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철도노동조합이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열차 승강장에서 무궁화호 한 대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유성호
'귀족 노동자'는 국토부와 보수언론들의 낡고 왜곡된 이데올로기 공세에 불과하다.
철도 노동자는 2005년에 공사화되기 전까지 24시간 맞교대로 근무를 했다. 철야 근무자들의 월 평균 근무시간은 250~270시간에 육박했으며 교번근무인 기관사들의 노동시간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하지만 임금은 낮았고 휴가도 적었고 공무원 신분이어서 각종 근무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1993년에 <한겨레> 신문은 당시 철도 기관사들의 야간수당이 과자값도 안 되는 시간당 193원에 불과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래서 철도에서는 저임금 장시간 근무와 위험한 작업환경에 의한 직무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1985년~1990년대까지의 통계를 보면 연평균 36명 정도가 각종 사고로 순직했으며 사상자도 165명에 달했다. 문책을 두려워 해서 보고가 제대로 안 된 걸 감안하면 공식통계보다 직무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더 많았을 것이다. 2001년에 철도 노동자들은 천신만고 끝에 민주노조를 건설했다. 하지만 24시간 맞교대가 3조 2교대로 전환되고 그나마 본격적으로 안전하고 인간다운 직장이 된 건 2005년 이후부터다.
1963년에 철도청이 발족하고 근 반세기 동안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물론 목숨까지 위험한 작업환경에 시달리다가 불과 8년 정도 공기업 노동자로 지내온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평균 근속이 19년이 되어야 하고 야간근무와 휴일수당들을 다 합쳐야 6300만 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27개 공기업들 중에서 임금순위가 25위이다. 근 반세기를 지나 이제야 인간답게 살게 되었는데 파업을 한다고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공기업 임금순위 25위인 철도 노동자들에게 귀족이라고 딱지를 붙이고 있다.
2012년 도시근로자 월평균 가구당 수입이 3인 기준으로 월 449만 원이고 연봉으로는 5388만 원이다. 그런데 19년 동안 밤낮으로 일해서 6300만 원 정도 받는 것이 귀족노조라면 우리나라에 귀족은 매우 흔할 것이다. 귀족 노동자는 국토부와 보수언론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써먹는 낡은 이데올로기 공세에 불과하다. 지금 쟁점은 수서발 KTX 분리 문제다. 그러므로 국토부와 보수언론들은 더 이상 여론을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철도 노동생산성은 세계 5위국토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이 철도 영업적자의 중요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인건비는 영업비용 대비 비중만을 보면 44.5%(2011년 기준)로 다소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업비용 대비 인건비 비교 방식은 고정적인 유지보수비용이 높은 철도산업과 같은 거대 장치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철도는 평균적으로 영업비용 대비 인건비 비중이 40%~50% 수준이었다. 그러므로 철도산업의 인건비 수준은 영업비용 대비 인건비 비중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우선 철도산업에서 1인당 노동생산성의 지표로는 1인당 차량키로(㎞)를 들 수 있다.
차량키로는 총 수송량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지표인데 여객을 수송하는 객차와 화물을 수송하는 화차의 이동거리를 모두 합한 것을 말한다. 이 지표를 이용하는 이유는 기관차와 열차의 운행거리 증감이 현업 노동자들의 유지보수업무와 운전 횟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펴보면 한국철도의 1인당 차량키로는 2000년 4만1970㎞, 2009년 5만2250㎞, 2012년 6만500㎞까지 늘어났다. 1인당 차량키로가 계속 증가했는데 수송량은 계속 늘어난 반면 2005년 코레일 출범 후 지금까지 인력은 계속 감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UIC(국제철도연맹)의 통계에 따르더라도 한국철도의 노동생산성은 여객은 5위, 화물은 12위로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다. 물론 이러한 통계에 대해서 한국은 수송밀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수송밀도가 비슷한 일본과 비교해야 하며 그럴 경우, 노동생산성이 60% 중반 수준이므로 노동생산성이 낮다고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만약 그렇게까지 비교한다면 수송밀도뿐만 아니라 기술수준까지도 감안해야 된다.
한국은 선진국에 대비해서 기술 수준이 70% 중후반(100% 기준)밖에 안 되므로 철도 선진국들에 비해서 노동집약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1964년에 '신칸센'이라고 불리는 고속철도를 개통한 일본과의 기술격차는 대단히 클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JR 동일본과 비교해 보면 인력 대체의 척도가 되는 콘크리트 도상률, 전철화율, 중앙제어 관제시스템 운용률 등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모두 월등히 앞서고 있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서 노동집약적이므로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력문제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철도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안전이다. 최근에는 KTX-2단계(동대구~부산) 개통, 경의선, 경춘선, 전라선 복선전철화 등의 신규 사업이 늘어나고 퇴직자도 꾸준히 발생하면서 인력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코레일이 최소 필요인력으로 계획한 2009년 653명, 2010년 851명(총 1504명)이 충원되지 못했고 내부에서 소화했다. 2005년~2012년까지 2015명이 줄어들었는데 내부효율화 인원까지 합하면 코레일 출범 이후에 실제로 3519명이 감축되었다. 2005년(당시 현원 3만 982명) 코레일 출범 당시보다 무려 인력이 11.4%나 감축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 인원부족으로 인한 안전문제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 제출된 국회입법조사처나 철도안전위원회의 보고서에서도 코레일의 무리한 인력감축이 철도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국토부는 코레일의 인건비 탓만 할 게 아니라 시급히 철도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인력을 충분히 충원해야 한다.
코레일 비효율을 고치는 게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