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한옥에 살다>서양미학으로 살펴본 한옥 미학의 새로운 고찰
채륜서
한옥연구가 이상현이 쓴 책 <인문학, 한옥에 살다>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제목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 책은 풍부한 인문학의 물줄기를 끌어와서 한옥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드러내는 책이다.
위의 단락에서 중요한 구절은 우리 예술이 한옥과 한옥이 만든 토양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즉, 한옥은 우리 예술 전반을 통찰하는데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한옥이 만들어진 토양은 곧 우리 전통 문화예술 전반의 배경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또 하나는 우리 한옥을 바라보는 잣대를 서양 미학으로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은 서양적인 것이므로, 도리어 서양 미학의 관점으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서양 미학에 포섭되지 않는 한옥만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는 저자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양적인 도구를 사용한다 해도, 결코 숨길 수 없는 한옥의 아름다움은 건재하다는 자신감이다.
비례가 엉망인 한옥, 과연 아름다운가?저자는 서양 미학에서 강조하는 세 가지 미학적 측면에서 한옥에 접근한다. 그 세 가지는 '비례', '밝음', '통합'이다. 물론 이 세 가지 미학 사상은 플라톤, 플로티노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서양의 철학자와 종교사상가가 정립해 놓은 사상이다.
저자에 의하면 서양 미학의 으뜸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비례'라고 말한다. 비례는 '미학의 대이론'이라는 명예를 부여받을 만큼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가장 강력한 기준이다. 비례가 서양 미학의 중심이라는 말은 서양 철학의 핵심인 수학적인 사고와 이데아사상, 즉, 합리적인 이성이 미학의 바탕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 한옥은 어떠한가. 저자는 한 마디로 비례가 엉망이라고 했다. 우리 건축에는 황금비율처럼 확고한 비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굴암을 제외한다면 한옥에서 비례미가 뚜렷한 건축물은 찾기가 어려운데, 우리 한옥을 보면서 비례미를 언급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서양의 고전미학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자가 비례미가 엉망인 예로 든 것이 한옥의 기둥이다. 특히 책 속에 소개된 서산 개심사의 심검당 기둥은 위아래 굵기도 다르고 기우뚱해서 도무지 무슨 비례를 말하기조차 곤란했다. 그냥 투박하게 아무렇게나 세워놓은 것 같은 기둥과 구불구불한 대들보에서 비례를 찾는 것은 우스워 보인다.
그렇다면 한옥은 아름답지 않다고 결론이 난다. 비례라는 형식미를 중시하는 서양인의 눈에 한옥은 아름다울 리가 없는 건축물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영국의 미학자 버크의 말을 인용하여 현대미학에는 비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므로, 도리어 한옥의 아름다움은 현대미학과 닿아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문학으로 파헤친 한옥 속엔 어떤 아름다움이 감추어져 있는 걸까. 바로 불균형을 통해 균형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즉 부분의 개성을 잘 살리면서 전체적인 조화로움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현대미학에서는 이런 것을 몽타주라고 하는데, 부분으로는 균형이 맞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편안함을 느끼는 미학적인 방법이다. 현대미학이 이제야 추구하는 '불균형의 균형'은 이미 오래전 한옥이 완성하였던 것이다.
한옥은 직사광선을 싫어해두 번째 미학적 관점으로 '밝음'이 있다. 말하자면 건축에서 빛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양 건축은 직사광선 문화이고, 한옥은 간접광선 문화다. 서양건물은 벽 자체가 지붕을 받치는 구조여서 창문을 크게 내거나 많이 만들면 벽이 약해지기 때문에 창문을 많이 만들 수도, 크게 만들 수도 없기 때문에 대체로 어둡다. 그래서 서양은 직사광선을 어떻게 해서든 건물에 들이기 위해 애를 쓴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빛을 신의 은총으로 인식하는 종교적 성향과 더불어 빛을 숭배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빛이 강렬하면 눈이 부셔 그 물체가 가진 물질성이 가려지는데, 이는 물질 하나하나의 개성보다 보편적인 정신을 우위에 두는 이데아 사상과 이어져 있다. 선(線)을 무시하는 인상파, 야수파 같은 미술사조가 등장한 것도 직사광선 문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직사광선 문화는 서양의 모든 예술에 작용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양 예술에서 회화의 색은 절대 색을, 회화의 형태는 기하학적 질서를, 음악은 절대 음악을 지향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플라톤이 꿈꾼 이데아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모두 물성을 지우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우리 예술과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절대색이 없어 오히려 개개의 특성인 바탕색을 즐기고, 형태에서는 서양과 거꾸로 기하학적 질서를 무너뜨려 물성을 확보합니다.(본문 64쪽)이에 비해 한옥은 기둥으로 지붕을 받치고, 구들이 있어 벽이 얇아도 되며, 창호지가 발달하여 집 안을 늘 밝게 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해 처마가 길다. 직사광선은 조명의 의미보다 난방을 위한 열의 의미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처마의 길이는 겨울에 직사광선이 집 안 깊숙이 들어오게 하고, 여름엔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선에서 결정된다.
구들과 마당이 만들어내는 '흐름의 건축'그렇다면 왜 한옥은 서양 미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게 되었을까? 저자는 그 이유로 구들과 마당을 말한다. 구들이 세계 건축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창의적인 건축적 장치라는 건 누구나 인정한다. 세상의 어느 나라나 민족도 집을 통째로 난로로 쓴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당을 저자는 한옥의 건축 개념에서 제일 중요하고 특별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 민족의 건축 본능으로 마당을 자리매김하는 저자는 아예 마당을 '텅 빈 건축'이라고 했다.
서양 건축은 건물 이외에 별도의 건축공간을 생각하지 않고, 자연을 제압하며 우뚝 서 있는 건물만을 건축으로 인식한데 반해, 한옥은 마당을 건축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이 마당은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내는 매우 중요한 건축적인 장치로 본다. 안팎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건축, 건물 밖-건물-건물 안을 하나의 공간 흐름으로 파악하는 것이 한옥에서는 거의 본능적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를 '흐름의 건축'이라고 하며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부여한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보고, 건축이라는 인공적인 행위도 자연과의 조화와 교류 속에서 이루어가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저자는 이를 '자연으로 돌리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인공적으로 만들었으면서도 인공미보다 자연미를 더 느끼게 하여, 엄밀한 합리성에 바탕을 둔 비례의 미학으로 파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막사발과 한옥에서 느끼는 천연덕스러운 아름다움과 '숭고'저자는 결정적으로 이런 한옥의 아름다움을 읽는 새로운 눈으로 '숭고'를 제시한다. 한옥이 숭고하다고? 저자는 칸트의 미학 이론을 가져와서 숭고를 설명하는데, 쉽게 얘기해서 숭고는 대상을 우리 지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경지를 말한다. 다시 말해 숭고는 '기존의 표준을 훌쩍 뛰어 넘어 우리를 압도하는 자연의 힘'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한옥의 숭고미를 말하기 전에 먼저 일본 사람들이 충격적인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인 조선 막사발을 예로 들어 말한다. 막사발의 숭고미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는 이런 말을 합니다. '보이지 않는 무한한 외부의 힘이 그들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게 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아프리카 밀림 어디쯤에 있는 미지의 땅에서 맞닥뜨린 비경을 보고 쏟아낸 감탄이 아닙니다. 무엇을 보고 한 이야기냐면 다름 아닌 막사발을 보고 한 이야기입니다. 그릇 하나를 보고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일본인에게 막사발은 이토록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표현만으로 보자면,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들은 그때까지 보던 아름다움을 확 넘어서는 어떤 상을 막사발에서 만난 겁니다. 그들의 표준을 훨씬 넘어서는 아름다움과의 대면,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힘에서 나오는 놀라움, 그래서 그들은 충격을 받은 것이겠죠.(본문 173쪽)그러니까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사람이 만든 것 같지 않고, 어떤 '외부의 무한한 힘'이 만들어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단순한 재현을 훌쩍 넘어서는 구수한 맛, 출렁거리는 일정한 율동, 흥을 느끼게 하는 자연스러움에서, 인공미를 강조하며 매우 정교한 미를 뽐내는 일본인들이 숭고를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숭고가 한옥에도 그대로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한옥을 지을 때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라 마당과 주변 자연과 건물을 통합적인 시야로 파악하며 '대충' 짓는다. 지붕선도 대충 잡고, 기둥과 대들보도 정교하지 않다. 주춧돌도 다듬지 않은 막주춧돌을 사용한다. 재료의 모양을 그대로 살려 천연덕스럽다. 이렇게 대충 짓는 불균형의 균형이 엄밀성을 추구하는 서양 건축가들에게는 충격적인 아름다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대충의 미'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대충의 미가 실력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도리어 그 반대라고 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매끈한 기둥에 잘 다듬어진 주춧돌, 반듯반듯한 대들보와 서까래를 사용한 현대 한옥이나 새로 복원한 탑 같은 것에서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도리어 가다듬지 않고 대충 지은 옛집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자연스러움이 곧 숭고임을 이 책은 알 수 있게 한다. 한옥의 예술성에 대한 저자의 다음 말은 그래서 와 닿는다.
한옥을 감상할 때 가장 허탈한 건 아주 잘 지은 집입니다. 고급스럽게 비례도 맞고, 부재도 인공적으로 꼼꼼하게 다듬어지고 하면, 이야깃거리가 거기서 다 끝나고 맙니다. 모든 것이 정해지고 결정되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잘 지었네, 하면 끝나는 거예요. 우리 미감으로 감상할 만한 것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불균형을 가져야만 균형으로 갈 수 있는 독특한 미학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본문 196쪽)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고 했던가. <인문학, 한옥에 살다>는 우리 한옥을 다만 민족적인 자부심으로만 바라보았던 시각을 해체한다. 한옥 미학을 이토록 정교하게,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알기 쉽게 보여주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한옥 미학이 도리어 현대 미학과 통한다는 사실도 놀라운 발견이지만, 이 책은 앞으로 우리 한옥이 어떻게 발전해나가야 하며, 우리가 만들어왔던 '독특한 미학 세계'를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 것인지, 여러 가지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책이다.
인문학, 한옥에 살다
이상현 지음,
채륜서,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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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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