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은 김경희씨의 생일, 축하합니다"

'엄지'에서 '엄마'로 30년 살아온 김경희씨... 존경합니다

등록 2013.12.15 11:08수정 2013.12.1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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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작았습니다. 작아도 너무 작았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그녀는, 그녀의 언니가, 오빠가 갓 태어났을 때의 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엄지야"라고 불렀습니다.


엄지라 불리던 그녀가 자랐습니다. 학교 갈 나이가 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또래에 비해 작았습니다. 또래의 친구들 마저 그녀를 "꼬맹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곧 "작은 고추"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키는 머리 하나 작아도 당차기 이를 데 없고 공부도 일등 운동도 일등을 도맡아 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목소리는 어찌나 우렁차던지요.

작은 고추라 불리던 그녀가 이제 제법 처녀티가 납니다. 그녀는 고등학교에 들어갑니다. 집안 살림이 어려워 고등학교는 무리라고 부모님이 말렸지만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부모님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똑똑한 아이를 더 공부시키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회 할 것이라고.

집에 오면 커피 한사발 마시던 '독한' 그녀

고등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이제 "독한 것"이라 불립니다. 새벽에 일어나 어릴 적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맏언니를 대신해, 가족들의 밥을 짓고 오빠와 동생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도시락까지 챙깁니다. 그러고도 제일 일찍 학교에 가 공부를 하고, 수업이 끝나면 한 치과에 가 아르바이트까지 합니다. 집에 돌아오면 커피를 한사발 들이키고 공부를 합니다. 그러고도 언제나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합니다. 친구들은 그런 그녀를 "독하다"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제 한 대학병원 원무과의 "똘똘한 미스 김"이라고 불립니다. 집안의 사정상 그녀는 결국 눈물을 삼키며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녀는 일을 하면서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상사가 커피 한 잔을 끓여와라 시켜도 그냥 타오지 않고 "커피, 프림, 설탕 몇 스푼씩으로 해드릴까요?"라고 묻고 만들어오는 깐깐한 그녀가 싫지 않습니다.


그녀를 눈여겨보던 상사들은 주산이나 회계 등을 직접 가르쳐 주며 점점 중요한 업무들을 줍니다. "똘똘한 미스 김"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밤 늦게 야근을 하더라도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고야 맙니다. "똘똘한 미스 김"은 어느 날. 그녀를 사랑하는 눈이 선한 한 남자를 만납니다. 그 남자는 그녀를 "경희씨"라 부릅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녀의 이름입니다. "경희씨"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 남자가 싫지 않습니다.

'엄마'라는 호칭이 행복하다는 그녀의 이름은...


a  '엄지'라 불렸던 그녀, 저희 엄마 '김경희'씨입니다.

'엄지'라 불렸던 그녀, 저희 엄마 '김경희'씨입니다. ⓒ 전소현


그리고 그녀가 25세가 되던 해 4월,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이듬해 첫 딸을 낳습니다. 이제 그녀는 "주현 엄마"라는 이름을 살아갑니다. 그녀를 사랑하던 남자도 "주현 엄마", 시어머니는 물론 친정 엄마까지 "주현 애미야" 혹은 "애미야"라고 부릅니다. 4년에 한 번, 혹은 5년에 한 번 선거날이나 돼야 투표소에서 주민등록증을 내밀 때, "김경희씨?"하며 선관위 직원이 이름을 물어볼 때나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됩니다. "주현 엄마"라는 호칭은 그 후로 오랫동안 불리게 됩니다. 가끔 "소현 엄마"라고도 불리긴 하지만 어찌됐든 그녀는 1984년 이후 지금까지 "주현 엄마" 혹은 "소현 엄마"로 살아갑니다. 더이상 그녀에게 새로운 이름도 새로운 삶도 주어지지 않은 채, 30년 넘는 이 세월을 "엄마"의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엄지, 꼬맹이, 작은고추, 독한 것, 똘똘한 미스 김은 때때로 '내 이름의 인생은 무언가?'라는 한숨 어린 회한이 밀려옴을 느낍니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 두 딸을 자신이 못한 공부까지 훌륭히 시켰습니다. 곧 환갑이 다가오는 남편이 지금까지도 사회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내조했고, 비가 새던 5평짜리 월셋방에서 따뜻한 32평의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끔 아끼고 아끼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주현 엄마", "소현 엄마"라 불리는 지금이 싫지 않습니다. 잘 자라준 자식들 덕에 "주현 엄마" "소현 엄마"라는 이름이 자랑스럽다고,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12월 15일은 '엄지' '꼬맹이' '작은 고추' '독한 것' '똘똘한 미스 김' '주현 엄마' '소현 엄마'의 56번째 생일입니다. 이제 슬슬 "재원 할머니"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그녀에게, 아무리 "주현 엄마" "소현 엄마"라는 이름이 자랑스럽다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지만 이날 만큼은 꼭 이름을 부르고 싶습니다.

"김경희씨, 생일 축하합니다. 그리고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그리고 추워진 이 겨울,  이 연말. "내복이라도 꼭 챙겨입고 다녀라"라고 우리에게 걱정어린 말씀을 전하시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에게도 말하고 싶습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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