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무죄, 대신 사죄드립니다

무능했던 인사비서관의 뒤늦은 반성문

등록 2014.02.06 18:42수정 2014.02.0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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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그동안 재판을 받아온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오늘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수사방해나 허위의 수사발표 지시 증거가 부족했다"라고 밝혔지만, 많은 국민들은 납득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작년 8월 16일 오전 10시 국회 본청 245호실.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선지 보름 만에 얻어낸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증인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엔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과 함께 출석하였습니다.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 수사 축소 은폐·의혹과 관련한 핵심 증인이었는데, '증인 선서'를 거부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현재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증언이 언론 등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는 과정에서 진의가 왜곡돼 잘못 전달될 경우 재판에 영향을 줄 것이 우려된다."
"따라서 헌법과 법률상 국민 기본권인 방어권 차원에서 증언 선서를 거부한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고 한 치의 거리낌도 없는 아주 당당한 자세였습니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18대 대통령선거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는 수서경찰서 수사 실무자에게 사건을 축소·은폐하도록 부당한 외압을 행사하고, 대통령선거 직전인 12월 16일 부실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작년 6월 14일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이를 인정하느냐는 야당 청문위원의 신문에 대하여 매우 도발적으로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전면 부인하였고, 청문회 내내 대선 당시 경찰의 수사 발표 또한 허위가 아니라고 강변하였습니다. 이러한 김용판 증인의 안하무인 격 태도에 많은 국민들이 국정조사가 농락당하고 있다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오늘. 우리는 또 다시 분을 삭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판결을 보고 매우 많이 화 나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김용판 전 청장, 그는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저와는 남 다른 인연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재작년 5월 치안정감으로 승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오릅니다. 그의 영광과 오욕은 사실 참여정부, 특히 저의 실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87년 행정고시 30회에 합격, 경정특채로 경찰에 입문한 그는 1998년에야 총경에 오르는 등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신세였습니다. 총경 때도 지방 경찰서장과 본청 방범과장, 성동경찰서장이나 전전하곤 했습니다.

그랬던 그를 2006년 2월 정기인사에서 경무관으로 승진시켜준 것은 참여정부였습니다. 서울시내에서도 치안 수요가 많은 종로서장, 중부서장, 남대문서장, 강남서장 등이 아닌 성동서장이 경찰의 '별'에 해당하는 경무관에 오른 일은 이례적이었습니다. 참여정부 5년,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에도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은 그를 지역 안배(대구)와 입직경로 안배(행시 특채), 그리고 지방대(영남대) 출신 우대 차원에서 승진후보자로 추천하였고, 당시 청와대에서 경찰 인사추천을 맡은 인사제도비서관이었던 저는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였던 겁니다.

이후 김용판 경무관은 치안감으로 승승장구, 서울지방경찰청 차장, 충북지방경찰청장, 본청 보안국장을 거쳐 드디어 재작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치안 책임자'로 영전한 것입니다.

만약에 2006년 당시 인사추천 때 좀 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참 많이 남습니다. 거듭 저의 능력 없었음을 반성합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밖에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김용판 #국정원 댓글 #서울지방경찰청장 #수서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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