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때마다 날 울리던 내 아기, 사랑해

[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공모] 36주 2일째 되던 날, 퇴원 앞두고 양수 터져

등록 2014.02.05 11:02수정 2014.02.0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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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만남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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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입니다. 축하드려요. 얼굴 표정이... 너무 놀라셨나 봐요."


아기를 잘 키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가지고 싶었기에 결혼한 지 한 달여 만에 찾아온 임신은 '웃기고도 슬픈' 조금 이상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남편은 양가에 전화하며 상기된 표정으로,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얼굴 표정으로 그렇게 산부인과를 나섰다. 그 아름다운 순간을 이렇게 밖에 연출해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무겁게 쥐어졌다.

"양수에 피가 여전히 많네요. 원래 피가 조금씩은 고일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흡수되면서 줄어야하거든요. 아기가 2cm정도인데 이런 하혈이 지속되면 앞으로 울컥울컥하고 같이 나올 수가 있어요."

임신 10주째, 수시로 하열이 쏟아지고...

방금 '같이'라는 말은 내 아기를 포함한다는 뜻인가, 혹시 내가 임신소식을 들었을 때 기뻐하지 않아서 이런 상황이? 셀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자책이 머릿속을 지나가는 만큼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은 간호사 선생님이 휴지를 건넬 때였다.


"아기는 강해요. 때로는 엄마보다 더 강할 때가 있어요."

그분의 말 한마디가 아기를 다부지게 지켜내겠다는 마음을 일어서게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의 견고함을 시험하는 듯 수시로 쏟아지는 하혈이 10주를 지나고 있었다.


"자궁은 뼈처럼 고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무조건 움직이지 마세요. 침대 밖을 벗어나지 마시고요. 지금 상황은 아기가 엄마한테 영양분을 받아야 되는데 피로 가득차서 그 연결해 주는 뿌리가 자꾸 끊어지고 있다고 보면 돼요. 피가 잘 안 멈추는 산모는 아니죠?"

다시 찾은 병원에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은 완벽히 무너졌다. 소위 안정기라는 14주가 되었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도 고작 누워서 우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니...

엄마 배 속이 가장 안전하다는데 정작 내 아기에게 내 배 속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일은 참 잔인했다. 내가 이렇게 약하고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싶을 만큼 다시 또 눈물이 시야를 가렸고, 남편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나오는데 "아기가 이렇게 버텨주고 있잖아요. 엄마도 힘을 내줘야죠"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응원이 뒤따라왔다.

아기가 버티고 있다는 말에 안쓰러워 고개를 떨어뜨리다가 나도 그만큼 힘을 내줘야 한다는 말에 울음 속에서도 맞다 그렇다며 고개를 다시 들었다.

울다 잠들고, 힘을 내다 무너지고를 반복하며 6주를 보내고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다"는 말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릴 만큼 짜릿했다. 그리고 신이 나서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아기를 위해 하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목록을 만들었다. 그 중 두 개를 막 끝마칠 무렵 배가 뭉쳐 왔다. 조기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또 다시 화장실과 식사 이외에는 누워만 있으면서 진통을 잡기 위한 입원 생활이 시작됐다. 약의 농도는 점점 짙어 가는데 수축은 쉬이 잡히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도 태아의 몸무게가 2kg이 되지 못한 채 역방향으로 머물러 있었다.

폐가 성숙하는 37주까지 버티며 담대한 '엄마'가 되어간다

한 달이 되가는 입원 기간으로 양쪽 팔 모두 링거 꽂을 핏줄을 찾아내기가 힘겨워졌고, 투여되는 약은 태아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산모인 나를 꽤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핏줄이 터지면 다른 곳에 꽂아 질 때까지 눈을 감아버리고, 약의 부작용을 견디고,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다시 세우며 폐가 성숙하는 37주까지 버텨주며 누구보다 담대한 '엄마'가 되어가는 것이 내 몫이었기 때문이다.

울었지만 더 많이 웃고, 넘어지면 더 빨리 일어서며 아기가 드디어 2kg이 넘었다는 소식과 함께 36주를 맞았다. 긴 입원으로 기운이 많이 떨어진 나에게 '수축이 좀 잡히는 것 같으니 퇴원해서 출산 준비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36주 2일째 되던 날, 퇴원을 앞두고 우리 부부는 정말 수고했다, 잘 버텼다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리고 당일 날 아침. 양수가 터졌다.

"우리 병원에는 자가 호흡기가 없어요. 이런 케이스는 90% 이상 인큐베이터에 들어간다고 보시면 되는데..."

예정에 없던 수술을 해야 했다. 마취과 선생님이 도착하기 전까지 대기하면서 건강하게, 작지만 약하지 않게 나올 아기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수술대 위로 자리가 옮겨지자 '내 아기를 지켜 달라! 살려 달라! 아기 대신 나를 데려가도 좋다'로 기도는 반 협박조가 되었다가 마취가 들어가면서 눈을 감고 '제발, 제발'하며 사정조가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눈물로 키워지지 않은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더니

'잘 울어야 숨을 쉬는 건데... 아, 내 아기도 저렇게 우렁차게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눈을 깨웠다.

"공주님이에요. 정말 잘 우네요?"

2012년 8월 14일 오후 2시 5분 2.26kg의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내 눈앞에 와 있었다. 눈물로 키워지지 않은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고 했던가. 10달도 안 된 임신기간 중 정말 일마다 때마다 눈물나게 했던 내 아기는 여전히 더 다양한 이유로 나를 울린다.

밤낮으로 잠을 안자고 보채서, 화장실 갈 틈도 먹을 시간도 안주고 무조건 안아 달라 떼를 써서, 문득 언제 이만큼 잘 자랐나 싶어 고맙고 감사해서... 눈물을 흘릴 상황이 '엄마'에게 주어지는 것은 어쩌면 더 깊게 자신들과 사랑에 빠지게 하는 아기들만의 비법인 모양이다.
덧붙이는 글 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공모
#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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