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김대중·노무현 헐뜯기' 2009년부터?

서기호 "남북정상회담 폄훼 및 대응 문서 생산·배포... 6·15 회담 '뒷돈거래'"

등록 2013.12.23 17:54수정 2013.12.2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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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가정보원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로 규정하고 남북정상회담을 폄훼하는 문서를 만들어 대국민심리전에 활용했다"며 국정원의 정치개입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 남소연


국가정보원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폄훼하는 문서를 만들어 국회 등 정부기관에 출입하는 국정원 정보관(IO) 등 직원들에게 배포, 대국민 심리전에 활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문서 중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국정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해 "북한에 돈을 주고 산 '뒷돈회담'"이라고 규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4 선언에 대해서는 "불순한 탄생 배경(임기말 대못 박기)"라고 규정했다. 또 "북한은 지난 10년(98-07) 좌파정부로부터 약 70억불 상당의 지원을 획득했다"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로 지칭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정원은 해당문서에 '종북좌파세력의 잘못된 주장과 올바른 시각'이라는 Q&A 부분을 삽입, 대응전략을 상세히 기재했다. 아울러, 이 문서를 "대외활동이나 업무에 참고"하라고 명시했다.

이는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로 국가정보원법 3조에 명시된 직무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더군다나 국정원이 6·15·10·4 선언 과정에서 특사 및 실무창구 역할을 수행한 바 있어, 스스로 수행한 업무를 스스로 깎아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일 경우, 국정원의 정치개입 행위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장기간에 걸쳐 준비돼 실행됐음을 증명할 것으로 보인다.

서 의원은 "해당 문서가 배포되던 시기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가 국정원의 문서와 유사한 내용을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바로알기'라는 소책자로 만들어 배포했다가 문제가 돼 회수된 적이 있다"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국가보훈처 안보교육 동영상(DVD)을 국정원이 제공해줬다는 의혹과 유사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남북관계개선 요구는 종북좌파 주장... 국민의 뜻은 햇볕정책 포기"

'6·15·10·4 선언 무조건 이행해야 하는가'는 제목의 해당문서는 표지를 포함, 23페이지에 달한다.


표지에는 "국가정체성 확립 차원에서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재평가와 올바른 인식을 위해 아래 자료를 작성하였사오니 대외활동이나 업무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는 안내와 함께 2009년 7월 '3국'이 생산했다는 '정보'가 담겨 있다. 3국은 국가정보원 제3차장 산하 3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댓글 및 트위터 글로 대선개입 의혹을 야기한 심리전단이 현재 국정원 3차장 산하에 속해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09년 2월 취임했다.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국정원은 남북공동선언만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폄훼하는데 집중했다.

6·15 선언에 대해서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에 돈을 주고 산 '뒷돈회담'이었다"며 "대북송금특검 결과, 북한에 거액의 대가(5억불)을 불법적으로 제공하고 성사시킨 뒷돈거래 회담이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6.15 선언은 탄생부터가 투명성·정당성 결여라는 근본적 하자를 안고 있는 문서"라고 규정했다.

10·4 선언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부가 2007년 10월 임기 4개월을 남긴 시점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차기 정부가 햇볕정책 기조를 바꿀 수 없도록 대못을 박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 분명하다"며 "노무현 정부는 정상회담 이후 '10·4 선언'을 조속히 이행시키기 위해 국회 동의절차도 없이 서둘러 '국무회의 심의 → 대통령 재가'만으로 발효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헌법 60조 1항을 적시, 10·4 선언이 위법 발효됐다고 단정했다. 또한 "(공동어로구역·평화수역설정 합의는) 해상경계선으로서의 NLL 개념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NLL 불인정·무실화 시비 근거를 제공"했다고 악평하기도 했다. 

이어 "양 선언(6·15·10·4)을 만들어 낸 햇볕정책은 이미 지난 대선(17대)으로 국민들의 심판을 받았다"면서 햇볕정책 '폐기'도 공식화했다. 국정원은 "민주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뜻인데 국민의 뜻이 '햇볕정책'을 버린 만큼 햇별정책의 결정판인 양 선언을 무조건적으로 이행하라는 주장은 민주주의 원리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당 및 시민사회의 남북관계 개선 요구에 대한 대응전략도 Q&A를 통해 상세히 기재했다.

현 정부가 6·15·10·4 선언을 묵살하고 남북기본합의서를 강조한 것이 남북관계 경색 원인이라는 문제제기에는 "남북관계 경색은 우리의 대화 제안에 대해 북한이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6·15 10·4 선언 이행하는 쪽으로 하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는 답변을 안내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전 정권에서 이룩한 합의서는 그대로 승계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문제제기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실패한 정책을 그대로 승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답변을 제시했다. 또 남북관계개선 요구를 "종북좌파세력의 잘못된 주장"이라며 "이명박 정부 출범은 잘못된 대북정책을 시정하라는 민의의 반영이자 국민의 명령"이라는 대응논리를 제시했다. 

"국정원 직원이 직접 제보한 것... 정치개입 장기간·체계적으로 준비됐다"

현재 국정원 측은 해당 문서 생산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 의원은 "국정원 직원이 직접 제보해 준 문서로 컴퓨터 파일을 프린트한 것이 아니라 국정원 내부에서 배포된 원본을 입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제보자 보호를 위해 구체적 신원은 밝힐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 의원은 또 "전문 공개 여부는 국정원 측의 차후 대응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며 "문서 내용 중 국정원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정보도 담겨 있다"고도 지적했다.

또 "제보자는 국정원의 불법적인 정치개입이 단순히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갑자기 불거진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취임하고 나서부터 장기간에 걸쳐 국정원 내부에서 체계적이고 공격적으로 준비된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며 "국정원은 제보자 색출보다는 문서의 작성경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서 의원은 문서 작성 배경에 대해서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와 연관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지난 6월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서도 드러났듯이 원 전 원장은 취임 후 국정원의 정치관여 지시를 구체적으로 해왔다"며 "원 전 원장은 2009년 5월 15일 전부서장 회의에서 '위축됐던 국정원 업무를 좀 더 공격적으로 수행하라'고 지시했는데 그 시점을 전후로 정치관여 논리를 집중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그는 "(해당문서는) 일종의 업무편람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대선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던 3차장 산하 심리전단의 기본 자료로 활용된 듯 하다"면서 "국정원 개혁특위 야당 위원들에게 필요한 경우, 해당 문서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서 의원은 "(최근) 국정원은 이른바 자체개혁안을 통해 '방어심리전 업무범위를 명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이라는 부분을 넣었는데 이번에 공개한 문서에 의하면 국정원은 6·15·10·4 선언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한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정통성 부정 등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영역까지 대국민·대남심리전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기호 #국정원 #남북공동선언 #노무현 #원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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