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주려던 선물 '안갯속'으로... 아베의 위기

오키나와현 나고시장 선거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 반대 후보 승리

등록 2014.01.20 09:36수정 2014.01.20 09:37
0
원고료로 응원
a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장 선거에서 이나미네 스스무 현 시장의 당선을 보도하는 NHK뉴스 갈무리. ⓒ NHK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뼈아픈 '일격'을 당했다.

오키나와현 나고시 시장 선거에서 아베 정권의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정책에 반대하는 이나미네 스스무 현 시장이 당선된 것이다.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 대승으로 집권 후 거의 모든 주요 선거에서 승리해온 아베 정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후텐마 미군기지의 현외 이전을 주장하는 이나미네 시장은 아베 정권의 현내 이전 정책을 강조하며 자민당의 지원을 받은 스에마쓰 분신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나미네 시장은 당선 확정 후 "이번 선거 결과는 시민의 분별력을 보여준 것"이라며 "나는 앞으로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로 이전하는 모든 절차를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고시장은 항구와 도로 사용 승인 권한을 갖고 있어 아베 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은 불투명하게 됐고, 미·일 동맹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17년 만에 결실 맺은 미·일 합의, 또 깨지나

일본과 미국은 지난 1996년 오키나와현 남부의 후텐마 미군기지를 이전하기로 합의했으나, 이전 장소를 둘러싸고 진통을 겪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여러 후보지를 검토한 끝에 오키나와 나고시 헤노코 인근을 지목하며 '현내 이전'을 결정했다.


그러나 오키나와현은 이미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집중된 오키나와에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는 것에 반대하며 환경보호와 안전의 우려를 들어 '현외 이전'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아베 총리는 취임 후 후텐마 기지 이전을 매듭짓기 위해 나카이마 히로카즈 오키나와현 지사를 만났다. 아베 총리는 후텐마 기지의 운용을 5년 내로 중단하고, 연간 3000억 엔의 재정을 지원하겠다는 과감한 제안으로 결국 나카이마 지사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아베 총리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전격 강행한 것은 후텐마 기지의 현내 이전이라는 '선물'을 준비했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을 즉각 환영했다.

하지만 아베 정권과 미국의 합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후텐마 기지의 '현외 이전'을 주장하는 이나미네 시장이 여론의 지지를 얻고 당선되면서 아베 총리의 계획은 틀어지게 됐다.

선거 판도가 불리하다고 느낀 자민당은 인구 6만 명의 불과한 나고시에 500억 엔의 발전기금을 조성하고, 오키나와현에 경제금융 특구를 만들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어 스에마쓰 후보를 밀었으나 오히려 '돈으로 표를 사려고 한다'는 반발에 부딪혔다.

일본 정부가 계획대로 헤노코 해안을 매립하고 후텐마 기지를 이전하려면 10여 개 항목이 넘는 시장의 인허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나미네 시장의 재선으로 사실상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자민당, 연정 파트너 공명당과도 '삐걱'

선거가 치러지기 전 여론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패배를 예상했던 아베 정권은 나고시가 계속 후텐마 기지 이전을 반대하면 국가의 권한으로 강행할 수 있는 법을 새로 만들면 된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지지율 관리'도 해야 하는 입장으로서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자민당은 성명을 통해 "선거 결과로 나타난 유권자의 뜻을 존중하며 나고시와 계속 협의할 것"이라고 한발 물러서면서도 "정부의 결정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입은 타격은 만만치 않다. 후텐마 기지의 현내 이전에 필요한 공사 기간이 최소 9년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이마저도 지연이 불가피해지면서 미국과의 합의를 지키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연립여당 파트너 공명당과의 갈등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아베 총리의 정국 장악력에 물음표가 달렸다. 공명당은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추천한 스에마쓰 후보를 당론으로 지지하지 않고 개인의 판단에 맡겼다.

공명당은 이나미네 시장이 당선되자 "오키나와현의 역사적인 승리"리며 "아베 정권의 강압에 의한 기지 이전을 단호히 거부한 유권자의 용기 있는 심판을 진심으로 존중한다"고 아베 정권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후텐마 기지에 이어 탈원전까지... 아베의 위기

아베 정권은 다음 달 9일 더 어려운 승부를 앞두고 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탈원전 연대'와 도쿄도 지사 보궐선거에서 맞붙어야 한다.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려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리지만 원전 폐쇄를 주장하며 갈등을 빚고 있는 고이즈미 전 총리는 호소카와 전 총리를 후보로 앞세워 도쿄도 지사 선거에 도전장을 던졌다.

도쿄도는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 도쿄전력의 대주주이자 일본 지역 선거의 최대 승부처다. 일본 언론은 이번 도쿄도 지사 선거를 아베 정권을 바라보는 민심의 '풍향계'로 여기고 있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구나 이날 치러진 후쿠시마 인근의 미나미소마 시장 선거에서도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건 사쿠라이 가쓰노부 현 시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미나미소마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큰 피해를 입고 '피난지시 구역'으로 설정된 곳이다.

그동안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율을 믿고 특정비밀보호법, 소비세 인상,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 등을 거침없이 추진해온 아베 정권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아베 신조 #후텐마 기지 #후쿠시마 원전 #일본 선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3. 3 팔봉산 안전데크에 텐트 친 관광객... "제발 이러지 말자"
  4. 4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5. 5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