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다음날, 걷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면...

[공모-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내게 출산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등록 2014.02.04 20:12수정 2014.02.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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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진통이 시작됐다. 참을 만했다. 카드광고 전화를 받았는데 진통 중이라 했더니 미안해했다. 참을 만한 아픔은 밤새 계속됐다. 잠이 든 남편 옆에서 뒤척이며 밤을 새웠다. 병원에 일찍 가봤자 소용이 없다고 들었다. 새벽 6시쯤이 되자 가야 했다. 가야할 것 같았다.


남편이 주차를 하는 사이, 당직인 듯한 담당 의사와 마주쳤다. 나보고 무슨 일로 왔냐 길래 진통이 시작됐다고 했다. 드라마처럼 소리도 안 지르고 조용히 걸어갔지만, 뻔한걸 묻는 게 그 와중에도 웃겼다. 그 때부터다. 더 길고 외로운 진통은 시작됐다. 2001년 3월 22일 새벽, 난 생애 처음으로 출산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난 사방이 트인 침상에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하자 남편은 회사에 출근을 했다. 바로 옆에서 간호사들이 돼지갈비 얘기를 했다. 혼자 누워 진통을 하며 돼지갈비에 관한 얘기를 듣고 있자니 참 쓸쓸했다. 한 번씩 들른 의사는 내게 연결된 기계의 그래프를 보며 '아플텐데'하며 이상해 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아팠다. 오전이 지나고부터다. 진통 사이사이 아주 제정신으로 멀쩡해질 때마다 잠이 쏟아졌다. 자고 싶었지만 아기를 낳고 자란다. 아파 울음이 쏟아졌고, 소리도 질렀으며, 침상 위의 스테인리스 손잡이를 잡아당기는지 미는지 몰라 한참을 밀었더랬다. 잡아당겨야 했는데 말이다.

배에 손가락만 닿아도 찌르듯 아팠다

의사가 한 번씩 손으로 확인하며 아직 멀었다고 했고, 양수를 일부러 터뜨렸으며 촉진제를 맞기도 했다. 그렇게 또 몇 시간 정신이 없는 사이, 난 분만실로 옮겨졌다. 힘을 주라는데 힘들었다. 먹은 것도 없었고, 졸리기도 했고, 한참을 엉뚱하게 잡아당긴 손목도 아팠다. 간호사 서너 명이 달라 붙어 더 정신이 없었고, 아기가 나오는 것을 도와준다며 배를 누르려는 누군가의 손을 뿌리치기도 했다. 배에 손가락만 닿아도 찌르듯 너무 많이 아팠다.


몇 번인지 모를 죽을 힘을 줬고 아이는 태어났다. '축하합니다' 하며 누군가 말해주지도 않았다. 사실, 처음 임신을 확인할 때도 그랬다. 드라마랑 현실은 늘 달랐다. 기쁠 겨를도 없이 회복실로 옮겨졌고, 난 링거를 맞으며 또 기다렸다. 링거가 다 들어가고, 또 몇 시간이 지나도록 병실로 오르지 못했다. 오전에 아기를 낳고, 시각은 오후 4시가 넘어갔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서란다. 난 어기적거리며 화장실을 들락거렸지만 소변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오후 회진을 보던 담당의사에게 한 마디 듣자, 간호사는 나의 소변을 빼줬다. 묵직하고 불편한 하체를 휠체어에 싣고 병실에 올랐다. 걷기도 다리를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뭔가로 눌린 듯 고통스러웠다. 원래 그러려니 했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이상한지 아닌지 경험을 하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었다.

다음날이 됐지만 고통은 더했다. 한 걸음을 걷고는 주저앉았다. 자연분만은 하루가 지나면 천천히 걷을 수 있다고 들었지만, 뭔가 잘못됐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아는 것이 없었다.

내게 출산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오전, 나를 진료한 의사는 내게 다시 분만실로 가라고 했다. 고통에 기력을 잃어, 이유를 물을 만큼 정신이 말짱하지 않았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 했다. 너무 많이 아픈 나를 어떻게 해주길 기다릴 수밖에는 없었다. 분만실에 눕자 나의 하체를 바라보던 의사와 간호사의 몸에 피가 튀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을까 순간 그랬다.

걷지 못할 정도의 고통은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누구나 다 한 걸음 걷고 주저앉지는 않았던 것이다. 내 몸 안엔 굳지 않은 피가 덩어리로 뭉쳐있었다. 아이를 낳고 너덜해진 살을 봉합한 실밥을 뜯었으며, 바늘로 꿰맸던 그곳을 다시 바늘로 꿰매야 했다.

퇴원을 하고도 오래도록 아팠다. 누운 몸을 옆으로 돌리지 못할 정도의 고통은 이어졌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난 출산이 임박한 산모에게 말해줄 수 있다. 자연분만을 하고 다음날 주저앉을 정도로 아프면 뭔가 잘못된 거라고 말이다. 뭘 몰랐던 난 원래 그렇게 아픈 줄 알고 계속 참았다. 내게 출산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감동의 눈물보다 진한, 간호사와 의사의 몸에 튄 핏자국만큼이나 선명한 고통 그 자체였다.
덧붙이는 글 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공모글 입니다
#출산 #자연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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