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에 가는 중에, 계단을 오르기가 힘이 드셨는지 한참을 쉬었습니다.
이승숙
몇 년 전 봄에 아버지는 넘어지셨다. 그때 친정집의 사랑채를 수리하던 중이라 마당에는 이것저것 널린 게 많았다. 남동생은 아버지에게 미리 당부를 했다. 집이 어지럽혀져 있어서 눈에 거슬리더라도 치우고 그러시지 말고 그냥 구경만 하시라고 했다. 혹시 아버지가 일을 하시다가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말씀드렸는데도 아버지는 그예 큰 사고를 내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들의 말을 따라 그저 구경만 했지만 아버지 눈에 널려 있는 것들이 영 거슬렸나 보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아버지 친구분들이 놀러오셨는데, 여든이 넘은 분들이 당신들의 지금 나이는 생각지를 못하고 예전 생각만 하고 팔을 걷고 나섰다. 젊으셨을 적에는 모두 볏가마를 번쩍번쩍 들어올렸던 장골들이었으니 그깟 기둥 하나 옮기는 것은 일도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되었으리라. 그래서 두 팔 걷고 나무 기둥에 매달려서 용을 썼다.
세 노인이 나무 기둥에 달라붙어서 놀이 하듯이 힘을 썼다. 그까짓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직도 팔에는 힘이 남아 있었고 모처럼 옛날로 돌아간듯 기분도 좋으셨으리라. 그런데 아뿔싸, 힘을 너무 쏟았나 보다. 기둥이 너무 쉽게 들려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세 노인은 뒤로 벌렁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버지가 맨 밑에 깔렸고 그 위로 아버지 친구분들이 엎어졌다.
두 분은 툭툭 털고 일어났지만 아버지는 그러지를 못했다. 땅에 주저앉은 채 굴신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달려갔더니 고관절에 금이 갔다고 하지 뭔가. 그 길로 아버지는 두 발로 땅을 밟을 수가 없었고 다시 걷기까지 모진 고생을 해야만 했다.
고관절에 금이 가서 수술을 받은 아버지는 당최 잡숫지를 않았다. 마실 걸 권해도 됐다 하셨고 밥도 거의 사양하다시피 했다. 아버지가 왜 아무것도 드시지를 않으려 하는지 간병인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했다.
아버지는 성정이 깔끔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어려워하는 분이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 역시 하기 싫은 일이니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고 나 스스로 해야 한다'고 하시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대소변을 남의 손에 의지해서 해결해야 했으니 얼마나 불편하고 또 치욕스러웠겠는가.
수술 후 한동안 꼼짝 않고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했으니 당연히 화장실 출입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대소변 역시 침대에 누워서 봐야 했으니 얼마나 민망했을까. 아버지는 그게 영 견디기가 어려워서 아예 드시지를 않았다. 먹은 게 없으면 나오는 것도 줄 테니 간병인에게 못 볼 꼴을 안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게다.
"내 발로 걸어야 살아 있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