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사람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56] 路

등록 2014.01.27 16:43수정 2014.01.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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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路 길 로(路)는 신이 제사를 지내는 축문에 응답하여 아득한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르는 ‘길’을 의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길 로(路)는 신이 제사를 지내는 축문에 응답하여 아득한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르는 ‘길’을 의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 漢典


대만 영화 <타이베이 카페 스토리(第36個故事)>를 보면 학비로 대학을 진학하겠느냐 아니면 세계여행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이 나온다. 우선 대학에 진학해 지식을 쌓은 다음에 세계여행을 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고, 또 여행을 통해 더 실질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만 권의 책을 읽으며 선현의 지혜를 습득하는 것(讀萬券書)도 중요하고 또 만 리의 길을 걸으며 다양한 경험을 체득하는 것(行萬里路) 또한 필요할 것이다.

루쉰(魯迅)은 그의 소설 <고향(故鄕)>의 마지막 부분에서 희망은 본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실 땅에는 원래 길이 없었는데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其實地上本沒有路, 走的人多了, 也便成了路)"과 같다고 했다. 원래 없던 길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생겨나는 것처럼, 희망이라는 것도 그것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면 생겨나 결국 이뤄지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길 로(路, lù)는 거꾸로 그린 발 모양의 지(止)와 움집의 상형인 각(各)이 합쳐진 형태로, 신이 제사를 지내는 축문에 응답하여 아득한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르는 '길'을 의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흔히 인생 여정을 '길'에 비유하곤 한다. 좋든 싫든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必經之路)도 있고,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기도(岐路亡羊) 한다. 갈림길이라는 선택의 순간들이 합쳐져 하나의 인생길을 이루게 된다.

누군가는 평탄한 길을 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험난한 길을 헤쳐가기도 한다.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어떤 길을 가든 남게 마련이다. 길은 저마다 다양해도 살아가는 이치는 사람마다 비슷한 법(路是千条,理是一条)인지도 모르겠다.

"길이 멀면 말의 힘을 알고 날이 오래면 사람의 마음을 본다(路遥知马力,日久见人心)"고 한다. 조급해 하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으니 길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

서산대사는 눈을 밞으며 들길 걸어갈 때 발걸음을 어지럽히지 말라고 했다.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반드시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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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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