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채용제도 개편..."총장과 친분 쌓으라고?"

서류전형 부활, 총·학장 추천제 등... 취업준비생들 혼란

등록 2014.01.18 09:21수정 2014.01.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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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지역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신원경

"하지만 어쩌겠나. '을'이니까 뭐… 하라는 대로 해야지."

삼성그룹이 지난 15일 신입사원 채용제도를 개편한 것을 두고 취업준비생들은 다소 불안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류전형 부활, 총·학장 추천제 등 때문이다. 17일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은 변경된 전형이 취업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촉각을 세우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아직 변경된 채용제도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제시되지 않았고, 삼성의 채용방식 변경은 다른 기업의 채용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삼성 채용제도 개편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먼저 지원자 대부분이 SSAT(삼성직무적성검사)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서류전형에 통과한 지원자만이 SSAT에 응시할 수 있다. 한편 대학의 총장이나 학장에게 추천서를 받은 지원자는 바로 SSAT에 응시할 기회를 얻게 된다. 지방거점대학을 중심으로 삼성이 대학을 직접 방문해 면담을 진행하고, 통과한 자에 한해 SSAT 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것도 포함됐다. 더불어 SSAT 시험 방법도 보완될 예정이다(관련기사 : 삼성 채용 변경, 독일까? 약일까?).

삼성은 "지원자가 과도하게 집중되고 취업 시험 준비마저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등 인재선발 과정에 사회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게 됐다"며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면서도 사회적 부담과 비효율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채용제도를 개편하기로 했다"고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SSAT만 바라본 사람에겐 큰 타격" vs. "그동안 응시자 너무 많아 낭비"

가장 큰 변화는 서류전형 제도의 부활이다. 문아무개(25·여·대학생)씨는 "SSAT만을 바라보고 준비했던 사람들에게는 큰 타격"이라며 "서류를 통과해야 한다는 압박이 가중된 꼴이다"라고 말했다. 문씨는 "서류전형을 통과할 수 있는 방안을 여러 가지로 마련한다고 하지만, SSAT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이 부담해야 할 것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삼성의 서류전형 제도 부활은 다른 대기업의 서류전형 비중을 높이거나, 스펙 경쟁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정관(25·남·대학생)씨는 "삼성의 기준 변경에 따라 다른 기업들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취업준비생은 이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씨는 "삼성의 채용이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파급이 큰 만큼 변화 기간을 충분히 두는 등 준비생들의 혼란을 덜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단 스터디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황아무개(24·여·대학생)씨는 "서류전형이 부활한다면 결국 스펙으로 잘릴 텐데 걱정이다"고 말했다. 황씨는 "전에는 최소 요건만 갖추면 SSAT를 볼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 기회조차 얻기 어렵게 됐으니 스터디 사람들도 모두 불만"이라고 전했다. 이어 "삼성이 제도를 바꾸면 다른 기업들도 따라 바꿀 텐데 그것도 걱정"이라면서 "탈(脫)스펙화 추세가 다시 스펙이 중요한 추세로 바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황씨는 "결국 취업준비생들은 더 만능이 되어야 하는 현실에 놓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역대학에서 공부 중인 김아무개(28·여·졸업생)씨는 "학벌, 학점, 스펙 없이 취업이 가능한 곳이 그나마 SSAT라는 채널이 있는 삼성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취업의 길이 더 좁아졌다"고 말했다.


반면 서류전형 제도를 두는 것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다. 노혜인(24·여·대학생)씨는 "직무 관련 경험을 많이 보겠다는 것으로 보아, 실력 있는 사람끼리 겨룰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것들(스펙)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아 그것이 다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아무개(25·여·대학생)씨는 "지금까지는 솔직히 응시생이 너무 많았다"며 "채용의 비효율을 줄이겠다는 취지의 제도 개선은 나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SSAT를 경험한 김아무개(28·여·졸업생)씨 역시 "응시자가 너무 많아 낭비라는 생각은 있었다"며 "준비 없이 '한 번 쳐봐야지' 하는 응시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국아무개(25·여·대학생)씨 역시 "누구나 한 번 보려고 몰리는 경향이 심하긴 했다"며 "SSAT 강사, 학원, 족집게 과외까지 생겨나는 상황에서 SSAT의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은 적절한 대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암기만으로 맞출 수 있는 문제를 줄이고 논리력이나 추리력, 인문학적 지식을 요하는 비중을 높이면서, 공간 지각 능력을 평가하는 영역도 추가하겠다는 SSAT 자체의 개편도 긍정적인 것 같다"고 전했다.

"총·학장 추천제도, 투명한 학생 추천 방안 함께 제시돼야"

 지역의 한 대학 도서관에 있는 job카페
지역의 한 대학 도서관에 있는 job카페 신원경

총·학장 추천제도에 대해서는 우려를 내비치는 취업준비생들이 많았다. 삼성은 전국 200여 개 대학의 총·학장으로부터 한 해 5000명가량의 우수 인재를 추천받아 이들에게 서류전형을 면제하고 SSAT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황아무개(25·남·대학생)씨는 "직무 관련 능력을 중요시 하겠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총장과 학장의 추천제도는 비리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 학생들이 과연 그 제도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능력이 뛰어난 학생을 투명하게 추천할 수 있는 방안이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 공부를 막 시작한 강승원(25·남·대학생)씨는 "총장과 학장과의 친분을 쌓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스펙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며 "숨 가쁘게 살아야 입사할 기회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은 취업의 문이 더 좁아졌다는 뜻 아니겠냐"고 말했다. 

추천제 전형으로 인해 학생들은 대학의 눈치까지 살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졸업 후 취업준비에 한창인 김아무개(28·여·졸업생)씨는 "대학추천으로 서류를 면제해주는 전형은 중앙대-두산그룹의 사례가 보여주듯 대학생들이 대학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졸업을 유보한 황아무개(24·여·대학생)씨는 "이 전형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씨는 "결국 이 제도도 재학생만을 위한 것이 될 것 같다"며 "취업률을 고려하는 대학은 대부분 졸업을 앞둔 재학생들을 추천대상으로 올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졸업을 유보하거나 이미 졸업한 학생들에게는 별다른 이익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런데 또 결국 SSAT 시험에서 떨어지면 끝이기 때문에 과연 이 제도가 무슨 이점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아무개(28·남·졸업생)씨는 "인재추천권을 할당하려는 취지는 좋은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대학에서는 스펙이 높은 학생들을 위주로 추천할 가능성이 높아 취업준비생들의 기회는 실제로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씨는 "제도적 보완이 없다면 학생들은 결국 대학 안에서도 스펙싸움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SKY 대학만 뽑겠다는 셈"... "대학은 삼성 손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찾아가는 열린채용'의 일환으로 지역거점대학에 연중 수시로 방문해 SSAT 응시 대상자를 발굴한다는 계획에 궁금증을 제기하는 취업준비생도 있었다. 양동혁(24·남·대학생)씨는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TO를 줄지, 이 제도가 지방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지역대학에 재학 중인 이아무개(25·여·대학생)씨는 "지방대학 학생들에게 희망적인 전형이 될 수 있도록 발전했으면 좋겠다"며 "수도권과 지역의 균형적인 채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아무개(24·여·대학생)씨는 "삼성의 채용방식이 바뀐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바뀌게 될 줄은 몰랐다"며 "갑작스럽게 바뀌어, 할 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정씨는 "IMF 이후 취업률이 사상 최대로 떨어졌다고 하는데 정말 걱정"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삼성 채용 방식 변경을 놓고 누리꾼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트위터 사용자 @arch***은 "바뀌는 삼성채용은 결국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만을 뽑겠다고 공언한 셈"이라는 반응을 남겼다. @YEJIN***은 "결국 삼성채용 개편이네, 저번 학기에 합격했어야 했어, 싸트(SSAT)만 믿고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Ube***은 "가뜩이나 대학은 취업을 위한 곳으로 전락했는데, 이제 대학은 삼성 손 안으로 들어갔다 해석됨"이라는 평을 남겼다.

한편 삼성은 "새로 도입하는 서류전형은 직무 전문성과 서류면접 수준의 전형으로 운영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입사지원서는 학업내역, 전문역량을 쌓기 위한 준비과정과 성과, 가치관 평가를 위한 에세이 작성 등으로 구성될 것이다"라며 "전문성과 무관한 '보여주기용 스펙'이 아닌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 열정을 종합적으로 검증하여 준비된 인재를 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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