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생머리 처자에 '흔들'... 누가 마흔을 불혹이래!

[공모-내 나이가 어때서] 어느덧 마흔, 여전히 극작가와 배우를 꿈꾼다

등록 2014.02.12 08:12수정 2014.02.12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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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집주 논어의 한문 정본. 불혹이란 공자 스스로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40대를 이야기한 것이다. 우리같은 범인들이 어찌... ⓒ 이정혁


나는 흔들리는 마흔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불혹으로 알려진 나이. 실제로 공자님 말씀을 제자들이 정리한 '논어'편에는 "공자님께서 나이 사십이 되고부터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었다"라고 나오는데,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나 가능한 일이지 나 같은 범인들은 도저히 불가능한 말이다. 돈이나 명예 따위 접어둔다 치더라도, 손수건으로 긴 생머리를 묶은 젊은 처자의 옆 모습에 나는 쉽게 유혹된다. 어디 긴 생머리뿐이랴.


나는 소외당한 마흔이다. 이십대의 직원들과 대화하기에 버거운 나이. 회식자리에서 어느 순간부터 홀로 테이블을 차지하고 고기를 굽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억지로 그들과 소통하려 용을 써보지만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는 게 더 슬프다. 외계의 용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그들은 외계인처럼 바라본다. 당연히 그 눈빛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을 바라보는 그윽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물스런 존재감이다.

마흔, 그럼에도...

나는 늙어가는 마흔이다. 뱃살이 문신처럼 들러붙어 발톱 깎기가 힘겨운 나이. 피부의 탄력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눈동자의 흰자위는 투명함을 잊은 지 오래다. 미간 사이 주름의 골은 조만간 이마를 침범할 태세를 갖추었다. 나이는 숨겨도 목주름은 감출 수가 없다고 한다. 자꾸만 주름을 끌어내리다보니 아랫입술이 턱에 가 붙는 느낌이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오는 동안 세월은 정확히 육신의 절반을 거두어 갔다.

나는 어정쩡한 마흔이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나오는 인생시계에 따르면 이제 겨우 정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계산법의 오류는 너무도 명백하다. 잠자는 시간이 빠졌다. 24시간 중에 6시간 잠잔다고 치고, 80살의 인생을 하루 18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마흔의 나는 이제 오후 3시가 되었다. 인생시계대로라면 무언가를 시작하기 참 애매한 나이다. 동네 마트에 장보러 가기에도, 낮잠 한숨 자기에도. 그래서 과감히 인생시계를 걷어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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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아이들 공부방은 없어도 본인 서재는 만들라고. 아내를 꼬드겨 얻어낸 나만의 습작 공간이다. ⓒ 이정혁


나는 부끄러운 40이다. 정의의 불빛이 꺼진 시대. 부정과 불법으로 권력을 움켜쥔 자들에게 돌팔매질은 커녕 삿대질조차 하지 못하는 소시민이다. 법 위에 군림하는 그들과 그 하수인이 되어 법을 악용하는 견마들이 판치는 세상에 침묵하는 소인배다. 하다못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하거늘 처자식 핑계대고 행동할 줄 모르는 부끄러운 존재다. 안락한 생활에 도취되어 상식의 혈관에 기름기 가득 끼어도 애써 외면하는 그런 창피한 중년이다.


나는 후회없는 40이다. 누군가 나에게 시간을 되감아 준다고 하면, 화를 버럭 낼지도 모르겠다. 철모르고 흘러간 10대, 방황 끝에 스러져간 20대, 그리고 경쟁 속에 떠밀려온 30대의 터널로 되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난 40년간의 상처와 영광을 동시에 가슴에 새기고 다시 선 이 자리에 무릎 꿇고 감사할 따름이다. 대형 사고없이 걸어 온 이 길의 무게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는 고민하는 40이다.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 바라본 지구. 모래알보다 작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담배 피며 늘 생각한다. 물론 아직까지 명확히 규정짓지는 못했지만, 만 갑쯤 태우다 보면, 희뿌연 연기 사이로 계시가 보일 것이다. 이 아름답다가도 황량해지는 혼돈의 공간에 던져진 이유를 조곤조곤 따져 볼게다. 그래도 답이 없다면 뭐, 덤으로 왔다가는 생도 괜찮지 않은가?

나는 본격적인 마흔이다. 80의 인생을 4쿼터의 게임으로 생각해 본다. 스무 살까지의 1쿼터는 인생이라는 긴 게임에 있어 탐색전의 시간이다. 삶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지식과 기초 체력을 다졌다. 마흔 살까지의 2쿼터에서는 자리 선점을 위한 몸싸움과 득점의 시간이었다. 세상에 부딪혀 터지고 깨지면서 생존의 방법을 터득했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안정감을 얻었다. 그리고 이제 여유를 가지고 해볼 만한 두 게임이 남았다.

나는 희망에 찬 마흔이다. 남은 두 쿼터의 경기에서 그동안 숨겨왔던 혹은 숨길 수밖에 없었던 개인기를 펼쳐보고자 한다. 60살까지는 글을 써볼 작정이다. 30대 후반에 예기치 않게 찾아 온 시민기자라는 타이틀은 바래져가던 나의 꿈에 색깔을 찾아주었다. 한때 여드름투성이의 문학 소년이 점점 일상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걸 하늘도 원치 않은 게 분명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영혼은 깃털보다 가벼워진다.

그러하기 때문에...

나는 설레는 마흔이다. 지금껏 살아온 만큼을 더 살 수 있기에 내 앞에 펼쳐진 40년은 아름답기까지하다. 60살부터는 연극배우와 연출가, 희곡 작가의 '철인 3종 경기' 레이스가 기다린다. 대학 연극반 시절, 20대 초반의 나이로 60대 노인 역을 맡아 쩔쩔매던 아마추어에서 인생의 지혜를 깨달은 노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나는 준비할 것이다. 조명 아래에서 나의 백발은 더욱 빛날 것이며, 나의 목소리는 삶을 노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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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이, 마흔 살에도 그에 맞는 매일의 태양이 떠오르는거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법이다. ⓒ 이정혁


나는 할 일 많은 마흔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저 유명한 카피처럼, 내 나이는 내가 선 트랙의 출발 번호일 뿐이다. 40번 트랙은 많이 읽고, 많이 보고, 글 쓰는 연습을 하는 트랙이고, 50번 트랙은 그간 쌓인 삶의 퇴적물들을 한 자 한 자 정리하는 트랙이다. 60번 트랙부터는 육체와 영혼의 기억을 더듬어 무대 위에 표현해내는 트랙이다. 그 위에서 쓰러져 대지와 내가 하나 되는 그 날까지 달리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나는 당당해질 마흔이다. 내 아이들에게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움추린 어깨를 펴고 고개를 꼿꼿이 세울 것이다. 누군가의 변호인까지는 못 될지라도 세상을 바꾸기 위한 글을 쓸것이다. 이것은 내 개인의 자아실현에만 충실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으로 남겠다는 또 하나의 약속이다. 이제 더 이상 비겁해지지 않겠다.

결론적으로 나는, 마흔이다. 그래서 내 나이가 어때서? 명절날 특선 영화보다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고, 나잇살이 주는 무게감에 짓눌리지도 않으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대학노트 한권 분량인데, 나이 마흔이 뭐가 어떻다고? 껍질은 좀 시들었지만 알맹이는 귤씨처럼 터질 것만 같은데, 내 나이 마흔 뭐가 어때서!
덧붙이는 글 '내 나이가 어때서' 응모글
#불혹 #인생시계 #자아실현 #사회적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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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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