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교묘한 말장난... 왜 아버지 죽음 원인 흐리느냐"

밀양 송전탑 반대 음독자살 고 유한숙 할아버지 유가족, 경찰 발표 반박

등록 2013.12.08 17:21수정 2013.12.0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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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지엽적인 사실을 짜깁기 해서 본질을 흐리는, 교묘한 말장난을 하지 말라. 왜 경찰은 아버지 죽음의 원인을 흐리느냐. 아버지는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셨다."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집에서 음독자살을 시도(2일)한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6일)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유가족들이 '음독 원인은 복합적'이라는 경찰의 발표를 반박하고 나섰다. 유 할아버지는 밀양 상동면 고정리에서 돼지를 키우고 있었으며, 한국전력공사측으로부터 보상·이주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농성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a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다 음독자살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유가족들이 8일 오전 빈소가 있던 밀양 영남병원 농협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반박하며 "고인은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해 왔다"고 밝혔다.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다 음독자살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유가족들이 8일 오전 빈소가 있던 밀양 영남병원 농협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반박하며 "고인은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해 왔다"고 밝혔다. ⓒ 윤성효


유가족들은 8일 오전 밀양 영남병원 농협장례식장에 있는 빈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고인이 음독 자살을 시도한 뒤 가족들이 공식 입장을 밝히기는 처음이다.

경찰은 6일과 7일 두 차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경찰은 "가족을 상대로 음독 경위 등에 대해 확인한 바, 특정 사안으로 음독하였다는 진술은 없었다"며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같은 경찰의 보도자료에 따른 언론보도 내용에 대해 유가족들이 분개해 이날 입장을 밝힌 것이다. 고인은 부인과 두 아들(45살, 39살), 딸(42살)을 두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맏상주와 딸, 사위가 참여했다.

"경찰은 일부 지엽적인 사실을 왜곡"

경찰 수사 발표에 대해, 유가족들은 "조사과정에서 일부 지엽적인 사실을 왜곡해서 본질을 흐리고 있다"며 "경찰 발표를 보면, 음독원인을 찾는데 왜 본인의 진술을 우선시 하지 않고, 복합적 원인으로 추정한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큰아들은 "아버지께서 부산대병원 응급실에 계실 때 경찰이 초동수사를 위해 녹음기를 아버지한테 갖다 대면서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라고 물었고, 그 때 현장에는 유족만 아니라 병원 관계자도 있었다"며 "아버지께서는 분명하게 '765 송전탑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본인 진술이 있음에도 경찰 발표 자료에는 어디에도 그런 부분이 나타나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큰아들은 "밀양경찰서의 아는 경찰관이 수사를 하기에, 스스럼없이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 했다"며 "그런데 경찰은 고인의 진술은 빠지고 제가 진술한 지엽적인 사실만 갖고 복합적 원인이라며 왜곡했다"고 말했다.


또 큰아들은 "아버지께서는 송전탑 때문에 돼지 키우기가 힘들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며 "송전탑 때문에 죽겠다는 말을 직접 들은 바는 없지만, 송전탑이 들어서면 돼지를 못 키우고 이곳에 살지 못하니까 다른 데 가서 살아야겠다는 말씀 하셨으며,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하셨다"고 말했다.

가족 분위기에 대해, 그는 "아버지는 쾌활한 성격이고, 자상하셨으며, 농약을 드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소개했다. 또 딸은 "부모님은 다투지 않으셨고, 아버지께서 화가 나면 고함을 지르고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으며, 어머니께서는 대들거나 하지 않고 피하신다"고 말했다. 딸은 "지난 11월 2일부터 닷새 정도 부모님을 모시고 사이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a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다 음독자살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빈소인 8일 밀양 영남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많은 주민들이 조문을 와 걱정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다 음독자살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빈소인 8일 밀양 영남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많은 주민들이 조문을 와 걱정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경찰이 "고인은 평소 술을 드시고 '약 먹고 죽겠다'고 한번씩 말했다"고 한 것에 대해, 큰아들은 "음주가 자살로 이어졌다는 말인데, 반문하고 싶다, 대개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이 꼴 저 꼴 안 보고 약 먹고 죽어버리지'라는 말을 할 것이다, 약주를 드리고 나서 그런 소리는 할 수 있고, 음주를 했기에 우발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자살한 것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께서는 병상에서 의식이 있으실 때, 자식들한테도 '송전탑만은 막아야 한다'고 하셨다"며 "그것이 아버지 유지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유족의 성의 있는 조사내용에 지엽적인 사실만 짜깁기해서 고인이나 유족의 명예에 먹칠하느냐"고 따졌다.

또 큰아들은 "아버지께서는 약주를 좋아하나, 시골에서 농사 지으면 고된 일 하고 술 한 잔씩 한다"고, "돼지를 키우다 보면 할 일도 많은데 매일 송전탑 공사 반대 농성장에 나가니까 어머니께서 안 좋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아버지께서 농약을 마시던 날 낮에 어머니와 같이 밀양시장에 가서 김장 양념을 사서 늦게 왔는데, 아버지께서 왜 늦게 왔느냐고 역정을 내셨던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돼지값 하락과 돈사 처분이 되지 않았서"라고 했는데, 큰아들은 "그것은 송전탑 때문이 아니라는 내용인데, 최근 돼지값은 하락하지 않고 시세가 좋다, 돈사도 처분되지 않아 고민했는데 그 원인이 뭐냐, 송전탑 때문 아니냐, 돈사가 있는 곳은 경치가 수려하고 양돈하기에는 입지 조건이 좋다, 단언컨대 송전탑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반 여건 복합'이라는 경찰의 발표에 대해, 큰아들은 "아니다, 음주도 송전탑 때문에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로 그런 것으로 보인다"며 "가정불화를 말하는 모양인데, 어느 집안이든 소소한 일이 없는 집이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랑하며 살아오셨다, 멀쩡한 집안을 가정불화로 문제가 많은 집으로 만드느냐"고 따졌다.

경찰이 '지역사회 안정을 저해하는 수단으로 호도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한 것에 대해, 큰아들은 "경찰의 책무가 무엇이냐, 사람이 자살을 시도했고 사망에 이르렀다, 경찰은 사망의 원인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할 책무가 있다, 그럼에도 조사 과정에 일부분을 왜곡해서, 원인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게 경찰이다"고 말했다.

또 경찰이 '필요하다면 음독 직후 가족이 진술한 녹음 자료 공개 검토'라고 한 것에 대해, 큰아들은 "검토하지 말고 바로 공개하고, 그대로 공개하라"며 "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먹었다는 내용도 반드시 밝혀라, 심심한 조의 표하지 말고 더 이상의 방해공작은 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새벽 3시, 어머니 혼자 있는 집에 가 수색

유가족들은 경찰이 여러 차례 조사를 하고, 새벽에 가택 수색을 한 것에 대해 분노했다. 경찰은 고인이 음독한 다음 날인 지난 3일 새벽 3시경 자택을 찾아가 수색했다.

또 유 할아버지는 지난 6일 새벽 3시50부경 사망했는데, 경찰은 이날 부산대병원에서 시신검안과 유가족 조사를 했으며, 시신이 밀양 영남병원 농협장례식장으로 옮겨진 때는 이날 오후 6시경이었다.

a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다 음독자살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빈소인 8일 밀양 영남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많은 주민들이 조문을 와 걱정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다 음독자살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빈소인 8일 밀양 영남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많은 주민들이 조문을 와 걱정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큰아들은 "아버지께서 음독한 뒤 초동수사 때 정확한 시간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거의 자정 무렵 경찰이 찾아왔고, 경찰 수사관이 아는 사람이라 성실하게 협조를 해주었다"며 "그런데 경찰이 현장을 방문해야겠다고 해서, 집에는 병든 노모 한 분 밖에 계시지 않으니 밤에 찾아가면 안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머니는 심장도 약하고, 지금 가장 놀라고 계신데, 밤에 방문하면 안된다고 했다"며 "그럼에도 경찰은 새벽 3시(3일)에 집으로 찾아갔고, 새벽 3시가 넘어 어머니께서 전화가 와서 떨면서 이야기를 하시더라, 경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아들은 "경찰은 타살 개연성이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는데, 제가 용의자일 수도 있지만 지금 부친이 위독해 병원에 있을 것이니 걱정 말고 아침에 방문해 달라고 부탁했다"며 "그런데 영장이나 정당한 절차도 없이, 경찰이 불한당이냐"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경찰에 따졌더니, 제2차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어머니가 걱정되어 갔다고 하더라"며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시신 이송이 지연된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큰아들은 "아버지는 새벽 3시50분경 사망하셨고, 시신을 밀양으로 이송하려고 새벽 6시경 운송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그런데 경찰에서 전화가 와서 이송하지 말고 대기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밀양에 와서 조사를 해도 될 것을 부산대병원에서 했고, 초동수사 때 했던 말을 되풀이 했으며, 무려 2시간 반이나 걸렸다"며 "검사지시서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기다렸지만 늦었고, 물어보니 검사가 공판(법정)에 들어가서 늦는다고 했는데, 대책위(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알아보니 그 검사는 수사 담당이지 공판 담당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책위측은 '국회의원의 질의에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송전탑 때문에 자살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고 한 것과 관련해, 큰아들은 "지난 6일 저녁 빈소에 산자부 에너지실장이 조문 왔다"며 "확실치 않다면 왜 조문하러 왔느냐. 앞뒤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산자부 장관은 빈소에 조화를 보내기도 했는데, 주민들이 박살내버렸다.

유한숙 할아버지는 집·축사가 보상·이주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말을 듣고 송전탑 반대 농성에 더 적극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관계자는 고인이 사망한 뒤 "집은 보상 대상이 아니지만, 축사는 소음 피해가 있으면 보상해 주는 대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큰아들과 딸은 "집으로 한전 과장과 직원 한 명이 찾아왔고, 보상과 이주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일방적인 통보로 여긴다"고 밝혔다. 소음 피해 보상에 대해, 큰아들은 "그런 말을 듣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다 음독자살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빈소인 8일 밀양 영남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많은 주민들이 찾아와 조문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다 음독자살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빈소인 8일 밀양 영남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많은 주민들이 찾아와 조문했다. ⓒ 윤성효


고인은 음독 뒤 병원을 몇 군데 갔지만 위세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큰아들은 "처음에 밀양에 있는 한 병원에 가서 응급실 의사한테 위세척을 요구했지만 하지 않았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해서 부산에 있는 한 병원으로 갔더니 남아 있는 위세척기가 없다고 해서 부산대병원으로 갔다"고 말했다.

큰아들은 "처음에는 가족들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는데, 아버지의 뜻을 들었을 때 그냥 덮어둘 수는 없었고, 자식으로서 제대로 알아야겠다"며 "왜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렀을까 제대로 알아야 눈을 감으실 것 같고,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원인을 제대로 알고 싶고 원인규명이 되면,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은 아버지 죽음에 책임이 있고 그 책임있는 사람한데 죄를 묻고 싶다"며 "사과를 받고 적절한 보상을 받고 싶다, 구체적 절차는 모른다, 최선을 다해 평화적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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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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