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일들

토끼는 불쌍히 여기면서 굶는 아이들은 외면하다니...

등록 2013.12.30 13:52수정 2013.12.3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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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자 바깥마당에 있는 벤치는 할 일이 없어졌다. 찬바람이 횅하니 불어대는데 밖에서 놀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서 보기 좋은 그림으로만 마당 한 쪽에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벤치가 최근에 일을 하나 맡게 되었으니, 토끼들의 쉼터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봄에 읍내 장에 갔다가 어린 토끼 한 쌍을 사와서 닭장에 넣어두었다. 토끼는 닭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는 듯 했지만 얼마 안 가 닭장을 둘러친 철망 밑으로 땅굴을 파고 밖으로 탈출을 했다. 그때부터 우리 집 토끼들은 집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자급자족하고 있다. 토끼들이 닭장 안에 있을 때는 매일 풀을 뜯어다 줘야 해서 번거로웠는데 밖에서 사니 돌볼 필요가 없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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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자족하며 사는 우리 집 토끼들, 그러나 겨울에는 먹을 걸 챙겨줘야겠지요. ⓒ 이승숙


자급자족하는 토끼, 그러나...

처음에는 토끼들이 곁을 주지 않았다. 마당에 일렁거리기만 해도 줄행랑을 쳤다. 그런데 한 집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그들도 이제는 무덤덤해졌는지 근처에 가도 도망을 가지 않고 제 할 일을 한다. 낯선 사람이 오면 부리나케 도망을 가버리지만 늘상 보는 나는 경계 대상에서 제외가 되었나 보다.

언젠가부터 토끼는 벤치 아래에서 놀았다. 그곳은 토끼에겐 쉼터인가 보았다. 무릎을 땅에 대고 자세를 낮추어서 토끼의 눈높이로 사방을 바라보니 제법 안전해 보인다. 누가 나타나면 잽싸게 달아날 수도 있고 또 몸도 가려주니 토끼는 그 곳이 편안했는지 마당에만 나오면 벤치 아래에 머문다. 

오늘도 산에 가려고 밖에 나오니 아니나 다를까 토끼들이 그곳에 있다. 바닥에 흩뿌려둔 배춧잎을 갉아먹으면서 귀를 쫑긋댄다. 먹을 게 없는 겨울이라 그것도 감지덕지인지 야물게도 오물대며 먹는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사방에 풀이 지천인지라 토끼들이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서리가 내리고 풀들이 다 말라버리자 걱정이 되었다. 먹을 게 있기나 한 걸까, 혹시 굶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겉절이용 배추를 사와서 소나무 아래 놔뒀더니 며칠이 안 가 다 먹어치우는 게 아닌가. 그 이후로 반찬거리를 살 때면 토끼가 먹을 만한 야채들도 잊지 않고 꼭 챙긴다. 봄부터 가을까지 제 힘으로 살았으니 겨울을 날 동안은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며칠에 한 번씩 천 원 어치 정도 사와서 야외 벤치 아래 놓아둔다. 마당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토끼를 보는 즐거움이 큰데 그 정도 수고는 마땅히 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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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고 있는 이웃나라의 친구들을 위해 모금활동을 하는 멋진 소년들. ⓒ 이승숙


천 원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일들

벤치 아래에 있는 토끼를 보니 예뻤다. 나를 믿고 곁을 주는 토끼가 귀여워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집 근처에 마니산이 있어 가끔 찾는데, 연말도 다가오고 해서 일부러 간 길이었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마니산에 한 번 올라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나 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평일엔 거의 비어있다시피 하던 주차장에도 차들이 가득 했고 든든하게 옷을 차려입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니 장사도 잘 될 것이다. 동네 할머니 몇 분이 주차장 들머리에 전을 펼치고 잡곡이며 말린 시래기 등속을 팔고 있다. 무우청 말린 것을 보니 토끼가 생각났다. 데쳐서 된장찌개에 넣거나 무쳐 먹어도 맛있지만 그보다는 토끼 먹이로 더 좋을 것 같아 두어 다발을 샀다. 사람 먹을 것을 토끼에게 준다고 하면 할머니가 어이없어 할 것 같아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토끼도 먹어야 살 수 있으니 어찌 하겠는가.

매표소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손 팻말을 든 초등학생 몇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국제구호단체인 'JTS'입니다. 굶고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십시오"라며 외치며 인사를 꾸벅 한다. 추운 날씨도 아랑곳없이 소년들은 밝은 얼굴로 거리 모금을 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이 대견한 지 다들 그냥 지나치지 않고 모금함에 돈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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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리는 지구촌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세요. ⓒ 이승숙


마니산 인근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연말을 맞아 봉사활동을 하러 나왔다. 학교 근처의 지역아동센타에서 하는 거리 모금활동에 같이 동참한 아이들이었다. 주말이면 집에서 빈둥거리며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을 텐데 이 추운 날에 가난한 이웃 나라의 친구들을 생각하다니, 모금을 하는 학생들의 마음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예닐곱 살이나 먹었을까 한 자그마한 아이가 모금함에 돈을 넣는다. 아이는 스스로가 대견한 지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아이에게 돈이 아깝지 않냐 하고 물어보니 "엄마가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했어요. 과자 사먹는 것보다 더 좋아요"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이 아이는 마음이 따뜻한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굶주리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자

천 원 짜리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 돈이면 제3세계 어린이에게는 밥이 되고 약이 되며 또 학교가 된다. 또 오천 원이면 일 년 치 문구류를 지원해 줄 수도 있다고 모금활동을 하는 아이가 내게 설명을 한다. 어른인 나도 잘 모르는 것을 어린 학생들이 다 알다니,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모금을 하는 이들의 어깨띠에는 "굶주리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배가 고픈 아이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아픈 아이는 치료해 주며 제 때 배우지 못하는 아이에겐 배움의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엄마가 하는 일이다. 국제구호단체인 'JTS'가 굶주리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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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서 생명을 살립니다. ⓒ 이승숙


토끼에게 줄 시래기를 한 다발에 오천 원씩 주고 샀다. 그 돈이면 가난한 나라의 불쌍한 아이들에게 일 년치 문구류를 지원해줄 수도 있고 또 예방 백신을 공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겐 먼 나라의 그 아이들보다 눈앞의 토끼를 먹여 살리는 게 더 급선무다.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모금함에 찔끔 지전 한 장 넣어주는 것으로 체면치례만 했다.

남을 돕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낼 게 아니라 작은 돈이라도 꾸준히 도와주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 번 도와주고는 마치 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여기며 산을 올랐다. 모금을 하는 아이들의 어깨띠에 적혀 있는 "굶주리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주세요"라는 문구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여기며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토끼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에게도 나눠주면 좋을 텐데, 나는 아직 그 경지까지는 가지 못했나 보다.
덧붙이는 글 JTS(Join Together Society) 는 국제 기아· 질병· 문맹 퇴치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NGO입니다.
가난과 신분적 차별 때문에 배우지 못한 채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지구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함께 나눔으로써 인류애를 실천하고자 하며, 인도 등 제3세계에서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및 구호사업을, 북한의 굶주리는 어린이들에게는 영양식을 지원하며, 서로 돕는 인류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하는 국제구호단체입니다.
#JTS #국제구호단체JTS #정토회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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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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