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문제는 민영화가 아니라 쪼개기

등록 2013.12.26 11:06수정 2013.12.2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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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가 왜 쪼개기가 아닌 민영화를 이슈로 삼았는지 안타깝다. 정부도 여당도 대통령도 "민영화 안 하겠다는데 왜 민영화 타령이냐?"고 반박한다. 당연한 소리이다. 자기네들이 집권할 때는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임기는 4년 남았다. 4년 또는 그 뒤에는 어떤 사람이 나와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운하에 콩깍지가 씌여 막무가내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인 MB와 같은 사람이 권력을 쥐면 "뭐든지 민간 기업이 잘해, 민영화 검토해 봐!"라면 민영화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대선자금이라도 헌납한 재벌기업이 수서발 KTX 노선에 군침을 삼키면 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 문제의 핵심은 민영화가 아니고 KTX를 쪼개는 것이다. 쪼개기가 장기적으로 민영화로 가겠지만 당장은 아니다. 따라서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를 떼어내 가면 코레일은 죽게 된다. 철도종사원들의 생존권 수호를 위해 궐기할 수밖에 없다"고 외쳐야 하는데, '민영화의 가능성'을 이슈로 삼으니 철도산업을 모르는 박 대통령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알 수가 없고, 자기의 약속을 안 믿어주는 철도노조가 괘씸할 수밖에 없다.

"KTX를 쪼개지 말라!"고 비명을 질렀다면 아마 자애로운 대통령께서 깊이 논의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철도노조는 문제의 핵심이 쪼개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중적 정서를 의식하여 민영화로 슬로건을 삼은 것 같은데 패착이다. 가상이 아닌 현상을 가지고 호소를 해야 칼자루를 쥐고 있는 권력자가 귀를 기울일 것 아닌가? 

내가 보기에 이번의 철도문제는 권력놀음의 부산물이다. 주무장관의 부박(浮薄)한 식견으로 생긴 불상사이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한 철도문제의 대책은 제2의 철도공사였다. 서 장관이 철도산업을 모르는 주변의 몇몇 사람과 가진 논의로 내린 결론이 제2공사였고, 그것의 변형이 현재 밀어붙이고 있는 자회사 체제이다.

서승환 장관은 경제학자 출신으로 주택문제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경제학 원론에 담긴 '경쟁의 효과'만 맹신하고 철도산업의 특성을 무시하며 복수의 업체로 경쟁을 시키자는 대학생 수준의 식견을 펼치는 것이 이번 철도파업의 뿌리이다. 한국철도가 저급지식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KTX를 쪼개면 안 된다"고 절규하던 최연혜 사장도 장관의 위세에 눌려 지금은 철도산업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철도에 논리는 없고 무지한 파워만 있다.

그런데 이 무지한 파워를 제어해야 할 민주당도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몸통인 쪼개기는 제쳐두고 꼬리인 민영화만 붙잡고 흔들어대니 "민영화가 아니고 민영화도 안 한다"는 답변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왜 쪼개느냐?"고 다그치고 철도산업의 특성을 들어 KTX 쪼개기의 문제점과 그 논리의 허구성을 지적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민주당 사람들이 공부를 하지 않아 "민영화하려는 것 아니냐?"만 되뇌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고 답답하다.


현재 쪼개기는 기정사실화 되어 있고 가상의 민영화만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지금이라도 야당이 쪼개기의 부당성을 제기하여 국민과 권력자의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늦었지만 아주 늦지는 않았다. 쪼개기를 막아야 민영화도 막아진다. 유일한 흑자노선 KTX를 떼어가면 코레일은 반신불수가 되어, 코레일 종사원들은 희망을 잃고 정부 정책을 저주하며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KTX 떼어내기는 코레일을 회생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어 결국은 국민이 그 덤터기를 쓰게 된다.

규모의 경제에 미달하는 초미니 한국의 철도산업을 살리는 길은 쪼개기가 아닌 현재 분리된 시설과 운영을 통합하여 철도공사에 힘을 몰아주는 것이다. 이제 철도는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차제에 국회에서 과연 무엇이 진정한 철도산업의 살 길인지, 시설과 운영의 통합을 비롯하여 KTX 쪼개기 등 철도산업 전반에 대한 깊숙한 논의를 통해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12월 24일 경향신문에 지면기사로 게재됐습니다.
#수서발 KTX #민영화 #서승환 #코레일 #KTX 쪼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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