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두 얼굴, 친밀함과 얽메임

[서평] 가족의 두 얼굴

등록 2014.01.16 11:45수정 2014.01.1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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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두 얼굴 표지
가족의 두 얼굴 표지도서출판 부키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에게서 성인으로 대접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부모가 자녀를 성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녀의 결정과 선택을 존중하고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무시하고 여전히 아이처럼 여기고 신뢰하지 않으면 부모 자녀 사이에 지루한 전쟁이 시작된다. 자녀는 부모에게 성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게 된다.
-『가족의 두 얼굴』, 219쪽

친구를 만났다. 예전에 활동했던 동아리에서 좋지 않은 일로 나온 뒤, 남은 유일한 친구였다. 지금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장교를 준비하면서 간간이 일을 하고 있었다. 술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근처 한정식집에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정식 2인분을 시키고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 불쑥 친구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는 말을 꺼냈다.


친구는 군대도 아직 가지 않고 있는 나보다야 네가 낫다고 받아쳤다. 나는 뭘 해야 할지는 정했고 그것을 지금 하고 있는데, 대신 어떻게 살지가 막막하다고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딱히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보다 차라리 그게 낫지. 나에게 되돌아온 말은 꽤 슬픈 말이었다. 친구는 사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가업을 이으라며 부동산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라고 눈치를 준다고 푸념했다.

나는 무심코 공인중개사도 괜찮은 일 아니냐고 말했다. 당시 친구의 부모님이 꽤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친구는 그래서 더 힘들다고 했다. 괜찮은 직업인 것을 아니까.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얼마나 힘들지 조금은 겪어보니 선뜻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지 못하겠다고 말이다. 나는 떠오르는 말이 없어 한숨만 내쉬었다. 친구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많이 봤다. 부모님이 원하는 일과 자신이 원하는 일의 충돌.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느라 제때 자신의 일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지인들의 고민을 들어줄 때면, 가족이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족쇄인 것만 같아 어떤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가족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 속마음까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마치 인생의 고향 같은 관계다. 하지만 동시에 가족은 그 안에 부모와 자식이라는, 우리나라에서만은 수직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그 때문에 자식은 부모의 영향이나 부모가 주는 압박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키워준 사람이니까.

부모의 말이 강한 힘을 갖는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아마 경제력 때문일 것이다. 나도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진로에 관한 부분은 간섭받지 않지만,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그 말을 쉬이 어기기는 힘들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하기도 쉽지 않다. 청년 실업률이 굉장히 높고, 독립할 수 있는 집도 쉽게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이유들이 있다. 가족은 어느새 청년들에게 편안한 관계라기보다는 족쇄가 되었다. 가족은 화목한 것이라는 이면에 이런 보이지 않는 폭력이 감춰져 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가족이라고 해도 서로의 신념과 가치관은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의 결정과 선택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줘야 하고, 자녀도 부모를 부모로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대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어떤 강력한 밀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에서도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좋은 작품이 나오듯, 가족 관계에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거리를 둬야만 진정으로 화목해질 수 있다.


친구와는 왠지 모를 찜찜함만 남긴 채 헤어졌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다. 친구가 억압받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도리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별다른 간섭 없이 지원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됐다. 집으로 돌아오니 왜 청소와 설거지를 안 했냐는 타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이 조금 희석되는 느낌이다. 가족의 두 얼굴은 지금 여기에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 http://picturewriter.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부키, 2012


#가족의두얼굴 #부키 #최광현 #심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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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읽고 짬짬이 쓰는 김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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