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영 사진작가와 함께(오른쪽부터 이규상 눈빛 대표, 윤주영 작가, 안미숙 눈빛편집장, 필자)
눈빛출판사
대학교 교수, 신문사 편집국장, 칠레 대사, 문화공보부 장관, 국회의원 등 공직을 역임한 뒤 곧장 사진가로 인생 이모작을 출발해 숱한 개인전과 16권의 사진집 출간 등 예술가로 열정적인 삶을 사시기 때문이다.
남미 오지에서 만난 인디오 원주민을 앵글에 담기 시작하여 인도와 네팔,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사할린 등지를 수차례 방문한 뒤 휴머니즘과 역사의식에 바탕으로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오신 분이다.
이 분은 고위공직자의 비리나 추태와는 거리가 먼 깨끔한 삶을 사시기에 내가 특별히 존경하는 분이시다.
또 그분은 국내 곳곳의 탄광촌, 농어촌, 장애아 및 입양아 등 낮은 곳이나 그늘진 곳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춰 온 휴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나는 몇해 전 눈빛출판사에서 인사를 나눈 구면이라 반갑게 악수를 하고 앞으로 서로 만나기 힘들 것 같은 예감에 증명사진을 한 컷 남겼다. 곧 이어 나의 고교 동창인 이병훈 한국영상자료원장이 친구도 보고 사진도 보고자 찾아와서 반갑게 포옹했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날 밤 류가헌 좁은 마당을 가득 메운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저마다 둘째라면 서러워 할 다큐 사진가들이었다. 올해 아흔으로 1950년대부터 충무로에서 최은희·김지미·김진규·김승호 등 당대 톱스타와 정치인들을 주로 촬영한 김한용 선생을 비롯하여 조명동, 전민조, 엄상빈, 오상조, 김보섭, 김문호, 원덕희 그리고 여성 사진가 정영신씨와 두 김지연 작가 등이 속속 도착했다.
전국방방곡곡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셔서 눈빛출판사 창립 25주년 돌잔치에 축하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울러 그동안 척박했던 대한민국의 사진출판의 어려운 길을 헤쳐 온 그 노고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그러자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이경모, 김기찬, 최민식, 신복진, 이형록 선생 등 고인이 되신 작가들의 존함을 먼저 거명하며 그 어르신들의 명복을 빌었다. 독서 환경이 조악한 대한민국 출판계에서 일반 출판도 매우 어렵다. 그런데도 25년을 오로지 사진 전문 출판사로 험한 길을 한 눈 팔지 않고 굿굿하게 걸어온 것은 근현대사의 역사현장을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은 소명의식 때문이었으리라.
한 예로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이경모의 <격동기의 현장>을 통해 8·15 광복과 여수·순천사건, 그리고 6·25 전쟁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출판사 창사 첫 작품집 <북녘사람들>을 비롯하여 월남파병 및 기지촌 등을 카메라에 담은 일본인 사진가 구와바리 시세이의 <촬영금지>, 경의선을 주제로 한 다큐 사진집 <분단풍경>, 전민조의 <서울스케치>,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최민식의 <휴먼> 시리즈 등 명품 사진집을 펴냈다.
이번 창사 25주년으로 발간한 임재천의 <한국의 재발견>, 정태원의 <서울발 종합사진>, 그리고 한국사진기자협회의 <한국의 보도사진>에 이르기까지 1988년 창립 이래 사진집, 사진이론서, 사진기술서를 중심으로 500여 종 출판하였다고 한다. 사진 전문 눈빛출판사는 대한민국 출판문화에 작은 거인으로 그 이바지한 바가 매우 크다.
뒤풀이 장소에서 소주잔을 나누며 내가 사진의 '비전문가'가 끼었다고 동석한 사진가에게 사죄했다. 그러자 그분들은 나에게 이전부터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 여기고 있다면서 NARA(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발굴한 나의 행적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한 장의 사진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전민조 사진가가 엮고 눈빛출판사가 펴낸 <특종 역사를 말하는 사진> 24쪽의 사진이 그렇다. 1960년 4월 11일 오후, 최루탄이 눈에 박힌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이를 부산일보 마산 주재 허종 기자가 촬영하여 용감하게 보도했다. 그러자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로 성난 민심에 불을 붙인 격으로 이 사진은 4·19 민주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눈빛과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