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군자씨조군자(69ㆍ근흥면 정죽2리)씨가 카메라 앞에 호소하듯 눈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이미선
여자라는 이름보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또 누구의 할머니로 산 시간이 더 많은 여자, 그래서 이 여자의 지난 세월은 한스럽다 못해 애달프기까지 하다.
지난달 24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2리에 위치한 그녀의 집에서 눈물겨운 그녀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손자 등록금이 없어서 사람들한테 도움 받는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남편 강희호(73)씨 사이 3형제를 뒀는데 누구 하나 보란 듯이 성공한 자녀들이 없단다.
첫째는 IMF때 빚을 진 이후로 연락이 끊겼고, 셋째는 제 가정 보살피느라 부모를 걱정할 겨를도 없단다.
둘째는 손자들이 어릴 때부터 이곳 정죽리에서 함께 살았는데 손녀 강윤지(18)가 6살 때 며느리가 도망가 오빠 진영(20)이와 윤지는 모두 그녀 조군자(69·사진)씨의 손에서 자랐다.
윤지는 어릴 때 백혈병을 앓았다는데 여러 날을 방송국 정문에서 서성이다 어느 중년 신사의 도움으로 KBS1TV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도움을 받아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둘째 아들은 아들, 딸·인 진영윤지를 키우는 건 모두 엄마인 군자씨에게 맡기고 막노동과 알콜중독으로 제 몸 하나 가누기 어렵게 됐다.
그간 식당일과 면사무소 허드렛일로 집안 가장 노릇을 해오던 그녀도 지난해에는 허리를 수술해 이젠 이집의 생계가 고달파졌다.
유일한 수입원이라곤 할아버지 강희호씨 앞으로 나오는 6·25참전수당금 70여만원이 전부다. 그러니 갑갑할 수밖에.
올해는 손자 진영이를 대학에 보내야 하는데 등록금 낼 날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할머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없는 손자가 할머니는 늘 근심거리다.
작년에 서울의 한 전문대에 입학한 손자는 할머니 몰래 한 달 만에 학교를 자퇴하고 월 34만 원 짜리 고시원에서 재수를 했단다.
가정의 총 수익 70여 만 원에서 진영이의 고시원방 월세 34만원을 내는 것도 할머니에게는 힘든 수고였는데 올해 을지대학교 방사선과에 합격한 손자에게 대학을 포기하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다들 불경기인 마당에 제 손자 대학에 보내겠다고 언론을 통해 손을 내밀고 싶진 않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손녀 윤지의 백혈병을 방송매체 후원으로 해결하고 보니 유일하게 닿는 건 지역신문의 한줄 기사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는 조씨의 답답한 심경고백에 집안공기가 처음보다 더 낮아졌다.
"생각 같아선 이 집이라도 팔고 싶은데 우리 집도 아니고 얹혀사는 처지라"10남매 중 장녀로 일찌감치 부모님을 여의고 생업전업에 던져져 아래로 아홉 동생들을 거둬야 했던 여자, 스물 둘 꽃다운 청춘에 시집와 칠십이 되도록 손자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는 팔자를 생각하면 원통하고 분하다.
인근에 사는 형제자매들에게라도 손을 벌려보고 싶지만 다들 살기 어려워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는 수준이라니 부디 501만원의 등록금 마련의 꿈이 하루 속히 이뤄지길 마음으로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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