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메이데이 행사장. 어느덧 자라서 이모들 사진 찍어주는 게 취미가 된 세연이. 늘 ‘폼 잡아’라고 말한다. 왼쪽 모자 쓴 이부터 박행란, 문재훈(기륭공대위), 김소연, 세연엄마, 윤종희 조합원(2013년 5월 1일)
정택용
어느덧 세연이가 공장 앞 집회 때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세연이한테는 절대로 비정규직의 설움을 물려줄 수 없다는 엄마의 소박한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던 투쟁도 기륭자본의 공장부지 개발 저지를 위한 마지막 집단단식과 포클레인 농성 투쟁으로 극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지난 2010년 11월 3일 국회에서 사측과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내용이 담긴 합의서가 체결됐다.
세연이 엄마와 이모들의 1895일 동안의 투쟁은 종이 한 장의 합의서로 끝을 맺어야 했다. 한낱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근 십수 년만에 한국사회 불법파견 비정규직노동자가 정규직노동자가 되는 첫 사례로 기록이 되었다.
한국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소중한 소식이었다. 세연이에게 이제 엄마도 '정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눈물겨운 선물이었다. 합의서 체결할 때도 승리보고대회를 할 때도 세연이 엄마와 조합원들은 설움과 기쁨의 눈물을 연신 흘렸다. 세연이도 눈물의 뜻을 아는지 그리 놀라지 않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해맑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생산설비를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부득이하게 2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갖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투쟁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서 직접 몸으로 연대를 하였다.
노동자투쟁현장뿐만 아니라, 철거민, 노점상, 농민투쟁 등에 함께 했다. 또한 희망버스 운동의 실질적인 기획자이자 실무자로서 손발이 되어주었다. 희망뚜벅이, 쌍용자동차비정규직 희망버스, 현대차비정규직 희망버스, 그리고 근래의 밀양탈핵희망버스까지 기륭조합원들은 지치지 않는 연대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 이것이 기륭투쟁의 승리를 직접 나누는 것이며 사회적 연대투쟁을 더욱 더 확대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세연이에게 꿈을 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