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카메라 있다!" 눈물이 났습니다

[소심하고 때늦은 밀양 방문기②] 가로막힌 밀양 109 공사현장의 하루

등록 2014.01.22 14:20수정 2014.01.2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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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날에는 밀양에서 농사짓는 분이 옷을 빌려주셨습니다(관련 기사 : 평상복 입은 여성에게 말 걸었더니... "경찰입니다"). 그 분은 옷과 함께 가방도 빌려주시며 가방 안에 작은 반찬 그릇을 넣어가라 했습니다. 경찰들의 가방 수색에 대비하려면 도시락을 싸가는 주민과 비슷해야 한다는 거지요. 불심검문을 무서워하던 20대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긴장된 상태로 저는 손바닥 만한 카메라를 수건에 꽁꽁 싸서 가방의 맨 바닥에 넣고 그 위에 작은 반찬그릇과 수건 하나, 그리고 산에서 입을 옷 하나를 챙겨 넣었습니다. 차를 타고 다시 전날 헤매던 도곡마을 회관 앞까지 와서 앞서 걷는 주민 분의 뒤를 따라서 열심히 산을 올랐습니다. 오늘은 제발 저 산 위까지 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어제의 그 장소에서 경찰은 또 막아섰습니다. 하지만 함께 걷는 주민 분의 "내가 우리 마을 산도 못 올라가나?"라는 호통 덕분에, 그리고 그 분의 안사람으로 소개된 덕분에 저 또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아, 드디어 109 현장엘 갈 수 있게 되었다!'

기쁨도 잠시, 올라온 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파른 산길이 나타났고 오직 앞서가는 주민 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만 하며 정신없이 산을 올랐습니다. 다리가 뻣뻣해져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조금만 쉬었다 가자고 말하려는 순간, 아까 만났던 경찰의 세 배는 넘어 보이는 경찰들이 서있었습니다. 어제부터 그렇게도 오르고 싶었던 109 공사현장에 드디어 도착한 것입니다. 하지만 공사현장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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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없는 곳 힘들게 산을 올랐지만 109 공사현장은 볼 수 없었습니다. 겹겹히 둘러싼 경찰들의 벽 때문이었습니다. ⓒ 류미례


쿵쿵쿵! 땅을 파는 듯한 중장비소리는 귀를 찢을 듯이 들려오지만 그 앞에는 경찰들이 여러 줄로 겹쳐 서 있었고 주민들이 일어나거나 가까이 다가서면 경찰들은 방패로 물샐 틈 없는 벽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산이야 "우리 산 얼마나 팠는지 좀 보자" 할머니가 다가가자 경찰들은 얼른 방패의 벽을 만듭니다.
우리 산이야"우리 산 얼마나 팠는지 좀 보자" 할머니가 다가가자 경찰들은 얼른 방패의 벽을 만듭니다.류미례

한치 앞도 못 나가게 막는 경찰들의 태도에 화가 난 할머니들이 몇 번 방패를 밀어보기는 했지만 경찰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주민들은, 특히 할머니들은 '우리 산이 얼마나 변했는지도 보지 못하게 하느냐'며 애통해하셨습니다. 할머니들이 울거나 하소연을 하거나 화를 내면서 방패를 밀면 경찰들은 "할머니, 다칩니다~"하며 여유로운 말소리로 할머니들을 밀어냈고 그렇게 밀고당김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여러 대의 카메라들이 몰려왔습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모두가 경찰이었죠.


경찰의 불법 채증 크고 작은 충돌이 있을 때마다 경찰들은 카메라를 들고 몰려 들었습니다.
경찰의 불법 채증크고 작은 충돌이 있을 때마다 경찰들은 카메라를 들고 몰려 들었습니다.류미례

그날, 주민들 때문에 여러 번 울컥했습니다. 경찰들의 비아냥에 울분을 터뜨리실 때, 누구냐고 묻는 경찰에게 우리 마을 새댁이라고 보호해주실 때, 그리고… 손바닥 만한 제 카메라를 가리키며 "우리도 카메라 있다!"라고 경찰들에게 소리칠 때, 저는 울컥임이 눈물로 번지지 않도록 애써 참아야했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점심 때가 되자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 먹었습니다. 할머니들은 힘든 산행에 도시락통 무게라도 줄이려고 비닐에 밥과 반찬을 싸오셨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찬 밥 한 덩이를 얻어 먹고 또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시끄러워졌습니다. 밀양경찰서장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을 편집 없이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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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합법입니까 주민들을 자신들의 땅에서 쫓아내는 것이 합법입니까? 주민들의 얼굴을 마구잡이로 찍는 것이 합법입니까? ⓒ 류미례


경찰서장이 왔다 간 후로 모두들 시무룩해졌습니다. 저 또한 촬영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외부세력이라고 쫓아낼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날이 저물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네 개의 마을에 걸쳐있는 109 공사현장은 두 마을씩 돌아가며 지키기 때문에 주민들은 하루는 공사현장을 지키고 또 하루는 가을걷이로 바쁜 농사일을 하는 방식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천막을 지켜야했기 때문에 할머니 다섯 분과 아저씨 세 분, 그리고 저까지 아홉 명은 산 위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습니다. 저의 경우는 내려가면 다시 못 올라올 것같아서 남기로 했습니다. 밤이 되자 산은 추워졌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돗자리를 깔긴 했지만 습기가 올라올 것에 대비해 김장용 비닐봉지를 하나씩 받았고 바닥에도 비닐을 한 번 더 깔았습니다.

하지만 모자를 쓰고 비닐봉지 안으로 들어가 있어도 쌩쌩 부는 바람을 막기는 힘들었습니다. 새로 교대한 경찰들이 할머니들 고생하신다고 비닐막을 쳐주었습니다. 쿵쿵쿵 땅 파는 소리는 밤늦게까지 들려왔고 비탈진 땅 때문에 주르륵 주르륵 미끄러지며 자다 깨다 했습니다. 그렇게 산 위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배터리도 아껴야했고 촬영하다 쫓겨날까봐 몇 커트 못 찍었습니다만 그 밤의 분위기를 느껴보시라고 영상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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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의 하루밤 70~80대 할머니들이 산 위에서 비닐을 깔고 하루밤을 보냅니다. 송전탑 저지를 위해서입니다. ⓒ 류미례


덧붙이는 글 2014년 희망버스를 맞아 지난해 10월 희망버스를 타고 만났던 밀양의 풍경, 사람들에 대한 글을 씁니다. 지금은 이때보다 더 상황이 악화된 것같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 담고자하는 밀양의 상황 또한 억울하고 마음 아픕니다.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그 때 찍었던 영상과 사진들을 올립니다. 밀양에 더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가 쏟아지기를 바랍니다.
#밀양 #송전탑 #109 공사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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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제작공동체 푸른영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 여성, 가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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