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준비할 남북 젊은이 학교 꿈꿔요"

[인터뷰] 탈북 청소년 셋넷학교 교장 박상영 교장

등록 2013.12.11 14:50수정 2013.12.1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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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중인 박상영 교장 남과 북의 대립 속에서 셋넷학교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인터뷰중인 박상영 교장남과 북의 대립 속에서 셋넷학교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강정규

"지금은 아무도 통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나 언젠가 분명히 남북은 하나가 됩니다. '셋넷학교'는 앞으로 있을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이에요."

원주 시내에서 차로 약 20여 분 달려 도착한 원주공업고등학교 소강당에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리자는 가사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강당에서는 '셋넷학교' 친구들의 공연 준비가 한창이다. '지역순회 문화소통 활동'이라는 주제로 탈북 청소년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와 춤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준비가 한창인 20대 남녀 5명 사이에 180cm 훌쩍 넘는 큰 키의 중년 남성이 우렁찬 목소리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망채' 교장... "우린 통일시대 준비한다"

그가 바로 '망채'라는 별명을 가진 셋넷학교 박상영(51) 교장이다. 망채는 망둥이를 나타내는 북한 사투리로 함경도에서 친한 사이끼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추위가 누그러진 포근한 12월 어느날 원주 외곽에 있는 셋넷학교에서 박 교장을 만나 탈북 청소년들과 남과 북이 함께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망채라는 별명은 초창기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이에요. 지금도 굉장히 애착을 갖고 있어요."


탈북 청소년들에게 때로는 무서운 선생님, 때로는 장난 많은 친구 같은 망채 선생. 별명을 통해 셋넷학교 학생들과 그의 관계가 얼마나 각별한지 느껴졌다.

논이 보이는 시골 마을에 자리 잡은 셋넷학교는 학교라기보다는 가정집에 가까운 모습이다. 박 교장과 교사 2명, 탈북 청소년 5명이 그곳에서 함께 생활한다.


"정말 작은 학교죠. 서울에 있을 때보다 규모가 더 작아졌어요."

2004년에 개교한 셋넷학교는 2012년부터 서울에서 원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 종로구에 있을 때는 학생 수가 보통 20여 명 정도였다고 한다.

박 교장은 "서울 중심의 탈북 청소년 정책에서 탈피해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적응하기 위해 학교를 이전했다"고 말했다. 원주공고에서 보여준 공연도 박 교장과 탈북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에 스며드는 과정의 하나다.

 원주 시내에서 차로 20여분 달려 도착한 셋넷학교의 모습.
원주 시내에서 차로 20여분 달려 도착한 셋넷학교의 모습.강정규

"셋넷학교는 단순히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교가 아닙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한국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학교입니다."

그의 말처럼 셋넷학교의 프로그램은 조금 특별하다. 제도권 학교는 1년에 2학기제로 운영하지만 이 학교는 1년을 4개월로 나눠 3학기제를 실시한다.

1~4월은 기초학습 국어·수학·영어 등에 중점을 두고, 5~8월은 직업 적성 교육과 정보화 수업을 통해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한다. 9~12월은 자신의 계획에 따라 자격증을 따거나 외국어 공부, 악기 등을 배운다. 또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도 함께 한다.

2007년 '나의 길을 보여다오!'를 시작으로 올해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까지 7년 동안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5명의 셋넷학교 친구들이 출연해 춤극을 벌인다.

탈북 청소년을 위한 여타 대안학교와 달리 비종교 재단이라는 점도 이 학교의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과 여러 공모 사업을 통해 운영비를 마련하고 있어요.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진정으로 탈북 청소년을 위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철학으로 열심히 운영하고 있어요."

"남북 학생 모두 다니는 학교 꿈꿔"

박 교장의 운영 철학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나타난다. 대부분 탈북 청소년을 위한 단체는 폐쇄적인 경우가 많지만 셋넷학교는 모든 활동을 공개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계속해서 탈북자들을 감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꾸 숨기면 불필요한 오해나 추측만 난무하니까요."

실제로 중국이나 북한에 가족들이 있는 경우나 인권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공개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박 교장은 더 많은 탈북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계속 봐야 해요. 그래야 이 친구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구나 하고 생각할테니까요."

남북이 분단된 지 60년이나 흘렀다. 여전히 남북은 대립하고 있고 북한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다. 이 영향이 고스란히 탈북자에게 돌아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박 교장은 현 상황에서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도록 도와주고, 그들을 포용해야 통일됐을 때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은 자고 일어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죠. 우리 땅에 와 있는 탈북자들을 포용하고 함께 살아야 해요."

한국 사회에 있는 탈북자 2만5000명 중 4000여 명이 청소년이다. 그 중 5명이 이 학교에 있다. 박 교장은 5명의 학생들이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한 조그만 씨앗이라고 보고 있다. 박 교장은 그 친구들을 보듬어 주고 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셋넷학교의 존재 이유라고 한다.

"만나면 다 똑같잖아요. 편견을 내려놓고 가슴으로 이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역시 탈북 청소년들을 가슴으로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박씨는 1991년부터 NGO 활동을 하다가 전교조 교사들과 함께 대안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가 처음 만든 학교는 1995년 세운 '따로 또 같이 만드는 학교' 일명 '따또 학교'다.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다. 이후 2001년 우연히 탈북 청소년을 만나면서 2004년 지금의 '셋넷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탈북 청소년을 위한 학교가 없었어요. 우연히 그들을 만났는데 이를 계기로 현재 학교를 만들게 됐지요."

서울에서 학교가 자리 잡고 원주로 옮기기까지 그는 10년 동안 탈북 청소년들과 함께 했다. 그동안 10회 졸업식이 열렸고, 그 속에서 가정을 꾸리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생겼다.

박 교장은 "졸업생 동창회를 열면 결혼하고 출산한 아이를 데리고 오는 친구들도 있어요. 명절 때 친척들 모인 것처럼 아주 시끌벅적해요"라고 환한 웃음을 짓는다.

셋넷학교가 태어난 지 올해로 10년. 그는 지난 시간들을 우리 땅에 와 있는 탈북 청소년들의 정착을 위한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장은 통일시대를 준비하고 상상할 수 있는 남북 젊은이들의 학교를 꿈꾸고 있다.

박 교장은 "지금은 반쪽짜리 학교예요. 궁극적인 목표는 탈북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한국 청소년들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덧붙이는 글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강원희망신문' 12월 9일 9면에 개제된 기사입니다.
#셋넷학교 #박상영 #탈북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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