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들이 반란수괴로 저를 몰고 있네요"

[강기희 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 ⑮] 반란수괴 (1)

등록 2014.01.29 15:11수정 2014.01.2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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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필자말

자유를 달라
자유를달라이난영

반란수괴죄로 체포되는 느릅나무 후손


안개가 걷히자 숲경찰과 숲얼단은 숲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또 죽였다. 숲민들은 죽어가면서도 자유를 달라며 소리쳤다. 숲은 비명소리와 피 냄새로 가득했으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땅 속이든 하늘이든 나무 등걸 속이든 숨어들어야만 했다.

먹이를 찾아 길을 나섰던 산양과 짝을 찾아 이동하던 들소는 이유도 모른 채 숲경찰의 쇠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목청껏 울던 새와 매미는 숲경찰이 쳐 놓은 독 그물에 걸려 떼죽음을 당했다. 안개가 걷히면서 생긴 일이고 우는 자유를 달라며 소리치던 자들이었다. 숲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던 숲 광장은 시신으로 넘쳤고, 자유를 갈망하던 숲민들의 외침 또한 먹바위 궁 앞에서 멈추었다.

'저 놈들이 코앞까지 왔었군. 안개가 조금만 더 머물렀어도 큰 일 날 뻔 했구나…….'

먹바위 딸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같은 시각, 숲얼단 단원들이 느릅나무 후손 집을 에워쌌다. 이어 권총을 뽑아든 숲얼단 장교가 느릅나무 후손 집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 뒤를 날쌘 단원 몇이 따라 붙었다. 창밖으로 안개가 걷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느릅나무 후손은 깜짝 놀라며 낯선 방문객을 맞았다.


"누구시오?"
"S·피스법 22조에 1항 2항에 의거 선생을 반란죄 및 반란수괴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숲얼단 장교가 품에서 꺼낸 서류를 보여주며 부하들에게 턱짓을 했다.


"반란이라니? 선거에서 진 후 내내 칩거만 했는데 내가 무슨 반란을 일으켰단 말이오!"

느릅나무 후손이 소리쳐 보았지만 장교의 부하들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느릅나무 후손의 두 팔이 뛰로 꺾이며 호송줄이 묶였다.  

"허, 알 만한 분이 왜 이러실까. 다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조용히 갑시다."

숲얼단 장교가 능글거리며 말했다.

"당신들 어디서 왔어?"

호송줄에 묶인 느릅나무 후손이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거친 음성이었다.

"가보시면 압니다."

숲얼단 장교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숲얼단 단원이 느릅나무 후손을 연행하자 느릅나무 후손의 가족들이 길을 막아섰다.

"이놈들아, 안 된다!"

느릅나무 후손의 어머니가 소리쳤다. 먹바위에게 남편을 잃은 그녀였다. 먹바위 딸에게 아들마저 잃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이놈들아, 먹바위 딸이 우리 아들 잡아 오라고 시키더냐? 그렇더냐?"

느릅나무 후손 어머니의 눈에 핏발이 섰다. 숲얼단 장교가 어딘가와 무전 교신을 하더니 부하들에게 명했다.

"가족 모두 특별한 명이 있을 때까지 이 시각부터 가택연금에 들어간다!"

장교의 명이 있자 숲얼단 단원들이 느릅나무 후손의 가족들을 집안으로 몰았다.

"안 된다, 이놈들아. 아들이 가면 나도 갈 것이다!"

느릅나무 후손의 어머니가 숲얼단을 뿌리치며 아들에게로 달려갔다. 숲얼단이 느릅나무 후손 어머니의 팔을 낚아채며 소리쳤다.

"이런 썅! 죽고 싶어!"
"그래, 이놈들아. 죽여라! 죽여!"

느릅나무 후손 어머니가 악을 바락바락 썼다. 먹바위에게 남편을 잃은 것도 분하고 원통한데, 그 딸년에게 아들까지 잃는 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 전 괜찮으니 집에 계세요. 죄가 없는데 별 일이야 있겠습니까. 당당하고 떳떳하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느릅나무의 후손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다녀오겠다는 아들의 말이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잘 알았다. 남편도 잘 다녀올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아니다. 아니여. 아들아, 그렇게 가서는 아니 된다. 저들이 결코 널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야."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걱정 마시라니까요. 저녁참이나 늦어도 내일은 돌아올 것이니 염려 놓으세요."

느릅나무 후손이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그래, 알았구나. 내가 막는다고 저들이 널 놓아주겠더냐. 부디 무사히 다녀 오거라. 내 아들아……."

느릅나무 후손의 어머니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속으로 삼켰다. 느릅나무 후손이 입가에 미소를 달며 남은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숲얼단 장교가 작전 끝이라는 보고를 어딘가로 했다.

'아버지, 먹바위 딸이 숲통령이 되더니 저를 반란수괴로 몰고 있네요. 어쩌면 좋겠습니까. 제게 힘을 주세요. 아버지…….'

느릅나무 후손이 먹바위에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기도했다.

느릅나무 후손을 태운 차는 동쪽 강을 지나 먹바위 궁이 있는 남쪽으로 향했다. 안개가 걷힌 숲은 청량했으나 곳곳에서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남쪽으로 가는 길엔 시신들이 흩어져 있었고, 길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느릅나무 후손을 태운 차는 길에 널린 시신을 짓이기며 빠르게 달렸다. 시신을 뜯던 파리 떼가 급히 피했으나 몇 마리는 시신과 함께 깔려 죽었다. 차창 밖을 내다보던 느릅나무 후손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당신들 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거요?"

느릅나무 후손이 숲얼단 장교를 향해 소리쳤다.

"아, 저거 말입니까? 보시다시피 반란을 진압하고 있지 않습니까."

숲얼단 장교가 창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반란이라니! 저들은 평범한 숲민들이오. 아무 힘도 없는 피스 숲민이라 이거요. 저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저리로 참혹하게 죽이는 것이오?"

올라오는 울음을 삼키느라 느릅나무 후손의 목소리가 크게 흔들렸다.

"저들은 먹바위 딸 각하를 끌어내리라는 선생의 지시를 받은 반란군 아닙니까. 그러하니 마땅히 죽어야지요."

숲얼단 장교가 말했다. 차가운 음성이었다. 

"내가 저들에게 먹바위 딸 정부를 전복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허허, 우습소."

숲얼단 장교의 말에 느릅나무 후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하하, 그 웃음이 마지막 웃음으로 기억될 것이니 마음껏 웃으십시오."

숲얼단 장교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러는 사이 느릅나무 후손을 태운 차는 숲얼단 건물로 들어갔다.   

화근은 빨리 제거해야...

늑대가 숲통령 집무실을 찾았을 때 먹바위 딸은 얼굴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화장하는 손놀림으로 보아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아 보였다. 비서실장은 먹바위 딸의 화장을 수발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아이브러시가 들려 있었다. 늑대는 늙은이가 별짓을 다하고 있다는 표정으로 비서실장을 바라보았다.

"뭐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

먹바위 딸이 거울에 비친 늑대를 보며 물었다.

"예, 각하. 각하께서 지시한대로 느릅나무 후손을 체포해왔습니다. 저 자를 어떻게 할까요?"
"어떡하긴, 제거해 버려야지요."

곁에 있던 비서실장이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당장 말입니까?"
"그렇소. 화근은 빨리 잘라낼수록 좋은 거라 했소. 괜히 뭉그적거릴 필요 뭐 있겠소."

비서실장이 말했다. 먹바위 딸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눈 화장을 어떻게 할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숲통령 후보까지 지낸 자를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늑대가 침을 꿀꺽 삼키며 먹바위 딸을 바라보았다. 이번 질문에 관한 대답은 먹바위 딸이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거물이니 당장 없애야지요. 저런 놈은 오래 붙잡아 둬봤자 득 될 게 하나도 없어요. 빨리 없애는 게 상책입니다."

비서실장이 또 답했다.

"그렇긴 하지만, 예전 먹바위 아버지 각하께서 숲통령을 할 때와는 시대가 많이 달라졌는데……."

늑대는 역풍을 염려하고 있었다. 먹바위 아버지 숲통령 각하께서 불귀의 객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정적을 무리하게 제거하다 생긴 일이라고 늑대는 생각했다.

오랜 기간 숲통령 자리에 있었던 먹바위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정적을 살려두는 법이 없었다. 먹바위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정적을 제거했는데, 그 방법 또한 다양했다.

누구는 먹바위 궁으로 불러 쇠몽둥이로 내리쳐 죽이기도 했고, 누구는 뱃놀이를 하자며 호수로 데려가 수장을 시키기도 했고, 누구는 원숭이나라로 납치하여 원숭이 밥을 만들기도 했고, 누구는 N·피스 간첩이라는 혐의를 씌워 숲 광장에서 총살을 하기도 했고, 누구는 독약을 탄 술을 마시게 하여 죽이기도 했고, 누구는 산에 데려가서는 등을 떠밀어 죽이기도 했고, 누구는 심한 고문을 가해 죽이기도 했다.

거기엔 느릅나무 후손의 애비도 포함되어 있으니 느릅나무 후손이 그렇게 죽는다면 애비와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좋은 역사든 나쁜 역사든 한 번은 되풀이 된다는 것 알고 있는 늑대로서는 어떻게든 먹바위 딸의 질주를 막아야만 했다. 늑대는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다. 

"시대가 달라져서 느릅나무 후손을 살려줘야 한다 이 말이오?"

비서실장이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최근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 후보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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