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 논의, 어디까지 왔나?

끝나는 정전 60주년, 새로 시작할 평화 프로세스

등록 2013.12.08 22:41수정 2013.12.0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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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60주년 끝자락에 서서 한반도 평화를 생각할 때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연초 4개월여 동안 전쟁위기까지 느낄 정도의 군사적 긴장,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른 제재국면의 장기화,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 각기 자기주장에 몰입한 이벤트성 정전 60주년 기념행사. 내외 분단 기득권세력의 질긴 생명력에 새삼 놀라기도 하지만 한반도에 평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비핵화 문제를 거시역사적인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갖게 된다.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메시지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 냉전기 비핵평화 ▲ 탈냉전기 핵외교 ▲ 탈-탈냉전기 핵무장으로 변화해왔다. 냉전기에는 소련의 핵우산에 의존하며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거를 주장했고, 탈냉전기에는 핵개발 시위를 통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추구했고, 조지 W. 부시 정부 이후에는 핵무장으로 안보를 추구해왔다. 북한의 핵정책 변화에는 남북관계보다는 국제질서 변화와 북미관계의 맥락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물론 북한은 지금까지 한반도 비핵화를 최종 목표이자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라고 말하고 있다.

2005년 6자회담 참가국들은 9.19 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큰 그림에 합의했다. 그렇지만 상호 깊은 불신과 이행 방안에 대한 입장 차이를 배경으로 북한은 핵실험을 이어갔다. 박근혜 정부 취임을 앞둔 지난 2월 12일 북한은 3차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3차 핵실험을 단행한 날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핵실험이 미국의 적대정책에 맞서 "나라의 자주권을 끝까지 지키려는 선군조선의 의지와 능력을 과시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은 "핵억제력을 못가진 나라들은 제도 전복을 노린 적대세력들의 군사적 간섭책동에 속수무책인 것이 현세기의 엄연한 현실"이라고 인식하면서, 한반도에서 제2의 한국전쟁 혹은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자신의 핵억제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였다.

이후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 종식과 세계적 비핵화 달성, 혹은 미국과의 비핵 군축회담이 개최되지 않는 이상 핵억제력을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가 자신의 무장해제를 목적으로 하는 협상 의제로 삼아 정치적 흥정이나 경제적 거래를 시도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라고 강조한다. 북한은 핵개발이 자신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적대시정책이 계속되는 한 핵억제력은 확대강화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및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자 북한은 외교·안보 기관들이 나서 핵무력 강화와 함께 자신에 유리한 대화의 틀 조성에 나서고 있는 듯이 보였다. 3차 핵실험 2개월여 후인 4월 18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을 통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약을 상기하면서도,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미국의 대화 제의에 대해 "앞으로 우리와 미국 사이에 군축을 위한 회담은 있어도 비핵화와 관련된 회담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련의 핵실험 이후 북한은 그것을 강력한 지렛대로 삼아 미국과 전혀 새로운 협상의 틀을 형성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핵억제력을 유지 강화해 나갈 것이다. 양수겸장.

불충분한 대화 노력


여름 휴가철이 끝나고 가을에 들어서면서 6자회담 재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포착됐다. 언론에서는 동북아 지도 위에 관련국들의 외교 일정을 그려넣었다. 실제 진행된 외교행보들 중에 대표 사례 두 가지를 중심으로 재구성해본다.

지난 10월 3일 존 케리(John F. Kerry) 미 국무부 장관은 도쿄에서 미일 안보협의위원회(2+2)를 개최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이를 위해 정통성 있는 협상에 나선다면 우리는 대화할 준비가 돼있으며 북한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할 준비도 돼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포기와 북미 불가침조약의 '거래'가 가능하다는 인상을 준 발언이었다.

그러나 일견 매력적으로 보인 케리 장관의 발언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한미일은 그 달 10일까지 남해상에서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참여하는 해상훈련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10월 8일, 연초의 군사적 긴장 이후 6개월만에 나와 조지워싱턴호가 참가하는 해상훈련에 대응해 모든 인민군 부대에 작전 동원태세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총참모부 대변인은 케리 장관의 발언을 겨냥해 "한갖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일축하였다. 10월 12일 국방위원회 대변인도 한미일 해상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케리 장관의 불가침조약 발언을 대해 "미국식 파렴치성과 교활성의 극치"라며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이어 북한 관영언론은 제1차 핵실험(2006.10.9) 7주년을 맞아 발표한 논평에서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전제하면서도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은 조선반도 핵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먼저 취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요구만을 내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한미일이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비핵화 선행 조치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 다른 외교적 행보는 중국의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의 6자회담 재개 노력이었다. 그는 10월 28일 미국에서 글렌 데이비스(R. Glen Davis)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등과 회담한 후 11월 4일 북한을 방문해 북한측과 6자회담 재개 방안을 협의하고 8일 귀국했다.

우다웨이 대표는 북한 등 관련국들과 6자회담의 의제를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내용이 일본 <요미우리신문> 11월 22일자에 보도됐다. 중국측이 제시한 6자회담 재개시 의제는 ▲ 참가국들의 회담재개 동의와 9.19 공동성명에 따른 의무 이행 ▲ 한반도 비핵화 실현 ▲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의 관심사항 해결 ▲ 한미일과 북한의 관계 개선 및 북한 체제를 전복하지 않는다는 명시적 의사 표시 ▲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 노력 ▲ 행동 대 행동 원칙 유지와 5개 실무그룹 가동 ▲ 6개국 협의 정례화 등 7개항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이 조정안은 6자회담 재개 방안이 아니라 재개 이후 회담 의제를 다룸으로써 한국, 미국, 일본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다만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방북한 우 대표에게 "(조정안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해 관심을 표명했다. 이는 앞으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 사전조치와 의제도 함께 조율될 것이고, 그를 위해 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우선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사전조치를 둘러싼 입장 차이를 해소하는 일이 과제이다. 우다웨이의 방북을 전후로 한미일의 6자회담 대표들은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장거리 미사일 문제가 전제조건 협의의 핵심 내용"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데이비스 특별대표는 11월 22일 방한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확실한 징후가 없는 상태에서 6자회담에 복귀하는 데 관심이 없다"라고 말했고, 25일에는 일본에서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으면 대북 압박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6자회담 재개 분위기 조성을 위한 외교적 행보가 가시화 되고 있던 시기에 북한은 자신의 입장을 제시했다. 10월 23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 한반도 비핵화는 자신의 선 핵포기가 아니라며 동시행동으로 접근해야 하고 ▲ 비핵화는 한반도에 대한 외부의 실제적인 핵위협을 제거하는 데 기초해 한반도 비핵지대화로 돼야 하고 ▲ 외부의 핵위협이 가중되는 한 핵 억제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포기를 요구하지만 절대로 구걸은 하지 않는다"는 단호함도 곁들였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또 10월 26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도 "전제조건을 내걸고 대화 재개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는 미국의 부당한 처사"를 비난하고, "미국의 적대시 책동이 날로 노골화되고 핵위협이 가증되는 한 우리는 억제력을 부단히 강화해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렇게 외형상 6자회담의 재개 조건을 둘러싼 당사국들 간 입장 차이는 비핵화 문제에 대한 시각과 해법의 차이를 내장하고 있다. 일단 중국측이 중재안을 갖고 얼마나 협의를 촉진할지가 관심거리이지만 남북관계도 하나의 변수임에 틀림없다

이상 켈리 장관의 불가침 공약이나 우다웨이 대표의 6자회담 재개 노력은 곧바로 관련국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몇 달 내로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정전 60주년을 마감하는 현 시점은 6자회담 재개 조건을 둘러싼 근시안적인 줄다리기보다는 변화된 상황을 고려해 한반도 비핵화 방향을 재설정할 근본적 접근을 마련할 때이다.

소극적 평화 대 적극적 평화

북한은 2012년 4월 헌법 개정에서 '핵보유국'을 선포하고 미국과의 핵군축회담을 주장하며 한미일 등의 핵포기 선조치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한국 내에서는 북한의 세 차례 핵실험을 둘러싸고 정치적 논란을 벌였지만, 북한의 핵 프로그램 개발의 제일 변수는 남북관계가 아니라 북미관계임은 자명하다. 적대관계의 일방으로서 소련의 핵우산이 사라지고 이후 미국의 안전보장 공약이 사라지고 핵선제공격 독트린이 공식화 된 상황에서 북한은 핵 프로그램 강화의 합리적인 측면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남한정부의 비핵화 정책을 회고하고 박근혜 정부의 대응 대안을 생각해보자. 노무현 정부는 부시 정부의 초기 대북 강경정책을 설득해 9.19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데 산파역할을 하고, BDA 파동과 1차 북핵실험을 이겨내며 9.19 이행, 즉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진전시켜 나가며 평화체제 수립에 대비해나갔다. 여기서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과 비핵화 2단계 조치인 10.3 합의는 ▲ 동시행동원칙에 의한 북핵 포기와 대북 안전보장의 병행 추진 ▲ 6자회담과 남북/북미대화의 동시 진전을 보여준 좋은 선례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부시/오바마 행정부와 공조해 그 성과를 무시하고 대북압박에 다시 나서 2, 3차 핵실험을 자초하고 (북한과 함께) 6자회담을 공전시키는데 가담했다. 6개국이 동의한 '한반도 비핵화' 목표는 선 북핵 포기로 축소되었고, 평화체제 논의는 '비핵평화구조'라는 생경한 표현은 있었지만 공론화 되지 않았다. 그 사이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되었고 남한의 대북 관여의 여지는 사라졌다.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역시 한반도 비핵화의 진전 없이 그 성공을 기약하기 어렵다. 비핵화 없이는 '작은 통일'도 어렵다. 시간은 유감스럽게도  우리 편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기다리는 것은 전략 없음의 증표가 된 지 오래고,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선 조치 주장은 북핵 강화의 명분과 시간만 줄 뿐이다. 물론 섣부른 대화도 여의치는 않다.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이 내놓은 입장에 대처할 방안이 간단치 않다.

작금의 국면은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예상 가능한 두 시나리오 앞에서 역사적 결단을 할 때가 되었다. 그 하나는 북한의 핵확산을 저지선으로 삼되 대북 제재 및 봉쇄를 지속하며 위험한 정전체제를 지속하는 경우이다. 이 길은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으로서 북한의 핵능력 강화와 미국의 핵공격 독트린 유지로 한반도 주민 전체의 평화적 생존권은 계속 위협받는다.

다른 한 경우는 한반도 냉전구조의 세 구성요인인 비핵화, 평화체제, 북한의 적대적 대외관계를 하나의 패키지로 접근하는 방안이다. 기존의 북핵정책과 결이 다른 접근이지만, 이 길만이 한반도 비핵화를 가져오고 지속가능한 평화와 통일 환경을 구축하는 이다. 이제 달이 가득 찼다. 소극적 평화 대 적극적 평화의 구도에서 결단할 때가 된 것이다.

북한의 핵 능력 강화는 분명 그 자체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 그렇지만 '북핵문제'의 성격이 한반도 냉전구조의 산물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 없이 평화를 구할 수 없지만 이 문제는 정전체제의 해소와 북한의 안정적인 국제관계 형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 역사적 명제 앞에 근시안적인 접근은 반북 안보 포퓰리즘에 부응할 수는 있어도 지속가능한 평화의 문을 열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는 남한이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인 점을 깊이 인식하고 '북핵문제'를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통한 지속가능한 평화 정착이란 방향성 아래 접근하길 기대한다. 박근혜 정부는 ▲ 중국의 6자회담 중재안에 대한 전향적 검토 ▲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한과의 물밑 협의 ▲ 북미대화 지지 등 한반도 비핵화의 동력을 불어넣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이 지나면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또 다른 '북풍'이 아니라 평화의 훈풍이 찾아오길 바란다.

북핵이라는 괴물은 이제는 정전체제를 극복할 때가 됐다는 사실, 그리고 평화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 구현할 인권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비핵화 #정전체제 #평화체제 #6자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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