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이 '창녀'를 사는 이유... 어떻게 봐야 하나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75] <후란넬 저고리>

등록 2013.12.27 19:08수정 2013.12.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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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자고 나서 들어보면
후란넬 저고리도 훨씬 무거워졌다
거지의 누더기가 될락 말락 한
저놈은 어제 비를 맞았다
저놈은 나의 노동의 상징
호주머니 속의 소눈깔만한 호주머니에 들은
물뿌리와 담배 부스러기의 오랜 친근
윗호주머니나 혹은 속호주머니에 들은
치부책 노릇을 하는 종이쪽
그러나 돈은 없다
― 돈이 없다는 것도 오랜 친근이다
― 그리고 그 무게는 돈이 없는 무게이기도 하다
또 무엇이 있나 나의 호주머니에는?
연필쪽!
옛날 추억이 들은 그러나 일년 내내 한번도 펴본 일이 없는
죽은 기억의 휴지
아무것도 집어넣어본 일이 없는 왼쪽 안호주머니
― 여기에는 혹시 휴식의 갈망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 휴식의 갈망도 나의 오랜 친근한 친구이다······
(1963. 4. 29)

예술가의 가난은 자발적이라는 말이 있다. 물질적인 여유와 풍족이 예술가의 창조적 상상력을 좀먹는 데서 생겨난 말일 터. 수영은 시인으로서의 자존심이 강했다. 시에 관한 한 그는 그 어떤 타협와 회유도 하지 않았다. 시에서 지레 불온함을 감지하고 거기에 보호색을 입혀 내놓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발표하지 않고 서랍속에 썩혀두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런 수영이었기에 수영은 특유의 '거지론'을 펼쳤다. "거지가 돼야 한다. 거지가 안 되고는 청소부의 심정도 행인들의 표정도 밑바닥까지 꿰뚫어볼 수는 없다"고 했다. 아내 현경에게도 툭하면 '거지'가 되겠다고 말하곤 집을 나가기 일쑤였다.

수영은 '거지'처럼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타인들의 속내도 알아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지'가 되어야 예술가로서의 순결함과 순수함을 지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거지'가 되기 위한 수영의 가출(?)은 시인으로서의 진정한 자유와 비애, 고독을 위한 것이었다.

수영은 자신의 시가 둥글둥글해지는 것에 대해 스스로 강한 모욕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모욕적인 일이 있었다. 자신이 쓰는 '둥근' 시 중에 세상에 발표하기 힘든 것이 튀어나왔을 경우, 그것이 '사전 검열'식으로 수정을 당할 때였다. 오죽했으면 그것을 '강간을 당하고 순결을 잃'는 일에 비유하기까지 했을까.

그럴 때 수영은 자신만의 '지일(至日)'을 보냈다. 그렇게 모욕이 '극에 달하는' 지일이 되면, 겨울 동지에 죽을 쑤어 먹듯이('지일'은 원래 동짓날이나 하짓날을 가리킨다.) 술을 잔뜩 마시고 창녀를 샀다.

창녀와 자는 날은 그 이튿날 새벽에 사람 없는 고요한 거리를 걸어나오는 맛이 희한하고, 계집보다도 새벽의 산책이 몇백 배나 더 좋다. 해방 후에 한번도 외국이라곤 가본 일이 없는 20여년의 답답한 세월은 훌륭한 일종의 감금생활이다. ··· 그래서 나는 한적한 새벽 거리에서 잠시나마 이방인의 자유의 감각을 맛본다. (<반시론(反詩論)>, <김수영 전집 2 산문>, 406쪽)


'창녀'를 사는 수영의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다. 우선 그 자체로 결코 도덕적이지 않다. 오히려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도 수영은 이를 당당히 밝힌다. 그 자신도 부끄러움을 모르지 않을 행동을 수영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한다. 구태의연한 인습과 가식으로 위장한 도덕률로부터 벗어나려는 시인의 파격으로 이해해야 할까.

자본주의의 사회에서는 거리에서 여자를 빼놓으면 아무것도 볼 게 없다. 머리가 훨씬 단순해지고 성스러워지기까지도 한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것도, 해장을 하고 싶은 것도 연기하고 발 내키는 대로 한적한 골목을 찾아서 헤맨다. 이럴 때 등굣길에 나온 여학생 아이들을 만나면 부끄러울 것 같지만, 천만에! 오히려 이런 때가 그들을 가장 있는 그대로 순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다. 격의 없이 애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 때묻지 않은 순간. 가식 없는 순간. (위의 글, 위의 책, 407쪽)


궤변처럼 들린다. 하지만 수영은 '격의'와 '가식'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 어떤 숨김도 변명도 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한다. 그는 아마도 부끄러워하며 몰래 창녀를 사는 이들을 가장 경멸하지 않았을까. 수영은 그 무엇으로도 꾸미지 않은 벌거벗은 '나'를 바랐다. 세상의 모든 굴레와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그런 수영의 본심을 놓치면 궤변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후란넬 저고리>도 그런 시다. '후란넬'은 'falnnel'을 일본어식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얇은 모직물이다. 그러므로 '후란넬 저고리'는 '얇은 모직으로 만든 저고리'다. 수영의 시작 노트에 따르면, 이 후란넬 저고리는 "적어도 6년 이상을 입어서 팔뒤꿈치가 허발창이 났는데도 색만은 여전히 푸"르고 "여전히 가볍고 여전히 보드"러운 '양복지'다.

그런 '양복지'가 "노동의 상징"(5행)이다. "거지의 누더기가 될락 말락" 했다는 묘사는 그런 노동의 힘겨움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화자에게는 "돈은 없다"(10행). 한때만 없는 게 아니다. '돈이 없다는 것도 오랜 친근'(11행)이라고 했으니 항상 없다. 늘 가난한 것이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가난을 친근으로 보는 시선은 초월적이기까지 하다. 이 시가 '노동의 찬미'라는 건강한 주제 의식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그런데도 수영은 시작 노트에서 이 시를 냉소적으로 자평한다. 이 시가 '노동의 찬미'가 아니라 '자살의 찬미'로 화해 버렸다며 조소한다. 그러면서 그는 "내 시가 그래도 '인찌끼'인 줄 모르는 '인찌끼' 독자들에게 참고로" 말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나의 후란넬 저고리는―정확하게 말해서 후란넬이라는 양복지는―색이 변하지 않는다. ··· 당신들의 구미에 맞게 속시원히 말하자면 후란넬 저고리는 결코 노동복다운 노동복이 못 된다. 부끄러운 노동복이다. 그러면 그런 고급 양복을―아무리 누더기가 다 된 것일망정―노동복으로 걸치고 무슨 변변한 노동을 하겠느냐고 당신들이 나를 나무랄 것이 뻔하다. 그러나 당신들의 그러한 모든 힐난 이상으로 소중한 것이 나의 고독―이 고독이다. (위의 글, 위의 책, 437쪽)

'인찌끼'는 '부정, 사기, 엉터리'라는 뜻의 일본어를 음차 표기한 말이다. '엉터리' 시가 '엉터리'인 줄 모르는 '엉터리' 독자들을 향한 야유이자 모독이다. 자신만의 '지일'을 가지면서 '상식과 도덕의 극단'을 벗어나는 시인의 자존심이나 파격적인 순수함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나는 "6년 이상을 입어서 팔뒤꿈치가 허발창이 났는데도 색만은 여전히 푸"른 '후란넬 저고리'를 수영 자신의 상징으로 본다. 가난이나 세상의 회유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려고 했던 도도한 시인 말이다. 수영이 "당신들의 그러한 모든 힐난 이상으로 소중한 것이 나의 고독"이라며 '고독'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그는 세상의 질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고자 했다. 위선과 가식이 아니라 순수를 찾았다. 세상의 논리에 따르면, 그는 비난받아 마땅한 '파락호(擺落戶)'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스스로 '감금생활'을 했을지언정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가 살고자 했던 진정한 자유의 삶, '거지'의 삶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후란넬 저고리> #김수영 #<반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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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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