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설거지들집에 오면 집안일 하느라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문세경
스스로 위로하면서 적응해 가고 있다. 어떤 날은 그럴싸한 핑계를 대면서 그토록 좋아하는 술, 어떻게 한 잔 먹어 볼까,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공부를 시작한 지 2주쯤 되었나, 지리멸렬하고 답답한 느낌이 엄습했다. 산에 가자는 지인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라 안부를 묻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 "나 요즘 공무원 시험 준비 하느라 공부 하고 있어." 조금 놀라는 표정들이다.
"그 나이에 공무원 시험을 본다고? 참 대단하다." 혼자 속으로 대답한다. '그러게 말이야. 어쩌다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공부하다 카톡하다... 스마트폰의 유혹, 어떡하지 하지만 재미도 있다. 특히, 학창 시절에 그렇게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한국사'가 너무 재미있다. 그때는 무조건 외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식하게 공부했지만, 지금은 전체적인 맥락을 봐가면서 읽으니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정말 공부를 안 하기는 안 했구나' 실감할 정도로 새로운 내용이 많았다. 학창 시절에 이렇게 공부에 재미를 붙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가 되기도 한다.
도서관 드나드는 재미도 여간 아니다. 중고등학생들 드나드는 곳에 끼어 다 늙은 중년 아줌마가 가방 들고 왔다 갔다 하니 힐끗 쳐다보는 학생들도 있지만 나는 왠지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또 하나, 젊은 애들과 내가 똑같은 점도 있다. 책 펴놓고 스마트폰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나 역시 그 대열의 한 명이라는 걸 발견하고 적잖이 놀랐다. 애나 어른이나 똑같이 스마트폰의 위력(?)에 꼼짝 못하는 모습이다. 공부하면서 카톡하는 '멀티 플레이'가 나의 새로운 자화상이 된 것이다. 이게 미친 짓이 아니고 뭘까, 중얼거리면서 어떻게 하면 스마트폰을 하지 않을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나는 조금만 지루하면 카톡으로 수다를 떨었다. 나이 들어서 공부하려니 역시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거기다 '내일 아침엔 뭘 해 먹을까?', '이번 설에는 시댁에 어떤 선물을 해야 좋아할까?' 걱정까지 해야 하니, 휴….
공부 시작한 지 한 달이 될 무렵, 도서관에서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다.
"안 하던 공부를 하면서 제일 먼저 느낀 점! 공부라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집중만 제대로 한다면. 이것만 죽을 때까지 하라면 하겠다. 먹여 살려만 준다면. 마음이 급해 차분히 책을 읽지 못하는 게 아쉽다. 이렇게 계속한다면 결과는 빤하겠지만. 하지만 도서관에 드나드니 나이를 잊는다.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나이를 잊은 듯하니 예전엔 진짜 철이 없었나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오늘도 여전히 '인생 공부'만 하다가 간다. 간혹 희끗희끗한 사람들을 보면 동병상련을 느낀다." 페이스북에 짧게 올리고 보니 제대로 글 쓰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결국 멀티미디어실에 와서 이 기사를 쓴다. '난 글 쓰는 게 제일 행복한데, 어쩌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게 되었을까', 신세 한탄 속에 글을 마무리 하려는 찰나… 앗, 마침 <오마이뉴스> 광장에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기사공모가 올라왔네? 풀죽어 있던 내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이건 글을 쓰라는 '신의 계시'가 분명하다고 박박 우기는 자신을 발견한다.
흠, 그래도 오늘 공부할 목표량은 마저 해야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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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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