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봉을 찾아라!' 사람 찾는 이야기가 아니었네

[서평]학교 현장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

등록 2013.12.04 10:55수정 2013.12.0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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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삶의 한 단면을 통해 인생과 세계 전체를 말하는 정제된 힘을 갖는다. 김선정 작가는 <최기봉을 찾아라!>를 통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학교의 현실을 촌철살인의 모습으로 드러낸다. 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곳 이전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먼저임을 힘주어 이야기한다.

이 책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흥미와 짜임새 있는 탄탄한 구성으로 마지막 책장까지 빠르게 넘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압박감에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이것이 내가 교사이기 때문일까?


a  앞표지

앞표지 ⓒ 최성

<최기봉을 찾아라!>는 제목에서 사람을 찾는 내용이리라 짐작하고 읽기 시작하지만 곧 도장을 찾는 사건으로 변화된다. 너무도 순하고 착해서 기억조차 못한 제자가 보내준 고무도장을 선물로 받고 잃어버린 작가의 경험이 아닐까?

도장은 아무도 모르게 새하얀 벽, 여자 화장실 벽, 남자 화장실 소변기 위, 선생님들의 단체 사진, 서류 결재란의 교장선생님 서명 칸, 상장에서 학교장 직인이 찍힐 곳, 3층 복도 벽, 재활용품 창고 문, 유보라 선생님 반의 솜씨 자랑판에 찍힌다. 남들이 모르게 자기 낙서를 한다면 어떤 학생들이라도 쾌감을 느낄 장소이다.

'걸레질의 여왕'이라는 공주리가 현실의 권력을 조롱하면서 얻는 지독한 카타르시스이다.

"도장 때문에 아이들과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면 꼭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도장을 보는 사람들이 꼭 자기를 보는 사람들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 82 쪽 8~10 줄"

행동특성과 종합의견을 작성할 때 금방 정리되는 학생과 한참을 생각해서 머리를 쥐어짜듯해야 문장이 되는 학생이 있다. 후자가 순하고 착한 학생의 경우이다. 말까지 없으면 머리는 더 무거워진다.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내면에 두껍게 쌓인 응어리를 교사는 만져줘야 한다. 그것이 관계이다.


잔혹한 시간은 길게 복수한다.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 최기봉 선생님은 학생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사람 사이의 형식적인 관계에서 감동은 없다.

"형식이가 간 뒤에 최기봉 선생님은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본 것은 발령이 난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최기봉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사람이 싫었다. 친척집과 고아원을 열 번도 넘게 옮겨 가며 살다 보니 누구에게도 정을 주기가 싫었다. - 62 쪽 12~16 줄"


최기봉 선생님의 제자였던 유보라 선생님은 도장을 선물하여 모두에게 관계를 만들고 인간성을 회복해 낸다. 관계가 형성되면 삶에 희열이 있고 가치가 있다.

"벌써 그만두면 안 되지. 이 녀석이 다 닳을 때까지 찍어야 하니까 말이야. - 87 쪽 13~14 줄"

김선정 작가가 부럽다. 학교 현장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것을 글로 옮겨 쓸 수 있는 능력은 대단히 부러운 일이다. 또 다른 작품들이 기대된다.

이영림의 그림은 흥미와 구성을 더 촘촘하게 만들고 가슴의 묵직한 여운을 더 깊게 한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최기봉을 찾아라!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김선정 지음, 이영림 그림,
푸른책들, 2011


#최기봉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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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놀게하게 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초등학교교사. 여행을 좋아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빚어지는 파행적인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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