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혹시... 없니?" 그 순간 비참해졌다

[연말스트레스④-솔로편] 새내기 솔로 여대생의 크리스마스 생존기

등록 2013.12.31 16:14수정 2013.12.3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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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솔로 남녀들의 대규모 미팅인 '솔로대첩'에서 커플이 된 남성 참가자가 여성 참가자를 포옹하고 있다. ⓒ 유성호


201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 2시 부산 국민건강보험공단 2층.


"선정씨는 내일 쉬는데 뭐 할 거야? 어디 놀러 안 나가나?"
"네? 아뇨 뭐 별 계획 없는데요."

별 계획... 있고 싶다. 그렇다. 나는 무적의 '솔로'다. 난 올해 꽃다운 스무 살, 파릇파릇한 대학교 새내기다. 그리고 '솔로'다. 이곳에서 교외 근로장학생으로 일한 지 이틀째. 이틀 만에 '빨간날'을 맞게 돼 뜻하지 않은 휴가를 얻었다. 크리스마스 그리고 연말. 수많은 커플들에게는 참 반가운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그저 방에 콕 박혀보내는, '방콕 가는 날'일 뿐이다.

고등학생 때는 선생님이, 대학 가면 남자친구 생긴다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대학만 간다고 바로 남자친구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물론 난 모태솔로는 아니다. 올해 무려 두 번이나 고백받고 사귄 경험이 있는 커플 '유'경험자다.

뭐, 그 아름다운 커플의 추억이 한 번은 하루 만에, 그리고 또 한 번은 2주 만에 깨졌다는 게 참 아쉽긴 하지만. 누군가는 '그건 사귄 것도 아니네' 하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4일 만에 이루어졌다. 나는 분명 내 나름대로 연애를 한 거라고 생각한다.

내 첫 번째 남자친구는 27살이었다. 3월에 시작한 대외활동에서 만난 사람. 무려 3개월 동안 나한테 개인적인 문자나 전화 한 번 한 적이 없어서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6월에 "3개월 동안 지켜봐왔다"며 고백했다. 당시로는 '모태솔로'였던 나에게 드디어 고백이라니! 나는 당연히 "OK"를 외쳤다.


그렇게 시작한 첫 연애. 20살인 나와 7살이나 차이가 나, 친언니는 물론이고 친구들도 그건 좀 아니지 않느냐고 말렸다. 하지만 난 요즘은 나이 차 나는 게 유행이라며 둘러댔고, 그렇게 우린 알콩달콩 잘 사귀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사귀기로 하자마자 그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애기야", "공주님"이라는 손발 오그라드는 호칭을 썼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에 스마트폰 채팅에 문자까지 보내는 세심(?)함을 보였다. 이런 그의 행동은 정말 '부담 백배'라 바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단호하게 철벽을 쳐버린 '철벽녀'가 돼버렸다.

두 번째 인연도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11월에 지인으로부터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여름방학 때도 거기서 한 번 일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용돈 벌이를 하러간 그곳에서 두 번째 남자친구를 만난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금세 나한테 호감을 보였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린 썸을 탔고(썸남-썸녀가 됐다는 말. 썸남-썸녀는 '썸씽(연애 이전의 호감)'이 오가는 남자 또는 여자를 일컫는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날 고백을 받았다.

'아 외롭다 외롭다 했더니 하늘에서 남자친구를 던져주시는 건가' 싶었다. 첫 번째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6개월 만에 시작한 두 번째 연애. 처음에는 정말 좋았다. 주변에서 '남자친구 진짜 훈훈하다', '잘생겼다'는 소리도 꽤 들어서 더 사랑이 싹텄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전화도 하고 문자도 했다. 하지만 매일 오후 6시에 끝나는 직장인 남자친구는 사는 곳도 만날 시간도 정말 안 맞았다. 결정적으로 내가 한번 화가 나서 주말 데이트에 안 나가는 바람에 사이가 멀어졌다. 그리고 난 또 다시 철벽을 치고 이별을 했다.

20년째 '솔로 크리스마스'... 특선영화 기다렸다가 낮잠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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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솔로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 sxc


올 크리스마스는 따뜻하게 보낼 줄 알았더니 결국 20년째 '솔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교외 근로장학생 일이라도 하면 돈이라도 벌고 바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내가 다니는 곳은 빨간날은 철저하게 쉬는 바람에 크리스마스 날 갑자기 24시간이 생겨버렸다. 가수 선미는 "24시간이 모자라"고 나는 "24시간이 과분해"였다.

카운트다운 24시간 시작.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 드디어 밝았다. 평상시에는 7시에 피곤하게 일어나서 콘택트렌즈부터 끼고 시작하지만, 그날 난 만날 사람이 없어 10시쯤 느지막하게 일어나 그냥 안경을 끼고 짧은 머리를 대강 묶고 스마트폰을 켜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품절'되지 않은 친구들을 찾아 스마트폰 채팅 메시지나 보내려고 친구목록을 쭉 내려봤다. 그런데 얄밉게도 부산에서 크리스마스 축제가 열리는 남포동을 배경으로 찍은 커플들의 프로필 사진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상태 메시지는 '♥'. 분명 얼마 전까지 프로필 사진이 동성친구와 찍은 사진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 남자친구가 생겼는지 정말 얄미웠다.

오전 11시. 다들 한창 남자친구, 여자친구와 놀러나갈 준비를 할 시각. 빈 옆구리라 외롭지만 특선영화나 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동창들의 단체 채팅방 알람이 울렸다. 나 빼고 둘 다 남자친구가 있었고 대학도 떨어져서 거의 소통이 없다시피 한 방이었는데 의외로 친구의 메시지가 왔다.

"얘들아 크리스마스 잘 보내. ♥♥♥"

항상 남자친구가 있던 친구라 '새해도 아닌 크리스마스에 웬 메시지?' 하는 생각이 들어 "… 없니?"라고 메시지를 보내보니 "없지 ㅎ"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왠지 더 비참해졌다. 같은 솔로가 한 명 더 늘어난 건 좋은 일이지만 "나 역시 없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 슬펐다.

특선영화를 기다리다 지쳐 평소 자지 않던 낮잠까지 자고 일어났는데 겨우 오후 4시였다. 다들 미리 가족이나 친구랑 약속을 잡았는지, 솔로들이 가득한 스마트폰 메신저 단체 채팅방도 더없이 조용했다. 결국 나는 쉬라고 만든 빨간날. EBS 토익강의 방송을 켜는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방학을 맞아 자기계발에 힘써야 하는 건 맞지만 쉬는 날까지 계발을 하고 싶진 않았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알차게 두 시간을 공부했다.

오후 6시. SNS에 들어가 주변 친구들은 뭘 하고 있나 넘겨봤다. 작년까지만 해도 조용했던 것 같은데, 유명한 페이지부터 주변 친구들의 페이지까지 죄다 남자 1명과 여자 1명으로 이루어진 사진들만이 가득했다. 평상시에는 웃긴 동영상을 게시하는 페이지마저 커플 이벤트라며 사연이 당첨된 커플들의 사진을 게시했다. 마음 같아서는 '페이지 의도와 다른 게시물이 아니냐'고 메시지를 보내 따지고 싶었다. 

오후 10시. 드디어 힘들었던 크리스마스 하루가 끝나간다. 솔로인 친구들과 "알차게 잘 보냈다"며 서로를 위로해주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반드시 바쁜 하루를 맞이하겠다고 생각하며. 내년에는 나도 커플이 될 수 있겠지? 부질없는 소망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하선정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통신원 1기입니다.
#솔로크리스마스 #연말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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