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경찰의 명예를 잃지 마십시오

민주노총 총파업을 앞두고, 평생 경찰이었던 선배가 후배들에게

등록 2013.12.28 10:39수정 2013.12.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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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춥습니다. 갑오년 새해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날에도 거리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퀭한 눈으로 우리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고 있는 후배 경찰 여러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해집니다. 경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당신들이 있기에 그나마 우리의 오늘이 평안합니다. 너무 고생이 많습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폭력 경찰', '권력의 시녀'... 여러분께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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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나오는 민주노총 조합원 22일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 1층 로비에서 진입한 경찰이 민주노총 한 노조원을 연행하고 있다. ⓒ 이희훈


저는 경찰에 투신하여 평생을 최일선에서 근무한 선배 경찰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보다 후배 여러분의 노고와 고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22일 민주노총 수색으로 온 사회가 후배 경찰 여러분을 손가락질하고 욕할 때 마치 내 일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습니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속에서 후배 경찰 여러분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무게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을 불의의 거리로 내몬 것은 결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역사의 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위정자들의 죄입니다.

저는 감히 여러분께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저 역시 한 때 경찰이었으며 경찰의 직무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역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이 땅의 평범한 가장입니다. 삶의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항하지는 못하더라도 경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결국 여러분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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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깨고 진입하는 경찰병력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1층 현관 유리문을 열기위해 장비를 든 소방대원들이 투입되어 경찰이 노동자들이 막고 있던 유리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이희훈


후배 경찰 여러분의 자존심과 명예를 짓밟는 폭력 경찰, 권력의 시녀라는 날선 비판을 들을 때마다 진심으로 여러분께 미안합니다. 당당하고 떳떳한 경찰의 독립을 만들지 못한 것은 바로 선배들의 과오입니다. 정의를 지키는 경찰독립의 여망과 전통을 물려주지 못해 부끄럽기만 합니다. 여러분이 마치 폭력 경찰, 권력의 시녀처럼 비춰지는 것은 불의에 저항하지 못한 선배 경찰과 지금도 경찰로서의 올바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일부 수뇌부의 무능 때문입니다. 선배로서 후배 경찰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찰의 당당함은 결국 스스로 지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올바른 생각이 둘로 셋으로 뭉쳐지면 마침내 새로운 역사가 됩니다. 부디 선배들이 못다한 정의를 수호하고 불의에 맞서는 독립경찰의 기틀을 여러분이 만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의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십시오.


후배 여러분, 시위대는 결코 무찔러야 할 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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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둘러싼 경찰병력 경찰병력이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22일 오후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건물을 에워싸 포위하고 있다. ⓒ 이희훈


이제 곧 12월 28일 민주노총 총파업의 날이 다가옵니다. 시위대와 부딪힐 후배 경찰 여러분을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옥죄여 오는 것만 같습니다. 후배 여러분, 당신들께 간곡한 몇 가지 부탁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디 경찰의 명예를 잃지 말아 주십시오. 시위대가 법을 지켜야 하는 것과 똑같이 여러분이 먼저 법을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노력이 선진 집회시위 문화를 만드는 시작입니다.

"경찰은 행정편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합법,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정착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선진 집회시위 문화조성을 위한 경찰의 다짐입니다. 시위대는 결코 무찔러야 할 적이 아닙니다. 다 같이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시위대가 외치는 주장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과 집회자유의 권리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합법적인 시위를 보장하고 지켜 줄 의무가 있습니다. 시위대도 경찰도 모두 똑같은 민주주의의 자유시민이라는 사실을 유념해 주십시오.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제일 먼저 생각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인권을 존중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경찰 서비스 헌장입니다. 과도한 집회 열기로 서로 충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흥분한 시위대가 난폭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먼저 흥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경찰은 인권을 존중하고 수호하는 최후의 보안관입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시위대를 진압하게 되더라도 경찰의 본분을 지켜주십시오.

절대 난폭해지지 마십시오. 시위대를 향해 감정 섞인 폭력을 행사하지 말아주십시오. 경찰은 냉정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너무 감내하기 힘든 부탁만 드리는군요. 하지만 여러분은 냉정해져야할 의무와 숙명을 가진 경찰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최일선의 파수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28일 총파업 시위가 폭력이 없는 합법적 평화적 시위로 끝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단 한 명도 다치는 후배 경찰 여러분이 없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평생 경찰이었던 박종수
#1228 #총파업 #박종수 #중랑사랑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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