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도 절규한다 "안녕 못한, 이게 나라냐고?"

[게릴라칼럼] 2013 대한민국, 서민들의 '안녕'은 희망사항인 것인가

등록 2013.12.16 13:18수정 2013.12.1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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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지난 13일, 고려대 한 학생이 교내에 붙였다는 대자보 내용을 읽으며 내내 착잡했다. 요즘 질식할 것 같은 적막함을 느끼는 곳이 어디 대학 뿐일까? 또 애써 모든 것을 외면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분주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비단 대학생들 뿐일까. 동굴에 갇혀, 유일한 출구를 바라보며 서로 발목을 잡고 있는 나와 같은 기성세대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상과 금단(禁斷)이 이성을 대신하고, 불의와 침묵에 정의가 가로막힌 사회... 2013년 대한민국에서 "안녕"은 특권층의 향유일 뿐이다.

눈을 뜨고 귀를 열면 들려오는 안타까운 뉴스들. 생활고를 못 견디던 엄마는 아이들과 목숨을 끊고 아버지는 빚더미로 인해 다리 난간에 매달려 절규한다. 하지만 그런 뉴스를 접해도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할 뿐이다.

폐지가 가득 실린 유모차를 끌고 가는 노인들을 접하면서도 '나에게 다가올 미래는 다를 것'이라는 근거 없는 부정을 동력으로 하루를 버티는 당신, 그리고 나. 사회적 무관심과 개인의 안일 추구가 '현명한 시민의 생활 규범'이 된 2013년 대한민국은 누군가에게 '안녕'을 묻는 것조차 삼가고 금기시하는 그런 시대가 돼버렸다.

비판의식이 살아 있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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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붙어있는 주현우(27,고려대) 학생의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 ⓒ 이희훈


그 책임은 누구의 몫도 아니다. 사분오열된 진보진영과 '비판'이란 단어와 멀어진 대학생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공안정치까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과일 뿐, 원인이 될 수 없다. 원인은 내 안에, 당신 안에, 자리잡고 있다. 국민의 선택이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소통의 도구로 비판의식이 살아있었더라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민주주의가 뒷걸음치는 참담함은 목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윤이 공약을 한번 보래이. 집 가지고 있는 놈은 집값 올려준다고 하지, 땅 있는 놈 땅값 올리준다카제. 월급쟁이한테 봉급올리준다하제? 다 즈그들한테 이익이 있으니까 지지하는기다. 그런데 집값 올려준다고 해서 지지한다고 하면 지가 부끄러운기라. 그래서 개혁의 기수다 뭐다해서 지지하는기다. 국민들은 자기가 자길 속이고 있는 거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SBS 드라마 <추적자>에 나오는 재벌 서 회장(박근형 분)의 대사 중 일부다. 그는 막내딸 지원(고준희 분)이 대통령 후보가 된 사위 강동윤(김상중 분)에 대해 묻자 대통령 후보인 동윤이 국민을 속이는 게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자기를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이건 비단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은 국민 스스로가 자기를 속이며, 허구적인 환상에 미래를 내맡긴 결과였다. 

뉴타운 건설이 모든 이에게 공평한 주거권을 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뉴타운 건설로 파생되는 막대한 이익은 서민들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외면했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주가를 끌어올려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연다고 할 때, 부패하고 정직하지 못한 대통령 후보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유권자들이었다. 유권자 스스로 '정직'과 '민주주의를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는 얄팍한 이기를 맞바꾼 것이다. 부패·부정한 후보가 국민을 기만한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자길 속인 것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주상복합 등 초고층 고급 건물을 짓는다는 목적으로 진행된 재개발사업에 저항하다 6명(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참사였다. 4대강 건설은 토건족의 배는 불렸는지 모르지만 공기업의 수천 억 적자는 고스란히 국민의 빚으로 남았다. '물가안정'이라는 미명하에 대형마트와 SSM을 대폭 늘려 영세자영업자들을 거리로 내몬 것도, '기업 경쟁력 강화'란 논리로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하고, 고환율 정책으로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대기업의 곳간을 채워준 것도 이명박 정권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부정선거 시비의 한가운데 있다.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선거의 공정성·결과에 대한 정당성을 의심받기 충분하다. 그러나 의혹을 가려야 할 수사를 방해하고 시비 자체를 범죄시하는 이해 못할 행태가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시시비비(是是非非). 사리를 공정하게 판단하여 가리는 행위를 여야의 케케묵은 정쟁이나 종북 세력의 모함쯤으로 몰아가려는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 이들이 국민의 따가운 여론을 무서워한다면, 이럴 수 없다.

과거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이었던 이명박 정권의 모습을 답습하는 행보가 박근혜 정권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거 전 목놓아 부르짓던 '경제민주화 공약'은 이미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또 다시 대자본과의 밀월 관계가 피어오르고 있다. 또 방송의 정상화는 요원하건만, '수신료 정상화'라는 이름의 시청료 인상안은 어느새 강행되고 있다. 유신과 독재를 미화하고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려는 의도 등 역사를 되돌리려는 시도는 지금 이 시각에도 계속되고 있다. 아찔하고 현기증 나는 폭주의 연속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절규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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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보다 급한 일이 있어 안녕하지 못합니다' 철도민영화를 비롯한 현 시국을 비판한 고려대 학내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를 읽고 뜻을 모은 학생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시국촛불집회에 참석해 자신이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적은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그래서 나도 안녕하지 않다. 수천 명을 하루아침에 직위해제하는 코레일의 결단에 노동자의 '안녕'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수많은 공기업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요금인상 등으로 해결하려는 정부가 있으니, 서민들의 안녕은 '중산층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대선 공약만큼 허무맹랑한 일이다.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종북몰이에 온 국민이 사상의 노예가 된 작금의 현실에서 '안녕'이란 복종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정치에서 소외당하고 경제에서 빼앗기고 사상의 자기검열을 반복해야 하는 삶... 지금 대한민국에선 1%를 제외한 99%는 안녕하지 않다. 아니 미래의 안녕조차도 꿈꿀 수 없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고려대 한 학생의 대자보는 질문이 아니라 절규였다. 그리고 그 절규는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나도 그 전부터 누군가에게 소리쳐보고 싶었다. 이젠 대학생들을 흉내내는 것이 돼버렸지만, 그래도 내 목소리를 내본다.

'당신이 꿈꾸는 희망은 무엇입니까. 1%를 향한 무한경쟁에 힘들지 않습니까. 나라가 부정으로 얼룩지고 떠밀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아침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는 세상... 하루에도 몇 천명이 직위해제를 당하고 통계조차 잡하지 않는 사람들이 백수로 살아가는 세상... 이런 불행에 당신은 항상 예외일 수 있을까요? 무관심과 자기 합리화가 당신의 아들과 딸에게 가르쳐야 할 삶의 한 방법일까요? 정치적 무관심과 이기심이 우리의 미래, 아이들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나도 대자보라도 붙이고 누군가에게 절규해 보고 싶었다.
#고려대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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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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