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주고 맛없는 거 사지 말라

등록 2014.02.04 10:29수정 2014.02.0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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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한 마트에 관한 기사 ([하루 100분 '무료노동' 너무합니다] 이하 위 기사)를 쓴 적이 있다. 3개월 남지 일했지만 마트 점원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적은 임금과 노동시간 착취, 보장되지 않는 권리와 신체적, 금전적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듣고 보고 쓴 글이다.

위 기사를 쓴 후 이야기를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일간지에 그 기업 대표가 쓴 글을 보고 경악했다.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마트가 서민들에게 싼 가격에 생활용품을 제공하는 서민형 마트로 공유경제 모델의 하나라고 제시했다. 하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당장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언젠가 몇 자 끄적여 두었던 글을 뒤적이다가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더듬어 이어가 본다.

먼저 위 기사에 연관된 이번 글을 기회삼아 산재보험에 대한 이해를 밝힌다. 위 기사에 마트기업에서 제공하는 4대보험 중 하나가 산재보험이 아니라 장기요양보험을 포함한 4대보험이라는 얘기를 듣고 동료들이 황당해 했던 이야기를 썼었다.

이후 나는 동네에서 노동관련 교육을 듣고 기업이 산재보험에 가입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산재를 신청하면 보상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급여 명세를 받지 못했던 기억과 산재보험 미가입 소문이 노동자의 무지를 이용한 기업의 꼼수라는 걸 알고 또 한 번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알아도 권리를 찾기 힘든 점원노동자의 현실이 바뀌었지는 잘 모르겠다.

1.
마트는 다양하고 저렴한 상품들로 가득찼다. 주민들에게는 철물점이며 전파사며 구멍가게며 다 없어진 동네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찾을 수 있다는 호감을 주는 대형 가게다. 그러나 소비자는 점원에게 상품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는 없다.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들어온 어떤 물건인지 점원은 알지 못한다. 종종 불량품 환불 건으로 분쟁이 생기는데 일한 지 몇 개월 안 되는 신입은 대처할 수 없다.

노련한 경험자들이 상품을 살피며 고객에게 귀책?이 없는지 집요하게 따져본다. 고객은 물건에 지불한 대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만 베테랑 점원은 '몇 천원 주고 산 물건이 그렇지 뭘 그러냐'며 고객에게 싼 물건을 산 대가를 치르라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환불 건으로 고객과 점원 간에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기싸움을 해야 하는 것은 불량품은 역시나 월급쟁이인 매장(점장)의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봐도 불량품인 것은 '눈이 삔 사람'이 가져가게 놔두면 되고 계산대에서 미스(miss) 난 돈은 점원이 메꾼다. 마트를 그만두기 며칠 전 나는 계산대가 고장나는 바람에 수작업을 하면서 계산대를 보아야 했을 때도 만원이 넘은 돈을 배상했다. 별스런 호기심이 발동하여 수리중인 계산대를 맡은 댓가로 3시간 여 일하고 2시간 30분 일한 급여가 날라갔다. 연말 손님이 많은 시간대였고 아마도 매상은 꽤 올랐을 거다. 점원이 배상하지 않으면 점장이 배상해야 하는 기업구조의 안전망은 탄탄하다. 만원짜리? 억울함을 기업주가 이해하기는 도저히 힘들지도 모른다.


근무 중 식사시간은 유일한 휴식 시간으로 누구나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식사시간이 되면 동료들과 나는 사람 두 명이 서있으면 답답해 보일 정도로 좁은 창고 안에서 접이식 책상을 펴고 도시락을 내놓는다. 서너명이 넘어갈 때는 한 두 사람이 허리를 반쯤 비틀고 앉아서 밥을 먹기도 해야 하는데 재치있는 동료가 이리저리 몸의 유연성이 발휘하면 같이 한 번 웃기도 한다. 창고 안, 삼면은 천정까지 닿는 상품상자로 늘 꽉 차 있었고 환기할 창문도 없었다. 그래도 식사시간은 각자 싸 온 반찬이야기로 도시락 안 싸온 동료의 밥 챙겨주는 말 한마디로 생기가 돈다.

공식적인 식사시간은 1시간인데 15분 정도의 식사시간이 끝나면 화장실에 가서 이빨도 닦고 계산대를 가져와 중간 정산을 한다. 화장실에도 아슬아슬하게 상품상자들이 쌓여 있다. 화장실 청소를 할 때는 바닥까지 내려와 닿아있는 물건에 물이 닿아 파손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화장실이 막히기 때문에 대변을 보는 것은 금지였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맡은 일에 성실하고 털털한 여성들이 모여 있기에 마초 상사의 눈치 볼 필요가 없고, 이 따위의 이야기들을 안주 삼아가며 서로 의지가 되어 즐겁기도 했다.

고객이 물건을 파손하면 고객이 배상해야 한다. 한 임산부가 진열대를 쇼핑하다가 물건을 떨어뜨렸다. 그곳은 내 구역이었고 좁은 통로에 점원에게 항상 과다 진열을 종용하는 마트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해서 내가 배상했다. 나는 기업이 손해보지 않기 위해 마련한 규칙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몇 시간씩 상품 진열을 하면서 무릎위에 통증이 생겼다. 계속 일하다가는 무릎이 상할 것 같고, 시급 4,500원을 받고 계산대를 보다가 미스(miss) 난 돈을 메꾸기도, 파손된 상품 값을 치르기도 싫어서 마트 일을 그만두었다.

나는 점원이었고 기업주가 점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점원의 입장에서 썼다. 몇 년 전 이야기다. 그 사이에 마트는 건물을 확장하고 더 많은 상품들로 채워 삐까번쩍하게 포장했다. 그 안 점원들의 노동환경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지나면서 점심을 먹던 창고 안에 한 번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2.
목구멍으로 넘기기에도 불안한 음식을 사먹고도 식당에서 항의하기는 커녕 내가 식당을 잘못 선택한 대가를 치른 것으로 하고 넘어가게 된 지는 오래됐다. 업소에서 관리자에게 항의할 일이 생기면 업주가 아니라 점원의 귀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점원에게 피해가 갈까봐 또 업소를 잘못 선택한 대가를 치르고 말기도 한다. 몇 천원, 몇 만원이 푼 돈이 되어버린 시대라서 인지, 큰 도둑과 사기가 성행해서 인지, 소비자의 권리가 기업이 포장하는 사랑스럽고 충만해 보이는 멘트속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인지, 이 모든 것 때문인지 불량품을 잘못 선택한 몫을 소비자가 치르고 마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몇 개월 전 지방에서 트럭을 몰고 와 굴비를 파는 아저씨에게 이것, 저것 물어본 후 굴비 한 접을 샀다. 굴비 파는 아저씨는 명함도 함께 주면서 단단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돈 주고 맛없는 것은 사지 말라' 요즘 듣기 힘든 말이기에 새삼 반가웠다. 담백하고 부지런한 노동이 묻어나는 그 목소리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소비를 한 듯해서 기분이 좋았고 가족들과 굴비를 나눠먹으면서 굴비 아저씨의 말을 전하며 즐거웠다.

소비자가 유난스럽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기업 홈페이지에라도 항의를 해야 건건이 시정하는 것처럼 보일 뿐. 큰 기업들이 소비자의 입장에서 존재하는 것 같지 않아서 여기까지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썼다. 더 이상 돈 주고 불량품도, 위험한 상품도, 필요 없는 물건도 사고 싶지 않다.

점원으로서 소비자를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다. 계산대를 보면서 소비자의 불만과 욕구가 보이고,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아마 소비자의 필요에 가치있는 설명해줄 수 있다면 보람이 더 커질 것이다. 사람의 욕구에 응대하는 것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고 괜찮은 사회생활이다. 그러나 직업의 귀천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의미없이 하는 가짜 노동은 매우 괜찮치 않다.

실로 위험사회라고 느낀다. 공유경제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만 하면 대기업들이 소비자와 노동자, 사람의 입장에서 존재하게 되는 건가.

자식들 데리고 극빈한 시절을 지나온 내 어머니는 '먹을 것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는 거다' 라고 하셨다. 굴비 아저씨는 '돈 주고 맛없는 것을 사지 말라' 고 했다. 왠지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말이 힘을 잃어 세상과 공명한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머니가 하셨던 또 다른 말로 마무리 해야 겠다. '허허, 모든 사람이 정직해지면 세상에 빈부귀천이 없어진다.' 그러면 공유경제까지 들먹이며 정직한 척하려는 큰 도둑들의 웃지 못할 거짓말이 제일 먼저 사라지겠지.
#대기업의 도둑질 #여성노동 #노동환경 #대기업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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