식민지와 더불어 시간 제국의 식민지도 피할 수 없었다.

기차역의 시간표는 버스로, 학교와 공장, 라디오, TV 등으로 그 영향력을 확장시킨다. 이런 시간표의 리듬을 따라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장치들이 오늘날 빈틈 하나 허락하지 않을 만큼 삶의 곳곳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시간의 노예들이다. 시간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살아갈 수 있으므로,

학교의 아이들은 시간의 제국에서 처벌과 보상으로 길들여진다. 지정된 수업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시간, 시간, 시간들 속에 몸의 리듬을 맞추어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보면 시간이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이며 획일적으로 작동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엔 개인차가 허용되지 않고, 시간에 순응하지 않으면 처벌 대상이 된다. 이러한 순응은 결국 공장의 순응, 직장의 순응, 자본에 대한 순응, 순응, 순응, 순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를 디자인하는 또 하나의 장치인 투시법은 다분히 철학적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그래서 투시법이라는 근대의 시선을 파헤치기 위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개념들을 에둘러가며 조금씩 사용하고 있는데, 그만큼 투시법이라는 장치는 근대의 핵심이자 중요한 배경이라고 저자는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한 마디로 투시법은 새롭게 바라봄이다. 투시법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에 배운 바대로 가까운 풍경은 크게 하고 먼 풍경은 작게 묘사하여, 매우 강한 원근감으로 입체 공간을 평면 위에서 실감 있게 재현하는 기법이다. 투시법은 가로수나 전봇대가 쭉 도열한 신작로의 표정이며, 대로를 따라 늘어선 도시 빌딩들의 표정이며, 저 멀리로 이어진 기찻길이 보여주는 표정이고, 학교의 긴 복도가 보여주는 표정이다.

그러다보니 투시법은 대체로 일정한 규칙성을 요구하는 시선이다. 말하자면 투시법적인 풍경을 만들기 위해선 시선의 대상이 매끄러워야 한다. 가능한 직선이면 더 좋겠다. 중간에 이질적인 형상이나 엉뚱한 물체가 있으면 투시법적인 풍경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이런 시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명하다.

이것은 단순히 사물이나 공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로 그 적용 대상이 확대되었을 때, 투시법은 개인들이 어디에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지정하는 역할을 한다. 근대 학교에서 투시법이 어떻게 학생들의 자리와 자세를 규정하였는지를 떠올려보라. 투시법은 일종의 훈육을 위한 도구이며, 그 자체로 권력이다.(본문 91-92쪽)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소실점의 역할이다. 투시법에서 말하는 소실점은 평행한 두 직선이 멀리 가면 한 끝에서 만난 것처럼 보이는 점을 말하는데, 이 소실점은 역으로 바라보는 한 지점이기도 하고, 또한 주체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수렴의 자리이기도 하다.

작게는 한 교실에서 아이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교사의 위치가 소실점이다. 그러므로 투시법으로 만들어낸 전체 풍경을 한 눈에 알 수 있고, 모든 시선을 한 곳으로 끌어 모으는 소실점은 특권의 자리, 권력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1927년에 세워진 조선총독부 건물은 바로 소실점의 위치에 서서 광화문 거리와 식민지 조선을 투시하며, 권력적, 권위적 위치에서 존재감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근대의 역습을 받고 있는 오늘날의 소실점은 과연 어디일까. 청와대일까, 국정원일까. 매끈하고 일사불란한 세상의 풍경을 소망하며, 다양한 목소리들, 다소 무질서하며 우열 없이 누구나 서 있는 그 곳이 중심이 되는 위치 그 자체의 존재성을 부정하는 한 줌 권력인가.

독재자는 모두 자신을 소실점에 두었다. 그리고 세상의 풍경을 획일적인 투시법으로 그리고자 한다. 다른 존재들과 불통하면서 거짓으로, 패션으로, 이미지로, 화려한 외유로 언론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권력도 역시 독재자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좀 더 세련되게 소실점이 되었을 뿐. 이것이 오창섭의 책 <근대의 역습>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풍자적 교훈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근대의 역습>, 오창섭, 홍시, 2013년 11월 1일, 1만 3천 원

근대의 역습 - 우리를 디자인한 근대의 장치들

오창섭 지음,
홍시, 2013


#근대의 장치들 #시계와 기차 #투시법 #소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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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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