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세는 일시불 현찰... 이런 출판사 또 없습니다

창립 25주년 맞은 사진 전문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의 남다른 철학

등록 2013.12.20 15:16수정 2013.12.2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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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랑비를 맞으며 한일회담 반대 침묵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1965. 8. 27.)
가랑비를 맞으며 한일회담 반대 침묵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1965. 8. 27.) 구와바라 시세이/ 눈빛출판사

'빼도 박도'

2005년 7월, 김대홍 시민기자가 나의 신간에 대한 서평을 쓰다가 배경 자료를 더 알고자 포털 사이트에 '박도'라고 친 모양이다. 그랬더니 관련어로 '애호박도', '1박도'… 등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낱말이 나오는데 그중 압권은 '빼도 박도'였다는 기사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 뒤로 이따금 나도 포털 사이트에 내 이름을 넣고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점차 나와 관련 깊은 낱말들이 늘어났다.


 통의동 류가헌 대문
통의동 류가헌 대문류가헌
오늘 이 기사를 쓰고자 한 포털 사이트(Daum)에서 '박도'를 쳐 보았다. 박도 소설가, 눈빛출판사,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오마이뉴스>, 한국전쟁 … 등의 관련어가 나왔다.

언저리 사람들은 나에게 눈빛출판사와 어떤 관계냐고, 학연 지연 혈연 등 세속적인 인연을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10년 새 나는 눈빛출판사에서 꼭 12권의 책을 냈고, 지금도 집필 중에 있으며, 앞으로 몇 권 더 낼지는 서로 모른 채 내 건강에 허용하는 한 계속 내기로 묵계가 있다. 하지만 세속적인 인연은 전혀 없다.

며칠 전 손전화 문자로 눈빛출판사 창립 25주년 감사의 밤 초대장을 받았다. 그날(12월 17일)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내가 행사장 길을 찾지 못할까 전화로 구구히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 북촌 서촌 지역은 바둑판 눈금처럼 내 기억에 훤하다. 고교 3년 동안 <경향신문>·<조선일보>·<동아일보> 신문뭉치를 들고 골목골목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류가헌 그곳은 통의동 옛 백송나무가 있었던 자리 부근일 거라는 예감은 그대로 적중해 고불고불한 골목 속의 행사장이건만 누구에게 묻거나 헤매지 않고 단걸음에 찾았다.

 눈빛서원 도서전시장 어귀
눈빛서원 도서전시장 어귀눈빛출판사

사진 갤러리 류가헌

조선 한옥을 사진 갤러리로 개조한 그 착상과 안목에 감탄하며 전시된 작품집을 감상하는데 솔직히 내가 펴낸 책이 10권이나 눈에 띄어 흐뭇했다(두 권은 절판). 곧 이어 윤주영 사진가가 오셨기에 무척 반가웠다. 나는 그 분을 오래 전부터 흠모하고 있다. 그 까닭은 이 시대 공직자의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윤주영 사진작가와 함께(오른쪽부터 이규상 눈빛 대표, 윤주영 작가, 안미숙 눈빛편집장, 필자)
윤주영 사진작가와 함께(오른쪽부터 이규상 눈빛 대표, 윤주영 작가, 안미숙 눈빛편집장, 필자)눈빛출판사
대학교 교수, 신문사 편집국장, 칠레 대사, 문화공보부 장관, 국회의원 등 공직을 역임한 뒤 곧장 사진가로 인생 이모작을 출발해 숱한 개인전과 16권의 사진집 출간 등 예술가로 열정적인 삶을 사시기 때문이다.

남미 오지에서 만난 인디오 원주민을 앵글에 담기 시작하여 인도와 네팔,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사할린 등지를 수차례 방문한 뒤 휴머니즘과 역사의식에 바탕으로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오신 분이다.


이 분은 고위공직자의 비리나 추태와는 거리가 먼 깨끔한 삶을 사시기에 내가 특별히 존경하는 분이시다. 

또 그분은 국내 곳곳의 탄광촌, 농어촌, 장애아 및 입양아 등 낮은 곳이나 그늘진 곳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춰 온 휴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나는 몇해 전 눈빛출판사에서 인사를 나눈 구면이라 반갑게 악수를 하고 앞으로 서로 만나기 힘들 것 같은 예감에 증명사진을 한 컷 남겼다. 곧 이어 나의 고교 동창인 이병훈 한국영상자료원장이 친구도 보고 사진도 보고자 찾아와서 반갑게 포옹했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

이날 밤 류가헌 좁은 마당을 가득 메운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저마다 둘째라면 서러워 할 다큐 사진가들이었다. 올해 아흔으로 1950년대부터 충무로에서 최은희·김지미·김진규·김승호 등 당대 톱스타와 정치인들을 주로 촬영한 김한용 선생을 비롯하여 조명동, 전민조, 엄상빈, 오상조, 김보섭, 김문호, 원덕희 그리고 여성 사진가 정영신씨와 두 김지연 작가 등이 속속 도착했다.

전국방방곡곡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셔서 눈빛출판사 창립 25주년 돌잔치에 축하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울러 그동안 척박했던 대한민국의 사진출판의 어려운 길을 헤쳐 온 그 노고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그러자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이경모, 김기찬, 최민식, 신복진, 이형록 선생 등 고인이 되신 작가들의 존함을 먼저 거명하며 그 어르신들의 명복을 빌었다. 독서 환경이 조악한 대한민국 출판계에서 일반 출판도 매우 어렵다. 그런데도 25년을 오로지 사진 전문 출판사로 험한 길을 한 눈 팔지 않고 굿굿하게 걸어온 것은 근현대사의 역사현장을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은 소명의식 때문이었으리라.

한 예로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이경모의 <격동기의 현장>을 통해 8·15 광복과 여수·순천사건, 그리고 6·25 전쟁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출판사 창사 첫 작품집 <북녘사람들>을 비롯하여 월남파병 및 기지촌 등을 카메라에 담은 일본인 사진가 구와바리 시세이의 <촬영금지>, 경의선을 주제로 한 다큐 사진집 <분단풍경>, 전민조의 <서울스케치>,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최민식의 <휴먼> 시리즈 등 명품 사진집을 펴냈다.

이번 창사 25주년으로 발간한 임재천의 <한국의 재발견>, 정태원의 <서울발 종합사진>, 그리고 한국사진기자협회의 <한국의 보도사진>에 이르기까지 1988년 창립 이래 사진집, 사진이론서, 사진기술서를 중심으로 500여 종 출판하였다고 한다. 사진 전문 눈빛출판사는 대한민국 출판문화에 작은 거인으로 그 이바지한 바가 매우 크다.

뒤풀이 장소에서 소주잔을 나누며 내가 사진의 '비전문가'가 끼었다고 동석한 사진가에게 사죄했다. 그러자 그분들은 나에게 이전부터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 여기고 있다면서 NARA(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발굴한 나의 행적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한 장의 사진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전민조 사진가가 엮고 눈빛출판사가 펴낸 <특종 역사를 말하는 사진> 24쪽의 사진이 그렇다. 1960년 4월 11일 오후, 최루탄이 눈에 박힌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이를 부산일보 마산 주재 허종 기자가 촬영하여 용감하게 보도했다. 그러자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로 성난 민심에 불을 붙인 격으로 이 사진은 4·19 민주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눈빛과 인연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학생의 사진. 이 사진은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따른 분노의 민심에 불을 붙였다(1960. 4.).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학생의 사진. 이 사진은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따른 분노의 민심에 불을 붙였다(1960. 4.). 허종/ 눈빛출판사

2004년 2월 4일, 그날 나는 처음으로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NARA(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5층 사진자료실에서 <Korean War> 사진파일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꼈다. 어린 시절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한국전쟁의 실상을 거기서 보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내가 본 반공 일변도의 한국전쟁 사진과는 전혀 달랐다. 중앙청 광장 게양대에 일장기가 내려가자 도열한 미군들의 경례 속에 바로 성조기가 올라갔다. 인민군에 부역 혐의를 받은 바지저고리를 입은 백성들이 삽과 괭이를 들고 '골로 가는' 장면도, 기총소사로 쓰러진 피난민들과 그들의 보따리도 산길 들길에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고려 때 원나라에 사신으로 간 문익점이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온 고사처럼 이들 사진을 한국으로 가져와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 방법을 몰라 비싼 돈을 주고 자료실에서 현상 복사했다. 그러다가 곧 자료실에서 스캔은 허용되는 걸 알고 동포 유학생에게 스캐너를 빌려 재미동포 박유종(임시정부 박은식 대통령 손자) 선생의 알뜰한 도움으로 NARA에 소장된 사진 가운데 고르고 골라 약 500점을 수집했다.

이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에 <사진으로 본 한국전쟁>이라는 타이틀로 30회 연재했다. 그 뒤 나는 이들 사진을 영구 소장할 수 있는 기록 사진집을 펴내고자 당시 역사비평사 편집장으로 있던 김윤경 고종아우에게 양심적인 사진 출판사를 문의했고 그는 곧장 눈빛출판사를 소개해 줬다. 그래서 이규상 대표를 만나고 그에게 사진파일 모두를 넘겼다.

그는 사진 마니아로 특히 귀중하고 희귀한 우리나라 근현대사 사진 자료를 가장 많이 소장한 사진전문 출판인이다. 그는 한 장의 역사 사진을 구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인터넷 경매에 참여하고 큰 돈도 투척하는 딜러다. 아울러 그는 출판사나 보도기관에게 사진자료를 공급하는 데이터 베이스 구실도 하고 있다. 이는 그가 오로지 사진이라는 한 분야의 우물만 깊이 판 결과일 것이다.

세 번 놀라다

 <한국의 보도사진> 표지. 육군보통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는 윤필용 장군(1973. 4.)
<한국의 보도사진> 표지. 육군보통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는 윤필용 장군(1973. 4.)눈빛출판사
그해(2004) 6월 25일 직전 그는 박도 엮음 <지울 수 없는 이미지>라는 사진집을 펴냈다. 그때 나는 세 번 놀랐다. 그 첫 번째는 사진집의 사진이 원판보다 더 선명했다.

NARA에 소장된 사진은 현상한 지 50년이 넘었기에 사진이 오그라들고, 여러 사람이 만졌기에 아무리 장갑을 끼었을지언정 군더기 때가 많이 묻었다. 게다가 나는 스캐너 다루는 일이 처음이라 제대로 복사치 못한 사진도 많았다.

그런데 눈빛출판사에서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금세 찍은 사진처럼 화면이 깨끔했다. 그 두 번째는 편집이 잘 되었고, 사진집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런 탓인지 곧 여러 신문에서 거의 빠짐없이 대서특필해 주었다.

그 세 번째는 사진집이 나오는 날 소정의 인세를 전액 현찰로 내 손에 쥐어주는데 놀랐다. 솔직히 그 이전까지 나는 책을 10여 권 냈지만, 인세 때문에 속이 상했다.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원고를 쓰느라 팔에 무리가 가서 오십견을 된통 앓으며 2000매가 넘는 장편소설을 출판사에 넘긴 적이 있다. 하지만 계약금 서푼만 받고 절판될 때까지 끝내 더 이상 인세를 받지 못한 일도 있었다.

또, 중국 대륙을 누비며 쓴 항일유적지 답사기는 여비는커녕 슬라이드 필름 값도 되지 않는 인세를 받았다. 나머지는 하는 수 없이 책으로 받는 갑의 횡포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게다가 발행부수에 대한 출판사와 저자간의 불신으로 여간 속이 상하지 않았다. 이런 전근대적인 관행에 저자와 작가를 하늘 같이 섬기는 그의 출판인으로서 정직한 자세는 너무도 당연한 일임에도 오히려 신성한 충격이었다.

영업이익보다 우리 사회에 역사의 자취를 남기려는 한 출판인의 양심, 그것이 오늘의 눈빛출판사를 있게 한 바탕으로 사진작가들은 그것을 알기에 자기 분신 같은 사진작품들을 그에게 서슴없이 맡기는 것이다.

 눈빛서원 마당을 가득 메운 한국 다큐사진작가들
눈빛서원 마당을 가득 메운 한국 다큐사진작가들눈빛출판사

가슴에 늘 품고 싶은 명품의 책

한국전쟁 사진집 <지울 수 없는 이미지>는 책값이 3만5000원 고가임에도 곧 매진됐다. 그러자 이 대표는 2쇄를 찍으며 내가 NARA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다 보지 못했다는 말을 기억하고는 선 인세를 주며 다녀오라고 권했다. 그래서 2005년 11월에 2차 방미한 뒤 2006년 <지울 수 없는 이미지> 제2권과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을 펴냈다.

제2권도 1권 못지않게 잘 나왔지만 NARA의 사진에 김원일, 문순태, 이호철, 전상국 등 쟁쟁한 선배 작가 선생들의 한국전쟁 체험담을 실은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은 비단(사진)에 수(글)를 놓은 격이다. 이 작품집은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내가 NARA의 사진을 다 살펴보지 못한 걸 알고 이 대표는 3차 방미를 권하기에 나는 그 참에 버지니아 주 남단 노퍽의 맥아더기념관까지 달려가서 더 다양한 한국전쟁 사진을 수집해 와 <지울 수 없는 이미지> 제3권과 눈빛아카이브 <한국전쟁·Ⅱ>를 펴냈다.

그는 매번 선인세를 주거나 책이 발간하면 즉각 현찰로 지불했다. 내가 서울로 가지 못할 때는 인세를 온라인으로 보내라고 하면 이 대표는 꼭 강원도 횡성 안흥 산골 내 집까지 부인인 안미숙 편집장과 함께 차를 몰고 와서 현찰을 손에 쥐어주고 갔다.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표지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표지눈빛출판사
한번은 자기 차에 책을 한 상자 싣고 산골 내 집으로 왔다.

"내년 10월 26일이 안중근 의사 100주기입니다. 제가 수집한 자료를 보시고 안중근 평전을 부탁합니다."

나는 그래서 평전 대신에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를 그대로 뒤좇으며 뜨거운 마음으로,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는 마음 속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쓴 <영웅 안중근>을 펴냈다. 나는 이 책을 출판 즉시 안중근 의사의 무덤에 바쳤다. 대한의 젊은이에게도 감히 추천한다.

그 뒤 어느 날 이 대표는 또 다른 참고도서를 안흥 내 집으로 잔뜩 싣고 와서는 '사진으로 보는 근현대사' 원고를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산골 '박도글방' 아궁이에 군불을 땐 뒤 머리를 싸매고 대입 수험생 이상으로 역사 공부를 했다. 그래서 나온 책이 <개화기와 대한제국>이요, <일제강점기>다.

이즈음 나는 <미군정기>를 집필 중인데, 이 책이 출판되면 <대한민국 현대사>를 계속해서 펴낼 생각이다. 하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인생이라 내 생전에 맑은 정신으로 그 큰일을 다 마칠지 단언할 수는 없다. 아무튼 나는 눈빛 이규상 그를 만남으로 역사공부를 하게 되었고 얼치기 역사학도로 입문했다.

한 우물만 파라

새삼 인생길에 '누구를 만나느냐'가 매우 소중함을 깊이 느끼며 이 아름다운 인연이 지속되기를 기원한다. 나는 요즘 오대산 월정사 적광전에 가면 꼭 5배를 드린다. 원래 3배를 드렸는데 작년부터 눈빛출판사와 나의 글 신(神)을 위해 1배, 그리고 딸 며느리 아들을 위해 1배 더 드린다.

그날(12월 17일) 밤 열차로 내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 이 대표한테  문자가 도착했다.

"함께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 문자를 받고 곧장 답을 했다.

"앞으로도 계속 한 우물만 파세요."

 눈빛서원 도서전시장 내부
눈빛서원 도서전시장 내부눈빛출판사

덧붙이는 글 눈빛출판사 창립 25주년 기념전 / 2013년 12월 22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7-10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

인생 가을의 눈빛

이순택 지음,
백산출판사, 2014


#눈빛출판사 #류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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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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