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브드룽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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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말년의 행적이다. 1651년 샤브드룽은 데시에게 국가경영 일체를 맡기고 은퇴를 한다. 그리고 푸나카 드죵으로 거처를 옮겨 장기간 칩거에 들어간다.
이는 마치 로마의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의 자리를 은퇴하고 그의 고향 달마티아(현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로 귀향을 하여 채소를 가꾸며 말년을 보낸 행적을 떠올리게 한다.
갑자기 푸나카 드죵에 은둔을 한 샤브드룽의 모습을 1651년 이후로 아무도 본적이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의 사망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은둔 54년 만인 1705년에 대승원장 제켄포에 의해 그의 사망이 공식적으로 발표된다. 제켄포는 샤브드룽의 죽음을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샤브드룽은 입멸 후 그의 시신에서 육신, 말씀, 영혼을 상징하는 삼색의 빛이 발하였습니다. 그분은 육신, 말씀, 영혼의 형상으로 다시 환생을 할 것입니다."그 후 샤브드룽은 부탄에서 불멸의 성인으로 추대되어 수호신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샤브드룽 사후에 등장한 '데시'들은 그들 모두가 샤브드룽의 화신인 '샤브드룽 린포체'라고 주장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서 '린포체'란 '환생'을 의미한다. 샤브드룽 린포체로 인정을 받을 만큼 영향력 있는 데시도 있었으나, 대부분 데시들은 반대파에 의하여 비난을 받거나, 심지어 폐위되기도 했다.
샤브드룽이 사망을 한 후 부탄은 20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당파 싸움 속에 영국이라는 제3세력의 개입으로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아쌈지역을 중심으로 영국과의 영토분쟁이 계속되는 동안 통사의 성주였던 지그메 남걀이 최고 권력자로 등극을 한다. 1870년 51번째 '데시'로 등극을 한 그는 17살 짜리 아들 우겐 왕축을 파로의 성주로 임명을 한다. 우겐 왕축은 후에 부탄왕국의 초대 왕이 된 인물이다.
우겐 왕축은 1904년 티베트로 진군하는 영국을 돕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우겐 왕축의 도움으로 티베트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한 영국은 그에게 '경'이라는 작위를 수여한다. 부탄의 최고 권력자가 된 우겐 왕축은 1906년 영국 웨일즈 황태자의 초청으로 당시 인도의 수도였던 콜카타로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일약 세계적인 명사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07년 12월 17일 영국의 지원 하에 대관식을 거행하고 부탄의 초대 왕으로 등극을 한다. 그에게 '드럭 걀포(Druk Gyalpo)라는 호칭이 수여되는데, 이는 '용왕'이란 뜻으로 용의 나라 부탄의 왕을 의미한다. 그 이후 부탄은 왕정시대를 맞이하며 지금의 5대 국왕까지 이어지고 있다.

▲ 타쉬쵸 드죵 뜰을 걸어가는 승려들
최오균
타쉬쵸 드죵의 뜰을 걸어 나오는데 동자승들이 자루에 뭔가를 들고 들을 건너왔다. 검은색 고를 입은 청년과 함께 무거운 자루를 들고 있는 스님의 표정이 온화하게만 보였다. 그 뒤를 따라 작은 동자승이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따라왔다. 저 속에 든 물건은 뭘까? 아마 스님들이 먹을 쌀이나 곡식일 것이다. 그들의 평온한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왠지 행복한 마음이 되어 죵 밖으로 나왔다.
절대왕권을 '데시'에게 위양을 하고 파로 드죵으로 은둔을 하여 칩거생활을 한 부탄 역사상 불세출의 영웅 샤브드룽,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후 한창 권세를 부리며 일을 할 52세의 나이에 젊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네 명의 왕비와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싱기에 전 국왕.... 두 왕은 부탄의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두 왕은 역사를 뛰어넘어 마음을 비우고 부탄을 행복한 나라로 만든 훌륭한 지도자라는 생각이 든다. 부탄은 아무리 생각해도 동화 속 같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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