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동화같은 곳, 부탄

[부탄여행⑥-팀푸]왕권을 내려놓고 은둔생활을 한 부탄의 영웅 샤브드룽

등록 2013.12.31 11:33수정 2013.12.3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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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쵸 드죵 ⓒ 최오균




우리는 타시쵸 드죵의 긴 벽을 따라 걸어갔다. 타쉬쵸 드죵(TashiChhoe  Dzong)은 '영광스런 종교의 성채'란 뜻을 가지고 있다. 드죵(Dzong)은 '성', 혹은 '요새'를 의미하는데 '드'라는 발음을 소리가 날 듯 말 듯 작게 하기 때문에 뒤의 '죵'만 들린다.


드죵은 요새의 기능과 불교 사원의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다. 부탄의 역사는 대부분 불교의 역사이다. 따라서 드죵 건설이 스님들에 의해서 이루지다 보니 요새와 사원을 겸하고 있다.

영광스런 종교의 성채, 타쉬쵸 드죵

거대한 성처럼 보이는 우람한 건물은 매우 위엄이 있어 보였다. 건물 중앙에는 노란색과 빨강색 바탕에 하얀 색의 용이 새겨진 부탄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부탄'이라는 국명은 티베트어 방언으로 '용의 나라'를 의미한다. 국기의 하얀색은 충성과 순결에 대한 예찬을, 노란색은 세속 군주를, 주황색은 불교를 상징한다. 그리고 용이 발톱으로 붙잡고 있는 보석은 '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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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국기 ⓒ 최오균


깃발 뒤로는 마치 성벽처럼 생긴 하얀색 벽에 부탄 전통문양이 새겨진 갈색 나무로 지은 부탄 고유의 독특한 건축물이 나타났다. 쉐리의 설명에 의하면 이 건물은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설계 도면도 없이 부탄 전통 방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팀푸 시내의 건축물은 타쉬쵸 드죵보다 높게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모든 건물은 크기나 용도에 관계없이 부탄 전통 양식으로 지어야만 한다. 따라서 팀푸에는 타시쵸 드죵보다 높은 건물이 없다. 팀푸에는 6층 이상 건물이 없다. 또한 아직까지도 설계도가 없이 건물을 짓고 있는 풍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못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설계도도 없이 저런 건물을 짓다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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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쵸 드죵 ⓒ 최오균


하얀 벽을 따라 서 있는 푸른색의 나무들이 무척 고결하게 어울려 보였다. 쉐리와 치미는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어깨 위로 긴 스카프를 둘렀다. 쉐리는 하얀색의 스카프를, 치미는 화려한 붉은 색의 스카프를 왼쪽 어깨에 대각선으로 둘러쳤다. 부탄에서는 공식적인 장소나 사원에 입장을 할 때에는 '카네'라고 부르는 이 스카프를 둘러야 한다.

우리는 긴 벽을 따라 걸어가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는 북쪽 문으로 들어갔다. 부탄 전통 문양과 불상을 새긴 벽이 고색찬연했다. 그 앞에 경비병들이 장난감 병정처럼 반듯하게 서 있었다. 정문을 통과하니 바닥에는 네모난 자연석 돌을 깔아놓고 있었다. 하얀색 벽과 갈색의 건축물이 매우 정갈하고 질서가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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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쵸 드죵 입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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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전통양식으로 건설된 타쉬쵸 드죵 ⓒ 최오균


장방형으로 세워진 요새 내부 중앙에는 '웃세'라는 건물이 서 있는데 이 건물을 기준으로 북쪽에는 사원 구역, 남쪽에는 정부청사로 쓰고 있다. 하얀 선을 기준으로 남쪽 청사에는 왕의 집무실과 대전, 내무부와 재무부 등의 정부 부처가 배치된 있다.

'드라상'이라고 불리는 성의 북쪽에는 스님들이 머물던 공간이 있다. 사원구역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고, 그 앞에는 현 국왕, 전 국왕, 그리고 불교 최고 지도자 제켄포 등 세 개의 왕좌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2008년도에 현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가 대관식을 치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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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쵸 드죵. 하얀줄 아래쪽은 정부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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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불을 모신 타쉬쵸 드죵 ⓒ 최오균


부탄을 최초로 통일한 영웅 샤부드룽

타시쵸 드죵은 1216년 걀와 라낭파(Gyawa Lhanangpa)라는 스님에 의해서 건설되었는데, 당초 이름은 '파란 돌로 만든 성'이란 의미를 가진 '도젠 드종(Dho Ngen Dzong)'이었다고 한다.

13세기 당시 부탄은 전통 닝마파 불교 대신, 후에 부탄의 국교가 된 드럭파(뇌룡파)가 티베트로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뇌룡파 불교를 최초로 전한 인물은 티베트의 '파죠 드럭공 싱포'로 그는 당시 반대파였던 '각규파'와 치열한 싸움을 치른 후 부탄의 불교를 뇌룡파로 통일한다. 파죠 드럭공 싱포는 이 타시쵸 드죵에 머물며 뇌룡파 중흥의 기초를 다졌다. 그 후 부탄을 최초로 통일한 샤브드룽이라는 걸출한 인물에 의해 뇌룡파 불교가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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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쵸 드죵 ⓒ 최오균


부탄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부탄을 최초로 통일한 샤브드룽 나왕 남걀(Shabdrung Ngawang Namgyal)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알아야 한다. 부탄역사에서 '샤브드롱'은 불세출의 영웅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1616년 티베트 중부에 있는 뇌룡파의 본산인 랄룽사원에서 부탄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나이 23세에 꿈에 수호신장인 마하칼라로부터 부탄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고 부탄으로 건너왔다. 부탄 전역을 설법을 하며 돌아다닌 그는 점차 부탄의 종교지도자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샤브드룽은 스스로 '만인의 경배를 받는 고귀한 보석'이라는 의미의 '샤브드롱 린포체'로 개명을 하고, 팀푸 남쪽 기슭에 자신의 거처로 '심도카 드죵(Semtoka Dzong)을 건설한다. 사원이면서 행정적 기능과 방어의 목적을 두루 갖춘 심도카 드죵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후에 부탄에 건립되는 수많은 드죵의 모델이 된다. 부탄에는 심도카 드죵을 모델로 한 사원이 2000개가 넘게 전국에 건설되어 있다.

샤브드룽의 반대파들이 티베트에 원군을 요청하고 라다크 군대와 연합을 하면서까지 심도카 드죵을 공격했으나 함락되지 않는다. 티베트와 10년간에 걸친 종교전쟁은 샤브드룽이 이끈 민병대의 승리로 끝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마침내 부탄의 최고 실력자로 등극한 샤브드룽은 한때 수미산을 포함한 네팔의 북부지역 티베트 땅까지 영토를 넓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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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쵸 드죵 ⓒ 최오균


그러나 1644년 몽골군까지 합세한 제2차 부탄-티베트 전쟁이 발발한다. 몽골 연합군을 몰고 부탄을 공격한 달라이 라마 5세는 부탄 국경을 넘어 중부 붐탕지역까지 진군하였으나, 샤브드룽은 지형지세를 이용한 게릴라 전술로 몽골-티베트 연합군을 무력화 시키고 만다.

마침내 샤브드룽은 티베트에서 부탄에 온 지 39년만인 1655년 부탄을 통일하고 부탄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다. 그는 부탄의 진시황제와 같은 불세출의 인물이다. 한편 샤브드룽은 티베트와의 지긋지긋하고 오랜 전쟁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뇌룡파를 국교로 정하고 뇌룡파 전통 승가를 확립시키는 한편 전국 각지에 요새를 세워 국방을 튼튼히 한다.

샤브드룽은 티베트의 관습과 전통에서 벗어나 부탄만의 고유문화를 확립하는 길만이 부탄이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티베트의 장발머리를 단발로 바꾸고, 의복도 부탄 전통 복장인 고(Gho)와 키라(Kira)로 바꾼다. 세금제도를 확립하고, 국민의 부역제도를 신설하여 교량, 사원, 성채 도로 등 기간시설을 건설한다.

샤브드룽은 도젠 드죵이라 불렸던 성의 이름을 현재의 '타쉬쵸 드죵'으로 바꾸고 한 개의 성을 더 증축했다. 그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여 이원집정부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샤브드룽은 '제켄포(Je Khenpo)'라 불리는 대수도원장직을 겸임하게 된다.

기존의 건물을 종교의 수장인 샤브드룽 자신이 쓰고, 새로 만든 건물은 정치적 수장인 '데시(Desi)'가 사용하게 하였다. 데시는 정치와 외교를 담당하는 수상격인 사람이다. 데시가 왕과 다른 점은 세습이 아닌 선출직으로 부탄의 정사를 관장하는 통치자 역할을 했다. 최초의 데시는 샤브드룽이 임명을 했으나 그 후에는 선출직으로 바뀌었다.

왕권을 내려놓고 은둔 생활을 한 샤브드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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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브드룽 초상화 ⓒ www.himalayanart.org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말년의 행적이다. 1651년 샤브드룽은 데시에게 국가경영 일체를 맡기고 은퇴를 한다. 그리고 푸나카 드죵으로 거처를 옮겨 장기간 칩거에 들어간다.

이는 마치 로마의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의 자리를 은퇴하고 그의 고향 달마티아(현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로 귀향을 하여 채소를 가꾸며 말년을 보낸 행적을 떠올리게 한다.

갑자기 푸나카 드죵에 은둔을 한 샤브드룽의 모습을 1651년 이후로 아무도 본적이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의 사망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은둔 54년 만인 1705년에 대승원장 제켄포에 의해 그의 사망이 공식적으로 발표된다. 제켄포는 샤브드룽의 죽음을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샤브드룽은 입멸 후 그의 시신에서 육신, 말씀, 영혼을 상징하는 삼색의 빛이 발하였습니다. 그분은 육신, 말씀, 영혼의 형상으로 다시 환생을 할 것입니다."

그 후 샤브드룽은 부탄에서 불멸의 성인으로 추대되어 수호신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샤브드룽 사후에 등장한 '데시'들은 그들 모두가 샤브드룽의 화신인 '샤브드룽 린포체'라고 주장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서 '린포체'란 '환생'을 의미한다. 샤브드룽 린포체로 인정을 받을 만큼 영향력 있는 데시도 있었으나, 대부분 데시들은 반대파에 의하여 비난을 받거나, 심지어 폐위되기도 했다.

샤브드룽이 사망을 한 후 부탄은 20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당파 싸움 속에 영국이라는 제3세력의 개입으로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아쌈지역을 중심으로 영국과의 영토분쟁이 계속되는 동안 통사의 성주였던 지그메 남걀이 최고 권력자로 등극을 한다. 1870년 51번째 '데시'로 등극을 한 그는 17살 짜리 아들 우겐 왕축을 파로의 성주로 임명을 한다. 우겐 왕축은 후에 부탄왕국의 초대 왕이 된 인물이다.

우겐 왕축은 1904년 티베트로 진군하는 영국을 돕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우겐 왕축의 도움으로 티베트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한 영국은 그에게 '경'이라는 작위를 수여한다. 부탄의 최고 권력자가 된 우겐 왕축은 1906년 영국 웨일즈 황태자의 초청으로 당시 인도의 수도였던 콜카타로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일약 세계적인 명사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07년 12월 17일 영국의 지원 하에 대관식을 거행하고 부탄의 초대 왕으로 등극을 한다. 그에게 '드럭 걀포(Druk Gyalpo)라는 호칭이 수여되는데, 이는 '용왕'이란 뜻으로 용의 나라 부탄의 왕을 의미한다. 그 이후 부탄은 왕정시대를 맞이하며 지금의 5대 국왕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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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쵸 드죵 뜰을 걸어가는 승려들 ⓒ 최오균


타쉬쵸 드죵의 뜰을 걸어 나오는데 동자승들이 자루에 뭔가를 들고 들을 건너왔다. 검은색 고를 입은 청년과 함께 무거운 자루를 들고 있는 스님의 표정이 온화하게만 보였다. 그 뒤를 따라 작은 동자승이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따라왔다. 저 속에 든 물건은 뭘까? 아마 스님들이 먹을 쌀이나 곡식일 것이다. 그들의 평온한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왠지 행복한 마음이 되어 죵 밖으로 나왔다.

절대왕권을 '데시'에게 위양을 하고 파로 드죵으로 은둔을 하여 칩거생활을 한 부탄  역사상 불세출의 영웅 샤브드룽,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후 한창 권세를 부리며 일을 할 52세의 나이에 젊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네 명의 왕비와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싱기에 전 국왕.... 두 왕은 부탄의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두 왕은 역사를 뛰어넘어 마음을 비우고 부탄을 행복한 나라로 만든 훌륭한 지도자라는 생각이 든다.  부탄은 아무리 생각해도 동화 속 같은 나라다.
#부탄여행 #샤브드룽 #팀푸 #타시쵸 드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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