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광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석탄의 역사③] 석탄 합리화 정책과 폐광

등록 2014.01.22 19:05수정 2014.01.2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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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부 (영월 마차 갱도체험관)
광부 (영월 마차 갱도체험관)이기원

석탄 생산이 본격화되기 전, 사북과 고한은 전형적인 강원도의 산간 오지였다. 척박하고 좁은 농경지에 기후도 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농사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워 화전을 일구거나 약초를 캐면서 어렵게 생활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 석탄개발 정책이 추진되면서 사북, 고한 지역은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인적 드문 산촌에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유입되는 탄광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사북리, 고한리에 불과했던 행정구역이 급격한 인구 증가로 사북읍, 고한읍으로 승격되었다. 이제 석탄 없는 사북, 고한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광업소 월급날에는 광산촌 일대가 모두 장터가 되어 들썩였다.

 탄광촌 인구 증가(사북 석탄유물전시관)
탄광촌 인구 증가(사북 석탄유물전시관)이기원

사북의 동원탄좌와 고한의 삼척탄좌에서 생산되던 석탄이 한창 많을 때는 전국 생산량의 25%에 이를 정도였으니 석탄을 동력으로 했던 1970년대 경제 성장에서 사북, 고한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산업전사에서 구조조정 대상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3저 호황'의 영향으로 국제 원유 가격이 하락하고 원화의 평가절상이 이루어지면서 국내 석유가격도 하락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국내 산업의 동력을 담당했던 석탄은 석유에 밀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오랜 세월 채탄이 이루어진 석탄 갱도는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생산 단가가 올라 석탄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1984년 정부의 석탄수입자유화 정책 시행으로 국내 석탄 산업은 큰 위기를 맞았다. 더구나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부터 석유, 도시가스 등의 보급이 정책적으로 확산되면서 도시를 중심으로 석탄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탄광지역 사북, 고한도 이런 소용돌이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광부들이 신던 장화(사북 석탄유물 전시관), 일반 장화와는 달리 장화 앞부분이 돌처럼 단단하다.
광부들이 신던 장화(사북 석탄유물 전시관), 일반 장화와는 달리 장화 앞부분이 돌처럼 단단하다. 이기원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는 1988년부터 석탄산업 구조조정에 착수했고,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사업을 발표했다. 경제성이 낮은 영세탄광은 자율적으로 문을 닫게 하고 경제성이 있는 탄광만 육성하겠다는 것이 석탄 합리화 사업의 명분이었다.

1970년대 정부와 언론은 광산 노동자들을 '산업전사'라 부르며 치켜세웠지만, 석유와 가스 등 다른 에너지에 비해 석탄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광산 노동자들의 삶터인 탄광 문을 닫기 시작했다.


 광부(고한 삼탄 아트마인 벽화)
광부(고한 삼탄 아트마인 벽화)이기원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은 사북, 고한 지역을 급격하게 위축시켰다.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탄광에서 일을 하며 생활했기 때문이다.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사북, 고한 지역의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지역 경기가 위축되고 상가가 문을 닫았다.   

사북, 고한 지역의 광업소들은 석탄산업 합리화 사업 이후 탄광에서 벌었던 돈을 싸들고 손쉽게 떠나갔다. 하지만 지하 막장에서 묵묵히 일만했던 광산 노동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갈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폐광의 회오리가 휩쓸고 간 자리

광산 노동자들 중에는 20년 이상 광산 일을 시작한 나이 많은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많은 나이와 진폐 등의 직업병을 안고 있어 폐광 이후 다른 일자리를 찾아 취업하기 힘들었다. 이들에게 탄광 문을 닫는다는 것은 생존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사라져가고(사북 석탄유물전시관)
그들은 그렇게 사라져가고(사북 석탄유물전시관)이기원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린 사북, 고한 주민들은 '공추위'를 결성해서 폐광에 따른 대책을 요구하며 저항했다. 광산 노동자, 지역 사회단체, 선출직 의원들을 포함하는 모든 지역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투쟁은 사북, 고한 전 지역, 전 계층의 문제로 확산되었다.

'핵 폐기물 시설'이라도 유치해달라며 치열한 생존권 투쟁을 벌인 사북, 고한 지역 주민들은  폐광지역 전체 개발의 법적 근거가 된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약속받았고, '내국인 카지노 설립'이라는 약속도 받아냈다. 2001년 고한의 삼척탄좌가 폐광되고, 2004년 사북의 동원탄좌가 폐광됐다. 대신 사북, 고한 일대에는 카지노가 들어왔고, 하이원리조트를 중심으로 관광산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제 탄광촌이었던 사북, 고한에서는 더 이상 광부를 찾아볼 수 없다. 광부들이 떠난 자리에 들어온 카지노의 영향으로 사북, 고한에는 전당사가 성업 중이다. 그 많던 광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석탄과 광산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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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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