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언론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 고광헌

[인터뷰] 선생님, 시인, 기자인 고광헌을 만나다

등록 2013.12.24 15:34수정 2013.12.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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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말 그대로 '큰 공부'를 하는 곳입니다. 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자연의 이치와 원리를 탐구하며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묻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대학은 취업을 위한 학원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겨레> 대표이사를 끝으로 언론현장을 떠나 올 3월부터 한림대에서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고광헌 교수를 만났다. 고교 대학시절 농구선수였고 체육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한 시인이자 기자인 고 교수는 "취업학원화 한 대학과 기형적인 언론현실"에 대해 시종 우려의 시각을 보였다.

- 한겨레는 진보적 성향의 신문이다. 전통적 의미의 저널리즘 차원에서 볼 때 언론으로서 중립을 지키기도 어려울 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보적인 가치를 지키자면 기사도 조금 배타적이지 않을까 하는 데서 나온 질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단순하게 한 가운데, 수리적 가운데는 중립이 아니다. 저널리즘적 중립의 가치는 '올바름'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올바름은 사실과 진실로 말하고 증명되며 해석된다. 기사는 오직 올바른가의 여부가 중립을 가르는 기준이 돼야 한다. 한국은 정파적인 시각이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 쉽게 흑백논리에 빠진다.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 한국의 보수와 이를 대표하는 조·중·동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상적인 민주사회라면 진보와 보수는 수레의 앞뒤 바퀴처럼 조화를 이뤄야 한다. 네 바퀴가 균형과 힘의 배분을 받아야 굴러가듯 사회 역시 보수와 진보적 가치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한국의 언론지형은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여론의 독점현상이 극심하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90% 대 10%로 보수와 진보담론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여론의 왜곡이 나오고 이게 깊어지면 민주주의가 병들기 시작한다.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불법한 체포영장 집행에서 보듯 국가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이 쉽게 유린되는 민주주의 파괴가 일어난다. 박정희의 공화당에서부터 전두환의 민정당, 한나라당, 새누리당까지 이른바 보수정당을 보면, 이 정파들은 전통적 의미의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다. 기득권이 흔들리면 늘 안기부 검찰 경찰 등 폭력적 국가기구를 동원해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행동을 한다.

그때마다 언론의 자유와 법질서가 파괴되고 그마나 조금씩 명맥을 유지해온 '보수적 가치'마저 흔들어 놓는다. KBS MBC SBS 등 지상파와 조중동, 조동의 종편 등은 이들의 충실한 나팔수 노릇을 해오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 그렇다면 건강한 보수주의에 대한 희망도 없다는 건가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세력으로서 그들의 힘은 너무 약하다. 한국사회에서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보수를 참칭하며 집권해온 정파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로 등장하지만, 집권 등 정치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버림을 받는다.

박근혜의 개혁이미지를 만들어 준 김종인 이상돈 안대희 등이 생생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을 내세워 약속한 공약은 모두 철회하거나 시늉만 하고 있다. 한국엔 진정한 보수가 없다. 김구 김규식 선생 같은 민족주의자이자 보수의 상징이 될 만한 분들이 친일파를 중용한 이승만 시절에 암살되고, 수많은 보수 민족주의자들이 백색테러에 당하면서 씨가 마르다시피 됐다."


- 좀 소프트한 질문을 하겠다. 시인으로 문학을 하면서 체육교사를 했다. 체육과 문학, 금방 조합이 안 된다. 스포츠와 시, 혹은 문학과 체육에 대해 말해 달라.
"중학교 시절에 문학 소년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이후 6년여 동안 엘리트 농구선수 생활을 했다. 농구를 하면서 문학의 꿈이 멀어졌으나, 대학 3학년 때 결핵으로 농구를 못하게 되자 다시 시와 문학이 찾아왔다. 4학년 때와 군 시절에 좋은 보직을 받는 행운이 따라 책을 많이 읽었다. 군대 생활과 초짜 교사생활을 할 때 쓴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내게 문학은 체육활동을 통해 굳어진 내 영혼의 굳은살에 뿌리는 이완제인 셈이다."

- 농구선수, 시인, 교사, 신문사 사장까지 지냈는데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였나?
"26살 때부터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파면돼 쫓겨 날 때까지 5년여 동안 선일여고에서 학생들과 함께 한 청년교사 시절을 꼽겠다.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즈음에,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체육수업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자기 주도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목도하는 것은 벅찬 보람이었다."

고광헌 교수 주요 약력
▲198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인>지 등단 ▲선일여고 교사 ▲1985년 <민중교육지사건>으로 파면 ▲1986년 민주교육실천협의회 사무국장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 <국민운동> 편집장 ▲1988~2011년 <한겨레> 창간 기자 ▲전국, 민권사회, 문화, 체육부장, 편집부국장, 국장, 사장실장, 총괄전무, 대표이사 ▲2009년 한국디지털뉴스협회 회장 ▲2008년 신문협회 이사,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2011년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시집 <시간은 무겁다> <신중산층교실에서>등 ▲평론집 <스포츠와 정치>
-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기자는 당대 사회의 중심이 되는 어떤 '정신'을 체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본다. 정신이라 함은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일수도 있고, 세속과 현장을 중시하되 그로부터 정신적 거리를 가를 줄 아는 관찰자적 시선일 수도 있다. 기자가 쓰는 글은 공익적이다.

지금은 누구나 기자일수 있고 자신의 미디어를 갖고 있는 시대다. 다양한 플랫폼이 특징인 디지털미디어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예전의 기자는 관찰자이면서 기록하는 사람이고 권력이기도 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모두가 기자'인 시대에 기자의 미덕은 겸손함이 첫째다. 예비 기자는 부지런히 읽고 쓰고 고치는 훈련을 하라고 권고한다. 좋은 기사를 해체해서 그 의미와 해석을 낱낱이 분석하고 이해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이 과정을 잘 끝내면 자기의 글을 쓸 수 있다. 기자는 늘 현장에 있어야 한다."

- 일반 대학생들의 모습은 어떤가?
"이야기하기 조심스럽다. 알바에 지쳐가고 스펙 쌓기에 허둥대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이런 현실을 물러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돼먹지 못한 세상 앞에 절망하는데 염치없지만 늘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지금은 좋은 선생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하지만 이 말은 꼭 들려주고 싶다. 모든 공부는 20대에 승부를 봐야한다는 것이다. 공부는 독립된 개인으로 현실에 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자존감을 지키며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는 밑천이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고광헌 #한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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