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허가비가 공사비 절반... '돈'에 미친 세상'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77] <돈>

등록 2013.12.31 11:38수정 2013.12.3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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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30원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대견하다
나도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무수한 돈을 만졌지만 결국은 헛 만진 것
쓸 필요도 없이 한 3, 4일을 나하고 침식을 같이한 돈
―어린 놈을 아귀라고 하지
그 아귀란 놈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집어갈 돈
풀방구리를 드나드는 쥐의 돈
그러나 내 돈이 아닌 돈
하여간 바쁨과 한가와 실의와 초조를 나하고 같이한 돈
바쁜 돈―
아무도 정시(正視)하지 못한 돈―돈의 비밀이 여기 있다
(1963. 7. 1)

수영은 돈에 민감했다. 어느 해 봄이었다. 아내 현경이 집에 목간통을 들인다고 난리를 피운 적이 있다. 널판장을 둘렀던 안방 벽 옆에 서너 평가량 되는 욕실 증축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관청에서 무허가 증축이라며 트집을 잡았다. 소방서와 구청, 상이군인, 지서에서 오라 가라 하며 야단을 피웠다. 지서에 올라가서는 시말서를 쓰라는 요구까지 받는다. 허가를 받고 증축해야 한다는 요구도 들었다.

"허가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불퉁거리며 시말서를 쓴 수영이 지서 직원에게 물었다.

"허가를 내려면, 모두 2만 5천 환가량 들어요."

수영의 귀에는 지서 직원의 무뚝뚝한 대답 소리가 믿기지 않았다. 너무 큰 액수였다.


"얼마요?"

수영은 기막히다는 듯 되물었다.


"2만 5천 환이요."

5만 환 내외 공사비에 허가 비용이 2만 5천 환이라니. 수영은 할 말이 없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할 대로 해보라지!'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

수영에게 '돈'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증표였다. 그에게 돈벌이는 오로지 원고 쓰기밖에 없었다. 시인으로서, 그리고 번역가로서의 삶이 '진행 중'임을 말해주는 것은 글과, 그 대가로 받는 돈, 곧 원고료뿐이었다. 원고료 벌이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그의 유일한 수입이었다.

수영에게 글쓰기는 유한 계층의 여유로운 취향이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수영은 돈을 따졌다. 원고료를 대충 계산하거나 제때 지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1950년대 중반엔가, 수영이 친구 이봉구와 틀어진 것도 돈 문제 때문이었다. 수영은 자신의 번역 원고료를 중간에서 가로챈 이봉구를 결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돈>의 시적 배경도 수영의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화자에게 "30원이 여유가 생"(1행)긴 것,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2행)은 '대견'(1행)한 일이다. 그런데 진짜 '대견'한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무수한 돈을 만졌지만 결국은 헛 만진 것"(3행)이라는 진술 때문이다.

'돈'은 들어오는 족족 "풀방구리(풀을 담아 놓은 작은 질그릇. 풀방구리에 쥐 나들 듯 자꾸 들락날락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기자 주) 드나드는 쥐"(7행)처럼 화자의 손을 벗어난다. '내 돈'(8행)이면서도 '내 돈'이 아닌 까닭이다. '돈'은 "바쁨과 한가와 실의와 초조를 나하고 같이"(9행)해 왔다. 애착의 대상이다. 하지만 '바쁜 돈'(10)은, '아귀'(5행)같은 자식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집어"(6행)가 버린다. 한시라도 '나'에게 머무르는 순간이 없다. 돌고 도는 돈의 비밀, '바쁜 돈'의 진실이 여기에 있다.

수영이 돈에 민감한 까닭은 어디에 있었을까. 수영에게 '돈'은 세상 형편을 돌아보는 척도였다. 그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정의로운지, 사람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살아가는지를 알게 해주는 기준이었다.

필자는 생업으로 양계를 하고 있는 지가 오래되는데 뉴캐슬 예방주사에 커미션을 내지 않고 맞혀보기는 이번 봄이 처음이다. 여편네는 너무나 기뻐서 눈물을 흘리더라. 백성들은 요만한 선정(善政)에도 이렇게 감사한다. 참으로 우리들은 너무나 선정에 굶주렸다. 그러나 아직도 안신하기는 빠르다. 모이값이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이값은 나라꼴이 되어가는 형편을 재어보는 가장 정확한 나의 저울눈이 될 수 있는데, 이것이 지금 같아서는 형편없이 불안하니 걱정이다. (<아직도 안심하긴 빠르다>, ≪김수영 전집 2 산문≫, 173쪽)

돈은 적당한 시간을 갖고 그 주인에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 '돈'이 "쓸 필요도 없이 한 3, 4일"(4행)을 머무르다 가버리는 세상은 결코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다. "바쁜 돈― / 아무도 정시(正視)하지 못"(10, 11행)하는 '돈'은 온전한 세상을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돈의 비밀'을 제대로 깨닫는 이들은 거의 없다.

수영은 '돈'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를 원했다. '풀방구리'처럼 급하게 왔다 가기만 하는 '돈'은 진짜 '돈'이 아니었다. 그는 '돈'이 진정으로 '나'의 것이 되기를 바랐다. '여유' 있게 '나'에게 머무르면서 '나'를 살리고, 다른 사람과 세상을 살리는 것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가령 관청 허가비로 공사비의 두 배나 넘는 돈을 주어야 하는 상황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돈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세상을 보여 준다. '돈'이 그것을 가진 사람의 뜻과 무관하게 세상을 삭막하게 해 주는 사례다. '돈'이 따뜻해지고 여유로워지는 세상이야말로 수영이 간절히 바랐던 세상이지 않을까. 시 <돈>에 숨겨 있는 수영의 진정한 메시지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돈>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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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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