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음식의 탄생과 번창의 역사적 맥락을 좇으며 일본인의 정신과 콤플렉스까지 읽어 낸다"(황교익 맛칼럼니스트)는 추천사는 '뻥'이 아니다.
따비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도서출판 따비)는 일반적인 맛집 소개 책과는 레벨이 다르다. 책 뒤표지에 있는 추천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때로는 포르노가 진짜보다 생생할 때가 있다. 스토리가 있는 놈이면 더 좋을 것이다. 박상현의 책이 딱 그렇다"(요리사 박찬일), "일본음식의 탄생과 번창의 역사적 맥락을 좇으며 일본인의 정신과 콤플렉스까지 읽어 낸다"(황교익 맛칼럼니스트)는 추천사는 '뻥'이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일본음식, 아니 음식과 문화에 대한 넓고 깊은 지식에 일단 놀라게 된다. 그것도 일본 규슈라는 작은 지역만 놓고 음식에서 시작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방을 짚어가는 글쓰기를 맛보는 재미가 있다. 저자 스스로 "어쩌면 '한일 해협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기네스북 등재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참고 자료를 찾아 읽고 취재에 공을 들였다는 것은 1장 '화혼양재, 일본음식이 된 서양음식들'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즐기는 대부분의 일본 음식은 일본의 전통과 정신을 바탕에 두고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인 '화혼양재' 스타일이다. 돈가스와 카레, 교자, 오코노미야키 등이 그렇다. 특히 원래 인도의 혼합 향신료 '마살라'가 일본 음식 카레로 변모한 유래는 상당히 흥미롭다.
'절대미각'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가족들의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야하는 요리담당자로서 카레는 상당히 매력 있는 음식이다. 돼지고기, 감자, 당근, 양파 등 재료를 넣고 한 솥 끓이기만 하면 다른 반찬이나 찌개가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고, 특히 방학 때는 아이들보고 "알아서 챙겨 먹어라" 하기 좋은 간편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리 과정에서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긴 하지만 기본만 지키면 거의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것도 카레의 장점이다.
마살라가 카레로 변하게 된 건 영국과 인도를 오가는 선원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여러 명이 나눠먹을 수 있는 스튜에 마살라를 첨가하게 된 것이 나중에 영국 해군의 스튜 조리법으로 발전하게 된 것. 병사들이 먹는 음식이란 게 대부분 최대한 오래 보관하기 쉽고 간편 조리가 가능한 형태로 나아가기 때문에 전파되기도 쉽다. 영국 해군의 마살라를 첨가한 스튜 조리법은 메이지 유신 이후 영국을 모델로 삼은 일본 해군(육군은 프랑스와 독일을 본으로 삼았다)에 그대로 전해졌다.
이후 영국의 식품회사 'C&B'(크로스 앤드 블랙웰) 커리 파우더가 일본에 수입되었고, 1923년 야마자키 미네지로가 영국식 커리 파우더를 개량해 일본식 카레 파우더를 개발했다. C&B를 모델로 'S&B(선 앤드 버드)'라는 회사를 세우곤 카레 파우더를 출시했다. 카레의 대중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1950년 즉석 카레와 레토르트 카레의 출시였다.
이미 일본에서 카레의 대중화 역사는 90년이 넘었다. 인도에 이어 일본이 향신료 소비량 2위라는 사실은 일본인이 얼마나 카레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카레는 화혼양재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는 음식이다. 일본 해군의 주요 주둔지였던 가나가와현 요코스카항이 일본 카레의 발상지로 자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지자체가 눈여겨 봐야할 카라토와 단가 시장 부흥기<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의 장점은 음식을 놓고 역사성을 들여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음식과 축제 그리고 지자체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식견에 무릎을 치게 된다. 먼저 지자체 공무원이나 지역 축제 기획자가 필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 없이 주먹구구로, 예산을 쓰기 위해 이름만 내건 향토음식 개발, 혹은 축제가 얼마나 많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