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워 준비한 팥죽 100인분, 경찰에 가로막혔다

민주노총 문도 못 두드린 동지 팥죽과 생강차

등록 2013.12.23 13:14수정 2013.12.2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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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거리를 경찰로 가득 채운 민주노총 앞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앞부터 강북 삼성병원까지 경찰 병력을 배치해 민주노총을 침탈했다.

거리를 경찰로 가득 채운 민주노총 앞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앞부터 강북 삼성병원까지 경찰 병력을 배치해 민주노총을 침탈했다. ⓒ 이명옥


철도민영화를 막기 위한  철도노조 파업이 23일로 보름째가 됩니다. 파업이라고 하지만 4호선과 1호선을 갈아타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하는 동안 평상시와  다름이 없어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더군요. 설사 조금 불편하더라도 민영화를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는 것에 대부분의 시민들이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발을 볼모로 잡은 불법파업이라는 왜곡된 보도에 어이가 없더군요.

경찰이 민주노총이 입주한 건물의 유리를 부수고 침탈했던 22일은 동지팥죽을 먹는 날이었지요. 한 지인이 집회장에 나가 이따금 기사를 쓰곤 하는 제게 거리에서 농성 중인 분들을 위해 팥죽 나눔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저는 민주노총 앞에 계신 분들과  팥죽 나눔을 하면 좋을 것 같아 민주노총에 연락을 한 뒤민주노총 사무실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 분은 팥을 한 말이나 사서 밤샘을 하며 고아 팥죽을 끓이고 따뜻한 생강차를 준비해 22일 오후 3시에서 4시 경 오기로 했지요.

여러 날 걸려 대형 보온통도 빌리고 팥죽을 담을 그릇도 50벌이나 사고 차량을 운행해 줄 분도 구했다기에 저는 팥죽을 나눠주는 데 함께 도와 줄 분께 연락을 해뒀는데 22일 아침 경찰이 경향신문 건물 유리를 부수고 민주노총을 침탈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그 분은 밤새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민주노총 앞에서 함께하는 시민들과 꼭 함께 나누고 싶어 했기에 민주노총 맞은편으로 오라고 했지만 처음에는 서울광장 밀양분향소에 가서 팥죽을 나눠드려야 했습니다. 경찰이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앞부터  강북 삼성병원까지 경찰 병력을 겹겹으로 배치하고 시민들의 통행과 차량통행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인도를 막고 주변 결혼식장을 가는 이들이나 길을 가야하는 이들의 통행을 일방적으로 방해하고 음식점과 상가에 피해를 준 일이야말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국민을 멋대로 볼모잡는 행위가 아니던가요?

팥죽을 준비해 온 분은 지극히 상식적인 삶을 사는 주부며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이는 팥죽을 나누고 돌아가 다음과 같은 느낌을 남겼습니다.


a  민주노총에 전달하려던 팥죽 100인분은  거리의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

민주노총에 전달하려던 팥죽 100인분은 거리의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 ⓒ 이명옥


그동안 함께 못했던 마음 모두 쓸어 모아 팥 한 말에 버무려 넣었다. 보온병 구하기, 삶은 팥 거르기, 생강 까기, 차 운전. 주위에서 모두 단번에 기꺼이 함께 해준다.

미리 다 얘기 해놓고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동지팥죽이랑 생강차는 민노총 문도 못 두드려 보고는 민노총 맞은 편에서 함께 시간을 지켜주는 시민들에게 퍼 돌리고 집에 왔다.


모든 길 통제되고, 몇 겹으로 층층이 에워싸며 병력이 집중되는 걸 보고 온 하루가 서린 날 세우며 어둠으로 몰려온다. 이 밤 무사할까? 하다가 이판사판 민노총 총파업으로 이어져 나라가 홀딱 뒤집히는 건 어떨까 생각도 해본다. 이 밤이 길다.

a  경찰이 인도를 막고 시민들이 통행을 못하게 하고  있다.

경찰이 인도를 막고 시민들이 통행을 못하게 하고 있다. ⓒ 이명옥


아래는 제 답글입니다.

고맙고 고마워요. 연락받고 민주노총 지도부에 연락해 놓고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아침 침탈 소식 들었고, 어디로 밤새 준비한 음식 가져가라 할까 고민하다 양성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그래도 민주노총 앞에서 집회할 예정이니 민주노총 맞은편으로 와 주면 고맙겠다"해서 그리로 오라 약속하고 팥죽 퍼줄 도우미로 김덕희님, 색종이님에게 와서 함께 해달라고 기별해 두었죠.

... (중략) ... 팥죽은 서울광장 밀양분향소에서 삼십 여분에게 드리고도 잔뜩 남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민주노총 근처로 와서 연대 시민들과도 나누라고 연락드렸죠. 팥죽을 어디로 가져왔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시민들이 맛있게 드셨다니 고맙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팥죽을 보지도 못했지만 맛있게 먹은 시민들의 마음과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a 법률가단체 긴급 기자회견 민주노총  강제침탈에 법률가 단체가 규탄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법률가단체 긴급 기자회견 민주노총 강제침탈에 법률가 단체가 규탄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 이명옥


국민은 국민의 일상의 나눔과 삶을 멋대로 침해한 경찰과, 그 경찰들에게 부당한 명령을 내린 사람, 국민의 공영자산을 지켜내자고 파업을 한 철도노조 중 누가 국민을 볼모잡고 국민을 우롱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민영화를 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인 파업을 '국민의 발을 볼모로 잡는 불법파업이다'라며 국민 핑계 삼는 거짓말은 그만 두십시오. 국민들은  철도파업의 정당성을 알고 있으며 진정으로  철도노조 파업이 승리하기를 기원하고 있으니까요.
#민주노총 강제침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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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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