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총파업 현장을 집에서 지켜보며

등록 2013.12.29 10:41수정 2013.12.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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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광화문에는 자본주의의 유령들이 단결하고 있다.'

지금 광화문에는 노동자들이 총파업 결의대회가 끝나고 정부에 항의하는 집회를 진행 중이다. 이 엄동설한의 날씨에. 그리고 경찰은 엄동설한의 날씨에 물대포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광화문 기온은 영하 5도. 경찰을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이들도 '피해자'니까. 제발 별 탈 없이 잘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대선 전, 나는 박근혜는 절대 대통령이 되어선 안된다고 얘기했었고,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어버렸다.

대선 후, 나는 박근혜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져 가고 있다.

어차피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부터 부정적으로 치러져 뽑힌 대통령이다. 댓글 몇 개, 리트윗 몇 개로 선거결과가 움직이고, 안 움직이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쨌든 '범죄'니까. 시작 단추를 잘못 꿰었으니 그 뒤로는 안 봐도 비디오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어쩌면 모두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지난 대선, 나는 문재인 후보를 뽑았다. 하지만 난 결코 문재인 후보 지지자는 아니었다. 민주당 지지자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를 뽑았다. 정책이 마음에 들어서? 어차피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이나 내놓은 정책은 거기서 거기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애초에 정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사람이 좋아서? 솔직히 사람은 좋아 보이더라. 하지만 그렇다고 투표하는 몰상식한 인간은 아니다. 내가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한 이유는, 나 개인에게 지난 대선은 최악과 차악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어쩌면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한 다수 사람들에게도)

최악과 차악의 대결, 나에게 문재인 후보는 최선이 아니었다.(안철수도 아님) 최악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차악이었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했으나 그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고, 지금까지 쭉 진행 중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박근혜란 인물. 최악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살아온 삶, 그녀가 보여줬던 말과 행동, 그녀의 주변 사람들... 잘 될 리가 없다. 혹여나 잘 할 수 있을까 기대했던 나를 원망하고 반성한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지금 문제가 되는 철도 문제 뿐 만이 아니라, 인사 문제, 성추행 윤창중,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대화록 무단 유출, 통진당 해산 소송, 역사교과서 왜곡 등등, 1년 새 큼직한 사건들만 뻥뻥 터트려 주셨다. '창조' 좋아하는 분 아니랄까봐 정말 내 상식을 벗어나서 창조적으로 사건들을 터트려 주시니까 나도 정신 못 차릴 뻔 했다.

요즘은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대통령을 비판하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나오고, 심지어 극우라는 지만원씨(자칭 애국보수)마저 그의 말 그대로 '박근혜'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비판 먼저 자신을 성찰할 줄 알아야 한다. 박근혜가 이런 사람인줄 모르고 대통령으로 만들었나? 아는 사람은 다 알았는데, 왜 이제 와서 '팽' 당했다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들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비판도 좋지만 자신과 무관한 척 하지 말고, 먼저 자신들을 성찰했으면 한다.


앞서 얘기 했듯, 지금 일련의 상황들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에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함께 독재의 시대,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어둡게 짙어져 오고 있다. 첫 단추를 제자리에 다시 맞춰 끼우려면, 지난 1년 동안 억지로 끼워 맞춰 온 단추들을 다시 푸는 수고(희생)를 감내해야 한다. 내가 대선 직후 SNS에 쓴 글 중, '아직 흘려야 할 피가 더 있나보다' 라고 썼더라. 이런 상황이 제발 오질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이러한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과연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용기가 있는가? 요즘 자꾸 자문하게 된다. 이런 물음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 나는 소인배임이 확실하다.

얼마 남지 않은 2013년, 나의 물음에 진정성 있는 답변을 할 수 있도록 다시 마음을 다 잡고, 한 해를 마무리 해야겠다.
#광화문 #총파업 #박근혜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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