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명신관 앞 게시판에 붙어있는 대자보 행렬
박솔희
"눈을 감아봐. 그게 네 미래야.이런 우스갯소리를 듣고 친구들과 깔깔 대면서도 나는 안녕하리라 믿었습니다.저녁 먹었어? 아니 과제하느라. 아침은? 오전에 수업 있어서. 아이고 힘들었겠다. 집엔 언제 가? 내일 시험 있어서 밤 새. 아, 정말 힘들겠다."- 12월 16일 숙명여대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내용 일부대학을 졸업할 즈음이 되면 같이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을 보기 어려워진다. 각자 살길들을 찾아서 휴학 혹은 졸업유예를 하고 인턴 자리를 찾고, 토익학원을 다니고, 각종 시험 준비를 하고, 벌개진 눈으로 밤을 새며 수많은 자기소개서를 쓰기 바쁘기 때문이다.
소식이 궁금한 친구에게도 연락하기는 쉽지 않다. 무슨 좋은 소식을 듣겠다고. 반대로 나 역시 전해줄 좋은 소식이 없다. 안녕하지 못한 나날에서 안부 인사란 부담이다. '밥 먹었냐'는 질문에 '아니'라는 답변을 하는 것, 혹은 그 답을 듣는 것만큼 부담스런 일이 또 있을까. '응, 대충'이라 얼버무리는 게 현명하다.
애써 과장된 안녕을 주장하는 서로의 페이스북 담벼락만 훔쳐보며 그럭저럭 살고 있음을 확인할 뿐, 차마 '잘 지내?'하고 섣부른 안녕을 묻지는 못한다.
그런 우리에게 자못 조심스레 던져진 질문이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애써 안녕한 척했지만 사실 안녕하지 못했던 우리는 울컥 하고 말았다. 대학에 입학한 지 6년,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학교에 이렇게 많은 대자보가 붙는 모습은 처음 봤다.
나 역시 싱숭생숭한 마음을 잠재우지 못해 썼다.(
이 미친 세상... 숙명인들, 안녕들 하십니까?) 선후배와 동기들은 폭발적인 댓글과 추천, 스크랩, 좋아요, 이메일, 포스트잇 등으로 응원을 보내주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질러라!' 청년 세대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캐치프레이즈가 떠오른다. 우리는 안녕하지 않았다. 다만 무기력한 긍정주의, 멘토 놀음과 청춘팔이로 거짓 희망, 거짓 안녕을 강요 당했다. 이제는 소리내어 말할 수 있다. 아니오, 우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새내기 시절, 날카로운 첫 대자보의 추억
대학에 몸담은 6년 동안 두 번 대자보를 썼다.
처음 대자보란 걸 써본 것은 1학년 때였다. 2008년 5월,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다. 혼자서라도 열심히 촛불집회에 다니던 '열혈 새내기'였던 나는 많은 학우들이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에 대자보라고 부르기에 조금은 작은 4절지 종이에 어설픈 첫 말을 내뱉었다. "우리 촛불집회 같이 가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 집회 현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외로웠던 나는 함께 할 그 누군가를 향해서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열심히 적었다. 1학년에게는 오로지 그 때만 누릴 수 있는 '상징적 위치'가 있다. 나는 용케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내 학번과 이름도 함께 적었다. 보시라고. 여기 새내기도 촛불을 든다고. 동기 여러분, 선배님들 함께 하시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