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정동진 여행, 그것은 재앙이었다

[한컷도시여행1] 30만이 몰린 바다, 끔찍한 기억

등록 2014.01.01 20:30수정 2014.01.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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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특징 하나가 때때로 그 사람을 기억나게 한다. 도시나 마을도 마찬가지. 어처구니없는 기억 한 조각이나 사소한 풍경 하나가 그 때를 불러낸다. 때론 부분이 전체보다 힘이 세다. 그런 조각들로 도시를 여행하려 한다. - 기자 말

 이처럼 빛나는 해를 보기 위해 새해 첫날 정동진에 간 건 아니었다. 일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 때 정동진엔 가질 않았을 것이다. 사진은 영화 '태양의 제국' 포스터.
이처럼 빛나는 해를 보기 위해 새해 첫날 정동진에 간 건 아니었다. 일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 때 정동진엔 가질 않았을 것이다. 사진은 영화 '태양의 제국' 포스터.영화태양의제국

기억이란 바코드와 같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어느 날이 되거나 특정한 장소에 가면 갑자기 나타난다. 


내겐 다들 해돋이로 가슴이 부푼 새해가 그렇다. 그날 해돋이 장소로 가장 유명한 정동진을 떠올리면 묵직한 기억이 솟아난다.

때는 2006년이었다. 12월 30일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선배집에서 송년회를 거나하게 했다. 20명쯤 모인 큰 송년회였다. 술을 도대체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그날 모임을 준비한 선배는 동네에서 막걸리를 두 통이나 받아와서 토하도록 마시게 만들었다. 그 많던 막걸리를 모두 다 마시고 새벽엔 와인과 맥주까지 나왔지만, 이미 모두들 미각과 판단력을 잃어 버린 상태. 그 상태로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춤을 추며 아침을 맞이했다. 물론 나는 최후의 생존자그룹에 속해 있었다.

정동진행 기차, 솔로는 나 혼자네?

원래 1월 1일 아침 정동진 해맞이공원에서 취재가 하나 잡혀 있었다. 어차피 기차를 타고 오고가며 쉬면 되니 송년회를 거나하게 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12월 31일 늦은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잘못됐음이 드러났다. 머리는 아팠고, 속은 쓰렸고, 시간은 없었다. 여주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나가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야 했다. 모두들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가운데 한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일 때문에 서울로 나간다고 했다. 후다닥 머리와 얼굴에 물을 묻히고 따라나섰다.

서울까지는 잘 나왔으나 청량리역에 도착했을 때 풍경이라니. 아뿔싸. 선남선녀 청춘들이 너무나 많았다. 걸인과 같은 행색으로 혼자서 정동진행 기차에 몸을 싣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었다. 당장 탈 수 있는 표는 이미 동이 나 4시간 넘게 기다려 5시 표를 샀다. 가까스로 표를 구했으나 입석. 게다가 가는 시간은 왜 그리 긴지. 6시간을 넘게 달려야 했다. 하루 전 신났던 송년회는 오글거리는 느낌으로 내내 속을 뒤틀었다.


어찌어찌해서 정동진에 도착했으나 지금까지 여정은 시작에 불과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취재원은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정동진으로 오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아침 6시 30분. 6시간쯤 남았으니 여관에 들어가기도 애매했다. 2시간 정도를 배회하다 너무 추워 애초 계획 변경. 여관을 뒤졌으나 이미 빈자리는 없었다. 다시 원래 계획대로 바닷가를 배회했다. 밤은 또 왜 그리 긴지. 들리는 소문을 들으니 그날 정동진을 찾은 사람은 대략 30만 명이었다.

 그 날 정동진에서 본 사람은 내 눈과 귀를 어른거리게 만들었다. 그 많은 사람이라니, 날이 밝기 전후의 그 소란스러움이라니.
그 날 정동진에서 본 사람은 내 눈과 귀를 어른거리게 만들었다. 그 많은 사람이라니, 날이 밝기 전후의 그 소란스러움이라니.김대홍

바닷가를 몇 번이나 오락가락했을까. 바닷가 지형을 다 외울 지경이었다. 아까 본 모래가 "안녕"하며 인사라도 하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동이 트기 전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고, 폭죽놀이와 축하공연으로 소음지수가 끝없이 올라갔다. 옆 사람이 고함을 질러도 음소거된 TV처럼 입모양만 보일 뿐이었다.


6시 30분에 만나기로 한 취재원이랑 통화연결도 잘 안 됐고, 가까스로 통화를 했어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바닷가로 향하는 사람들과 거꾸로 육지 방향으로 밀치고 나와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여기 있는 것이라곤 콩나물 대가리처럼 보이는 사람떼밖에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만난단 말인가. 결국 취재원과 만난 시간은 해돋이가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오전 9시 30분. 3시간 만에 이뤄진 상봉이었다.

1시간에 6km... 서울 가는 길은 멀었다

이제부턴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다음날 일이 있어 오늘 안으로 서울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벌써 바닷가 반대쪽은 빠져나가려는 차들로 전쟁터가 돼 있었다. 눈앞이 아득했으나 망설일 틈이 없었다. 서둘러 10시쯤 취재원이 빌려온 다인승차를 타고 정동진을 출발했다.

가는 길이 괴로우면 오는 길이라도 편해야 하거늘 신은 그런 자비를 허락하지 않았다. 20km 정도에 불과한 강릉 시내까지 도착하는데 3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1시간에 6km씩 간 셈이니 차는 이날만은 사람과 발맞추어 걸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그건 예상이기도 했지만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다.

 날이 채 밝기도 전 도로는 벌써 빠져나가는 차들로 북새통이었다.
날이 채 밝기도 전 도로는 벌써 빠져나가는 차들로 북새통이었다.김대홍

점심을 후다닥 먹고 3시쯤 출발했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려야 할 차는 2시간 50분을 달려(?) 겨우 11km 떨어진 강릉휴게소로 들어갔다. 1시간에 겨우 4km를 달린 셈이었다. 움직인 시간보다 서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이러다 서있는 데 기름을 다 쓰고 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됐다. 주유소도 북새통일 텐데 기름도 바닥을 드러내버리면 끝장이었다. 우리는 모두 마음을 포기했다고 중얼거렸지만, 주문은 사람들을 진정 시키지 못했다. 길가엔 아예 가길 포기하고 서있는 차들도 많았다. 짧은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나는 승부수를 걸었다.

"저는 버스를 타고 가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터미널에 세워주세요. 버스가 낫지 않을까요."

짙은 어둠이 깔린 7시 10분경 우리를 태운 차는 평창 횡계터미널로 들어갔다. 23km를 달리는데 2시간 30분이 걸렸으니 조금 상황이 나아졌다고 해야 할까.

 평창 횡계터미널에서.
평창 횡계터미널에서.김대홍

그날따라 일관성법칙이라도 작동하는지 횡계터미널에 도착해서도 서울에 가는 표를 사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작은 버스터미널에서 잔뜩 지친 사람이 나무의자에 반쯤 쓰러져 있는 모습을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그날 몇시에 도착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기록도 없다. 아마 잊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기억과 기록은 횡계터미널에서 멈췄다.

그 전까지 정동진은 드라마 <모래시계>로 기억됐지만, 그 날 이후론 '교통체증'으로 기억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연말에만 그럴 뿐 그 이후론 정동진에 대한 기억도, 교통체증에 대한 기억도 사라진다는 점이다. 참 다행이다.
#정동진 #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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