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광장의 카를로스 3세 동상마드리드 시내를 다니다 보면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몇 번은 지나치게 되는 솔광장에 있다. 카를로스는 무역과 산업의 성장을 억제하던 오래된 법을 폐지하였고, 도로, 수로 등 기반시설을 지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스페인이 예전보다 좀 더 번영하도록 하였다.
송진숙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시작부터 여행이 즐거워지다오랫동안 꿈꿔왔던 스페인이었다. 드디어 만나러 간다. 알함브라 궁전과 가우디를.
가슴이 설렌다. 지난 여름 딸이 얼리버드 프로모션으로 나온 항공권을 알려줘서 바로 예매하고 기다렸다. 그것이 6월 초였다. 지난번 인도 여행처럼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에 대한 여행기를 구해서 읽었다. 영화도 여러편 구해서 보았다. 나름대로 각 나라에 대한 정보를 틈틈이 준비를 해가며 기다려온 나날이었다.
유럽은 정보도 많고 여행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을 테니 크게 준비할 게 있겠냐며 딸이나 나나 느긋하게 지내다가 막상 여행 한 달을 남기고 여행일정과 동선을 짜려 했더니 쉽지가 않았다. 출국일이 가까워지자 살짝 불안해졌다. 더욱이 모로코에 대한 가이드북은 한국어로 출판된 것이 없었다. 블로그에 나와 있는 것이 전부였다. 영문판 론리플래닛이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5일-6일 정도의 일정때문에 론리플래닛까지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
겨우 준비한 것이 입국하는 도시 마드리드에서 묵을 숙소와 꼭 보고 와야 할 관광지, 마드리드에서 포르투,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에서까지의 저가항공 예약과 인원 제한이 있다는 알함브라 궁전 입장권 예매가 다였다. 유럽이니까 시스템도 잘돼 있고 숙소도 좋으니까 걱정없겠지 했다.
여행 당일인 1월 7일, 비행기 출발 3시간 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딸은 너무 일찍 도착했다며 투덜댔다. 3시간이나 뭐 할 거냐며. 난 딸에게 체크인이 일찍 되면 짐 부치고 편하게 놀자며 항공사를 찾아 체크인을 하려는데 직원이 물었다.
"지금 일찍 오신 몇 분에게만 진행하는 프로모션이 있는데요. 저렴하게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드리고 있는데 하실 생각 있으세요?" 난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터라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다 가격을 물었다.
"얼만데요?""1인당 30만원이요. 정상가로 비즈니스석 구입하실려면 이런 가격에 살 수 없어요. 좋은 기회예요.""이코노미석과 차이가 많이 나나요?""엄청 다르죠"잠시 고민했다. 두명이면 60만원인데... 여행 시작 전부터 오버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좀 있다가 "주세요" 했다. '언제 비즈니스석을 타볼 수 있으랴?' 질렀다. 옆에서 딸은 살짝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딴데서 아끼면 되지'
시간이 되어 탑승했다. 들어가는 문도 이코노미석과 다르고 좌석도 넓었다. 발을 뻗어도 앞 의자에 닿지 않았다. 심지어 담요도 두꺼웠다. 마치 이불처럼. 좌석 팔걸이 뒤 박스에 물 한병, 기내용 양말, 귀마개, 안대 등이 담겨 있었다. 의자에도 버튼이 많이 달려 있었다. 그림대로 눌러봤다. 발판이 올라가고, 의자는 거의 -자로 펴져 침대처럼 되었다. 안락했다. 옆좌석에 있는 사람은 벌써 누워서 편안히 자고 있었다.
앉자마자 웰컴 음료를 받았다. 와인도 주문했다. 각각 다른 와인을 시켜서 맛을 보았다. 둘다 상큼하고 맛있었다. 와인을 마시며 발을 뻗어 인증샷을 찍었다. 무엇보다 환상적인 건 기내식이 나올 때였다. 전채요리, 메인요리, 후식이 각각 따로 나왔다. 도시락 하나에 담겨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음료와 주류도 다양했다. 우리 둘은 촌스러울만큼 좋아하면서 사진을 찍는 등 맘껏 호사를 누렸다.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라 여기며. 기분은 계속 업되었다. 그렇게 10시간은 짧은 듯 흘러갔다.
한참 사진 찍으며 즐거워하던 딸이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 여행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여행이나 다니고 여유있게 살래"라고 말했던 딸이었다. 말이 달라졌다. "엄마 돈 벌어야 할 것 같아." 비즈니스석 하나로 딸의 인생관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경유지인 뮌헨에서 환승했을 때는 이코노미석이었다. 기내식으로는 파스타 도시락이 하나 나왔는데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한두 젓가락 뜨다가 너무 짜서 남겼다. 비즈니스석의 후폭풍이 너무 컸다. 좌석 간격이 좁은 데다 난 안쪽에 앉았던지라 통로쪽에 앉은 남자가 자고 있어서 화장실 간다고 깨우기가 난감했다. 결국 난 화장실 가기를 포기하고 그냥 목적지까지 갔다.
마드리드 공항에 내렸다. 준비해간 정보로는 아토차역에 내려서 전철로 Tirso de Morina 역까지 가는 거였다. 그런데 짐 찾느라 시간이 많이 흘러 전철이 끊어졌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토차역까지 가는 공항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는 시벨레스 광장에 내렸다. 버스 기사에게 물었더니 길 건너가서 10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다. 이곳저곳 봐도 10번 버스는 보이지 않아 다시 물어보았다. 영어는 안 통하고 스페인어로 손짓까지 해가며 가르쳐주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답답하고 애타는 가운데 시간은 점점 흘러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딸이 버스 노선도를 훑어보고 지도를 살펴봤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우리가 늦은 밤에도 택시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했던 이유는 대중교통을 익혀놓아야 여행이 자유로울 뿐더러, 여자 둘이 늦은 밤에 택시를 타는 것은 불안해서였다. 치안이 안전하다고 할 지라도 내가 확인한 안전은 아니니까.
그러나 지친 우리는 결국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택시는 2.9유로가 기본요금이었는데 8.4유로가 나왔다. 거기에 3유로의 추가요금을 더 받았는데 스페인어로 말해서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냥 내렸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주말 10시 이후에는 추가요금을 더 받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